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서향집(1)

서향 집은 향이 나쁘다고들 한다. 그러나 서향 집에 사는 나는 이보다 더 좋은 방위가 있을까,

탄하고 감사한다. 더구나 나의 집은 인왕산과 북촌이 한 눈에 들어오는 언덕 위에 있어, 놀러 오는 이들마다 “스카이라운지가 따로 없네”라며 부러워 한다. 겨울엔 해가 깊숙이 들어 난방비가 적게 들고, 여름엔 앞 뒤 베란다 문을 열어두면 원두막처럼 바람이 놀다간다.  

서향 집의 더 큰 장점은 해 질 무렵 풍경에 있다. 인왕산 너머로 기우는 해와 노을을 감상하기 위해, 5시 이전에는 반드시 집에 돌아오려고 한다. 혼자 보기 아까워 연인에게 전화를 걸어본 적이 있는데, 그 곳에선 노을이 곱지도 한 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다고 했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있어도, 해의 기울기와 구름의 향이 다르니 이를 접하는 마음의 경사도 다를 수 밖에. 같은 시각, 고운 풍경을 함께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잠시 서운했다.

노을이 완전히 사그라질 때까지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내가 그만큼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리라. 20대에 서향 집에 살았다면 이처럼 마음 깊이, 그리고 오래 노을을 감탄하며 맞이하지 못했을 것같다. 잠깐  “아 멋지다!”하고는 이내 창가를 떠났겠지. 나이들어 좋은 점 중 하나는 스러져가는 것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나날이 깨닫고 있다.

인왕산과 맞닿을만큼 낮게 드리운 회색 구름의 변화, 파란 하늘에 하얀 선을 길게 남기며 사라지는 비행기, 고등학교 교정의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바람에 미친듯이 나부낄 때, 인왕산을 하얗게 뒤덮는 눈발, 유리창을 사정없이 때리는 빗줄기. 서쪽으로 내달린 베란다에 서면 계절과 날씨의 바뀜을 고스란히 안을 수 있다.

가을부터 봄까지, 소파에 누워 거실 깊숙이 들어앉은 따습고 환한 햇살에 몸을 맡긴채 오수를 즐기거나, 책을 읽는 맛을 무엇에 비할까. 열대야로 잠 못이루는 밤이 계속되고 있다는 뉴스를 신기해하며 베 이불 덮고 쾌적하게 잘 수 있으며, 바깥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보일러를 한 시간에 20분만 작동하도록 해놓으면 훈훈한 나의 집. “서쪽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시인의 노래는 이 집에서 지어진게 아닌가 한다.

나의 집은 절간처럼 조용하기까지 하다. 차가 드나들기 힘든 북촌 특유의 골목 안 집이기 때문이다. 안국선원의 새벽 종소리와 안동 교회 저녁 종소리는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고, 먼데 뻐꾸기 소리는 하던 일을 멈추게 하며, 교정 지붕의 까치 소리는 아침 잠을 쉬이 깨운다. 

시내 한복판에 있어 공기가 나쁠 거라고들 하는데, 이는 북촌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창경궁과 경복궁 사이에 위치한 곳이라 북촌에 들어서면 가슴이 탁 트인다. 특히 나의 집은 창경궁 가까이 있어, 마을 버스에서 내리면 싸한 비원 숲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든다. 동네 토박이들은 여름에 시원하고, 대신 봄이 조금 늦게 오는 곳이라고들 한다. 이 곳으로 이사온 후 피부가 고와졌다는 이들도 많다. 잘 보존된 고궁 숲 덕분에 일주일에 한 번 쓰윽 걸레질만 하면 되니, 이 역시 북촌에 사는 특혜다.

인사동, 종로, 명동, 광화문, 삼청동, 성북동, 대학로를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것도 내가 북촌을 택한 이유 중에 하나다.

원고를 쓰다 어깨 죽지가 아프면 서쪽 베란다에서 해를 한껏 받고 자라는 화초들을 들여다보며 눈을 쉰다. 머리까지 안돌아가면 북촌을 한바퀴 돈다. 튼실하고 아름답게 리모델링한 한옥들에는 전통 매듭 공방, 죽장, 개인 박물관, 궁중 음식 연구소, 한복 전문점, 게스트 하우스, 디자인 회사, 출판사들이 입주해있다. 모던하게 리모델링한 양옥에는 갤러리, 고가구 전문점, 커피 숍, 꽃집, 악세사리 가게들이 들어서고 있다.

 현대사옥이 있어 밥 사 먹을 곳이 많다는 것도 북촌의 좋은 점이다. 전통 궁중 음식 전문점, 20만원짜리 주문 케익점과 같은 고가의 음식점에서부터 플라스틱 의자에 걸터 앉아 마시는 생맥주집까지, 입맛과 주머니 사정에 따라 뭐든 골라 먹을 수 있다.

운현궁, 북촌 한옥 문화원, 정독 도서관, 선재 아트 센타, 불교박물관, 일본 문화원, 서울 아트 센타, 수운회관, 조계사가 지척이라 강좌, 전시회, 영화제가 끊이질 않는다. 

머리가 빡빡하다 싶으면 인사동 전시장을 한 바퀴 돌거나, 예쁜 옷가게와 화랑, 카페를 구경하며 삼청 공원까지 느릿느릿 산책을 한다. 운동량이 현저히 떨어진다 싶을땐, <겨울 연가> 촬영 덕분에 일본인 관광객이 부쩍 늘어난 고풍한 중앙 고등학교 교정을 가로질러, 성곽을 끼고 성북동까지 걸어간다. 한용운이 말년에 기거했던 심우장, 전통 찻집이 된 소설가 이태준 고택,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가들이 사들여 개방하고 있는 최순우 선생의 한옥, 매끄럽지 못한 전시실 통유리마저 눈시울을 적시게하는 간송미술관을 들를 수 있다. 얇고 바삭하고 큼지막하게 튀긴 돈까스를 담아 내오는 돈까스집, 기사들이 즐겨찾는 구수한 설렁탕집, 대한민국에서 가장 반찬이 많다는 한식집, 깔끔한 수제비 집 등 맛집도 많아 한 집씩 순례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북촌의 서향집을 구하기 전까지 북촌은 물론 평창동, 효자동의 복덕방을 숱하게 돌아다녔다. 그 때 한 복덕방 아주머니가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강남 아파트 값 오른다고 좋아하지만, 시멘트 공동 주택 사는 이들과 숲의 정기를 마시며 사는 사람들과는 인생관이 다르지 않겠어? 왜 궁궐이 여기 자리를 잡았겠어?”

그래서 나는 이따금 전문가의 강의를 들으며 걷는 북촌 투어에 참가한다. 어느 거리, 터 하나 유래가 없는 곳이 없으며, 근현대사의 주요 인물은 다 북촌에 살았고 북촌에서 뜻을 펼쳤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지금의 북촌은 예전 세도가나 예술가, 종교 지도자가 살던 널찍한 한옥은 대부분 헐리고, 해가 들르기 힘든 작은 한옥과 다세대 주택이 무질서하게 들어선 곳이 많다. 그렇다해도 아파트촌에서 느낄 수 없는 한국만의 정취가 아직은 꽤 남아있다. 나라에서도 북촌 한옥 보존을 위해 뒤늦게나마 신경을 쓰고 있고.

노년에도 북촌에 살면서 각종 강좌를 들으며 한국의 정취를 즐기고 싶다. 다세대 주택이 아닌, 작으나마 마당이 있는 한옥에 살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 물론 그 때의 한옥도 인왕산 너머로 지는 해를 조망할 수 있는 언덕 위 서향집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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