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작가, ‘카잔차키스 나는 영원한 자유인’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인이다.”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다. 1957년 10월 26일 독일에서 사망해 올해 50주기를 맞은 카잔차키스는 생전 미리 준비해둔 이 묘비명처럼 평생 자유를 추구했다.

카잔차키스는 1883년 그리스 크레타 섬에서 태어난다. 당시 크레타 섬은 터키가 지배하고 있었다. 카잔차키스의 할아버지는 터키에 맞서 싸우다 목숨을 잃은 투사였고, 아버지도 독립전쟁을 이끌었다. 카잔차키스는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나는 위대한 투쟁을 실천하기보다는 다른 것들, 내가 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글로 옮기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았다. 나는 아버지처럼 뜨거운 피가 모자랐고, 철저하게 투사로 살 자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성장배경이 자유를 염원하는 카잔차키스의 기질을 형성했다. 카잔차키스는 3단계 투쟁 계획을 세운다. 터키에서의 해방을 쟁취하는 1단계, 인간 내부의 터키라고 할 수 있는 무지, 악의, 공포에게서 해방되는 2단계 투쟁, 사람들이 섬기는 모든 우상들에게서 해방과 자유를 얻은 3단계로 구성된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카잔차키스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사상의 영향을 받는다.

카잔차키스는 “내 영혼에 가장 깊은 자취를 남긴 사람들의 이름을 대라면 나는 아마 호메로스와 부처와 니체와 베르그송과 조르바를 꼽으리라”고 말했는데, 마지막으로 언급한 인물이 바로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실제 모델이다.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쳤던 나의 우상’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 조르바, 카잔차키스는 친구이자 동업자 그리고 불멸의 우상인 조르바를 두고 “나는 조르바라는 위대한 자유인을 겨우 책 한 권으로 변화시켰을 뿐”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카잔차키스는 예수를 새롭게 해석한 작품들 때문에 몇 번의 곤욕을 치르기로 했다. ‘미칼레스 대장’은 그리스 정교회의 규탄을 받았고,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은 그리스 교회의 금서 목록에 올랐다. 결국 그리스 정교회는 파문을 내렸다. 그 외의 작품으로는 ‘위대한 성자 프란체스코’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다’ ‘오디세이아’ 등의 소설 및 자서전이 있다.

두 번째 부인 엘레이니 카잔차키스의 표현을 빌자면 “향연에 참석하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문턱을 넘어서는 왕처럼” 카잔차키스가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흘렀지만 작품과 삶에서 카잔차키스가 보여준 강렬한 의지와 열망은 지금도 주효하다.

“나는 한계를 받아들이지 않으리라. 겉모습 속에 나 결코 들어있을 수 없어 나는 숨이 막힌다. 이 깊은 고뇌 속에서 피 흘리며 겸허하게 살아나가는 것, 이것이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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