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소설] 라스베가스별곡

캡 김의 말은 서 박사가 한국에 있을 때 보고 들었던 이야기들과 일치하였다.인문계열의 대학 동문들이 사법고시에 젊음을 건 모습들을 얼마나 보았던가? 그들은 젊음을 건 것이 아니라 인생을 걸고 공부하는 모습들이었다. 다섯번씩 여섯번씩 낙방한 친구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떨어질 때 마다 절망에 가까운 표정을 짓던 동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사회에 진출해서 10년쯤 지나서 골프를 하게 되었다.

자신의 골프를 가르쳐준 레슨프로는  한국프로골프협회에서 시행하는 KPGA 프로시험을 열번 가까이 낙방했다고 들었다. 그 레슨 프로의 실력은 언제나 이븐 파 가까이 치는 수준높은 실력이었음에도 정작 프로시험의 벽을 넘지 못했다.

나중엔 들려온 이야기에 의하면 그가 떨어진 것은 실력보다는 프로골프협회에 연줄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토록 어려운 사법고시보다, 한국프로골프시험보다 더 어려운 것이 도박을 해서 돈을 따는 것 이라고 캡 김은 말했다.

그리고보니 서박사는 일년이 다 되가는 시간을  캡 김과 동거동락을 했는데도 아직 캡 김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가 한국 어디에 살았는지, 가족은 있는지, 무슨 경력을 가진 사람인지 알 길이 없었다.

단지 나이는 50대 중반인 것같고 학식의 깊이로 보아 대학을 나온 사람처럼 보이는 것같은데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갬블을 할 때는 냉철하기 짝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딜러들에게 넉넉한 팁을 주는 것과 팀원들을 향한 마음씀씀이를 보면 자상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서 박사에게는 캡 김이 시간이 갈수록 베일 속의 인물이었다.

캡 김은 팀원들이 한국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철저히 막기 위해 틈을 주지 않았다.

게임 중에 한국인을 만나면 일절 아는 체 하지 못하게 했고 심지어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다짐까지 해놓고 있었다.

그렇지만 전상철은 딜러생활과 삐끼 노릇을 오래했던 경력이 있었다. 이곳에서 10년 가까이 거주한 탓에 가끔 한국인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그럴 때 마다 팀원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칵테일 바에서 음료로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게임에 임해야 했다.

게임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오게 했고, 한국신문과 한국 드라마 비디오 조차 ‘당분간’이란 조건으로 보지 못하도록 했다.

한국식당을 가보지 못한 지 꽤 시간이 지난 것같았다. 마운틴 찰스톤으로 이사한 뒤로는 한번도 가본 일이 없다고 서 박사는 생각했다.

그러나 제니퍼와 김민종의 음식솜씨는 가히 일품이었다. 김민종이 이따금 끓여주는 라면은 일반 라면과 달리 맛이 좋았다.

김민종은 ‘언젠가 돈이 모아지면 라스베가스에서 라면 전문점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훗날 그 꿈은 반년도 안돼 이루어졌다.

지난여름 마운틴 찰스톤과 레드 락 사막을 얼마나 다녔던가?

야영장에서 텐트를 쳐놓고 함께 생활하기를 한달 가까이 했다. 고된 훈련을 받은 것이 지금 와서 생각하니 팀원들간에 서로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감각의 훈련, 그 기초 과정이었던 것을 팀원들이 깨닫게 된 것은 그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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