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서향집(2)

나의 북촌 서향집은 절간처럼 조용하다. 차가 드나들기 힘든 북촌 특유의 골목 안 집이기 때문이다. 안국선원의 새벽 종소리와 안동 교회 저녁 종소리는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고, 먼데 뻐꾸기 소리는 하던 일을 멈추게 하며, 교정 지붕의 까치 소리는 아침 잠을 쉬이 깨운다. 

시내 한복판에 있어 공기가 나쁠 거라고들 하는데, 이는 북촌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창경궁과 경복궁 사이에 위치한 곳이라, 북촌에 들어서면 가슴이 탁 트인다. 특히 나의 집은 창경궁 가까이 있어, 마을 버스에서 내리면 싸한 비원 숲 공기가 밀려드는 걸 느낄 수 있다. 동네 토박이들은 여름에 시원하고, 대신 봄이 조금 늦게 오는 곳이라고들 한다. 이 곳으로 이사온 후 피부가 고와졌다는 이들도 많다. 잘 보존된 고궁 숲 덕분에 일주일에 한 번 쓰윽 걸레질만 하면 되니, 이 역시 북촌에 사는 특혜다.

원고를 쓰다 눈이 가물가물해지고 어깨 죽지가 아파오면, 북촌을 한바퀴 돈다. 튼실하고 아름답게 리모델링한 한옥들에는 전통 매듭 공방, 죽장, 개인 박물관, 궁중 음식 연구소, 한복 전문점, 게스트 하우스, 디자인 회사, 출판사들이 입주해있다. 모던하게 리모델링한 양옥에는 갤러리, 고가구 전문점, 커피 숍, 꽃집, 악세사리 가게들이 들어서고 있다.

현대그룹 사옥이 있어 밥 사 먹을 곳이 많다는 것도 북촌의 좋은 점이다. 전통 궁중 음식 전문점, 20만원짜리 주문 케익점과 같은 고가의 음식점에서부터 플라스틱 의자에 걸터 앉아 생맥주를 마실 수 있는 거리 술집까지, 입맛과 주머니 사정에 따라 뭐든 골라 먹을 수 있다.

 운현궁, 북촌 한옥 문화원, 정독 도서관, 선재 아트 센타, 불교박물관, 일본 문화원, 서울 아트 센타, 수운회관, 조계사가 지척이라 강좌, 전시회, 영화제도 끊이질 않는다. 

나는 이따금 전문가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북촌 투어에 참가한다. 어느 거리, 터 하나 유래가 없는 곳이 없으며, 근현대사의 주요 인물은 다 북촌에 살았고 북촌에서 뜻을 펼쳤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지금의 북촌은 예전 세도가나 예술가, 종교 지도자가 살던 널찍한 한옥은 대부분 헐리고, 해가 들르기 힘든 작은 한옥과 다세대 주택이 무질서하게 들어선 곳이 많다. 그렇다해도 아파트촌에서 느낄 수 없는 한국만의 정취가 아직은 꽤 남아있다. 나라에서도 북촌 한옥 보존을 위해 뒤늦게나마 신경을 쓰고 있고.

노년에도 북촌에 살면서 각종 강좌를 들으며 한국의 정취를 즐기고 싶다. 다세대 주택이 아닌, 작으나마 마당이 있는 한옥에 살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 물론 그 때의 한옥도 인왕산 너머로 지는 해를 조망할 수 있는 언덕 위 서향집이었으면 한다. 

영화칼럼니스트 / [email protected]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