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종환 박사 – 30년 서린 한 이제야 풀렸습니다

지난 1976년 유신정권 시절 부당하게 해직된 차종환 박사가 최근 한국 참여정부가 마련한 ‘해직교수 구제 특별법’ 관련 재판에서 명예회복 판결을 받았다.

차종환 박사는 “30년동안 서린 한이 드디어 풀린 느낌이다”며 말문을 열었다.

한국 정부는 과거사 정리 차원에서 이 재판을 시행해 차 박사가 그간 202권의 출판저서 및 180권에 달하는 논문을 발표하는 등 활발한 교수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부당한 해직을 인정했다.

지난 70년대 동국대 교수로 재직하던 중  차 박사는 교육인적자원부(구 문교부)가 출판한 고등학교 생물교과서에서 오류 20여곳을 지적하고 환경 오염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에대해 정부는 ‘정권에 반하는 연구 활동’이란 죄목을 들어 해직 처분을 내렸다. 차 박사는 “연구비 최다 지원을 받았던 소위 잘나가는 교수에서 하루 아침 불명예를 얻었다”며 그때 상황을 떠올렸다.

당시 차 박사는 해직 사유는 물론 퇴직금 한푼도 받지 못한채 쫓겨나다시피 대학에서 나와야 했고 그 길로 도미했다.

미국에 정착해 UCLA 연구교수로 22년간 재직하며 남가주 한인회 부회장, 남가주 호남향후회 초대 및 2대 회장, 한미 교육연합 회장을 비롯해 40여 단체장을 역임하는 등 미주 한인사회에 활발한 봉사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차박사는 “주변의 권유로 79년 LA 한인회 부회장을 재직하면서 한인 사회에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돼 많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차 박사는 지난 76년 한미교육위원회를 조직해 현재까지 수백명에 달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해왔다. 그는 “수 많은 단체활동 중 가장 주력하고 보람을 느끼는 것은 바로 장학 사업이다”고 말하며 “어렵게 공부하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어려운 학생들을 도와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장학사업을 시작하는데 그의 가족들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차박사의 아내와 자녀들이 선뜻 응해 10만달러를 모금했으며, 이를 시작으로 장학사업을 벌여왔다. 현재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30만달러 모금에 성공, 매년 10여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던 것을 몇해전부터 40여명에게 전해주고 있다.

차 박사의 책장에는 직접 써낸 생물학 관련 저서는 물론 미주한인 역사 및 재외동포들의 권익을 위한 법률, 북한 인권문제와 통일 문제, 건강, 미용, 교육까지 다방면의 저서들로 가득하다. 특히 북한에 4차례 방문해 백두산과 묘향산, 금강산, 구월산 등지를 찾아다니며 집필한 북한 관련 생태학 책들은 여전히 한국 대학 생물학과에서 교과서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한번들린 곳은 책으로 흔적을 남긴다”는 그는 다양한 문학활동과 사회 봉사활동으로 94년 LA시 우수시민 봉사자상과 2005년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목련장을 비롯해 다수의 훈·포상을 수상하는 등 그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차 박사는 1935년생으로 서울대 사범대학 생물학과 ,동국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중·고등학교 교사와 동국대 교수를 거쳐 현재도 학계와 사회단체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최근 독도 관련 서적 세권을 발간했다.

정옥주 기자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