20150306000554_0올해로 86살이 된 노장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연출한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우리의 ‘국제시장’ 처럼 올 초 미국에서 가장 핫한 영화다. 입장 수입이 북미 지역에서만 3억달러(약 3200억원)를 넘어섰다. 이념 논쟁을 타고 흥행성이 배가된 것도 국제시장과 닮았다. 영화는 미 해군 특수부대인 네이비실 저격수(스나이퍼)인 크리스 카일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했다. 미군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저격수’로 꼽힌 인물이다.

흥미로운 건 이 영화의 흥행요인이다. 미국인들에게 ‘저격수’는 ‘겁쟁이’로 비친다. 비겁하게 등 뒤에서 총질하는 존재다. 그들은 1980년대 영웅인 ‘람보’처럼 적들과 정면으로 맞서는 캐릭터를 선호한다. 미ㆍ소 냉전시대, 강력한 군사력을 앞세워 슈퍼파워의 위력을 보여줬던 레이건은 ‘람보 대통령’으로 불리며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2001년 9ㆍ11 테러의 트라우마를 겪은 이후 미국인들의 심리에 변화가 일었다. 9ㆍ11 이후 14년째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별반 나아진 게 없다. 한 술 더 떠 최악의 테러 조직인 이슬람국가(IS)까지 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 방(원샷)에 테러리스트 한 명을 없애는(원킬) 저격수는 영웅으로 떠올랐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저격수 신드롬의 코드를 잘 읽은 영화인 셈이다.

우리 사회에서 당장 카일과 같은 스나이퍼가 필요한 곳이 국회다. 정밀 타격으로 목표로 삼은 타깃에 정확히 맞히는 입법이 아니라 기관총을 마구 쏴대는 무차별적 공격으로 무고한 희생자를 양산하는 위험한 집단이기 때문이다. 지금 과잉입법 논란이 들끓고 있는 이른바 ‘김영란법’이 ‘람보 국회’의 산물이다. 이 법은 애초 ‘벤츠 여검사’ 처럼 거액의 금품이나 향응을 받아도 대가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법망을 요리 저리 빠져나가는 공직자를 겨냥해 입안됐다.

그러나 이 법안이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 소위에 상정되면서 타깃이 흐려졌다. 국공립 교직원이 대상이니 사립학교도 넣어야 하고, KBS가 해당되니 민영 언론도 빠질 수 없다는 거다. 공공성으로 보면 ‘도긴개긴’ 이라는 얘기다. 이런 논리라면 의사나 변호사도 피해갈 수 없다. 국고보조금 지원을 받는 시민단체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국가의 안보와 직결되는 대기업 방산업체는 또 어떤가. ‘만인에 의한 만인의 감시법’ 이라는 조롱이 그래서 나온다. 오죽하면 대한변협이 통과된 법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헌법소원 심판대에 세우겠다고 나섰겠는가.

법조계에서는 법망과 어망을 즐겨 비유하곤 한다. 어망이 너무 촘촘하면 잡을 고기, 안 잡을 고기 몽땅 걸려든다. 법망도 마찬가지다. 너무 촘촘하게 돼 있으면 법 집행자의 마음에 따라 할 수 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게 된다. 공권력이 ‘미운 털이 박힌 놈’만 골라서 두들길 여지가 많다. 더 큰 불공평이 생겨날 수 있는 거다. 식당, 술집 등 무고한 자영업자까지 람보의 포탄을 맞게 돼 2차 피해도 크다. “눈 앞에 있는 9명의 도둑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헌법 정신을 구현하려면 국회는 타깃에 명중시키는 유능한 스나이퍼가 돼야 한다.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정조준한 스나이퍼 김영란에게 람보의 육중한 기관총을 안기는 것은 코미디에서나 보고 싶다. mh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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