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지간의 한 바퀴, 12년 동안 변화한 한인경제


▲ 2007년말 LA한인타운 전경                                                 그래픽 김태훈

ⓒ2008 Koreaheraldbiz.com

설화에 하늘의 대왕이 동물들에게 정월초하루에 도착한 순서로 지위를 내리고자 했던 경주에서 가장 열심히 수련했던 소의 등에 타고와 마지막에 가장 먼저 도착하게된 영리함의 상징인 쥐띠해 2008년 무자년의 새해가 밝았다.

2007 정해년을 보낸 한인사회는 황금돼지해란 말이 무색할 정도의 경제 전반의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공교롭게도 12년전 같은 돼지띠였던 1995년 역시 부동산, 다운타운 의류, 은행 소매경기 등 한인 경제 전반이 지난해와 비슷한 불황 호소하는 한해로 기록됐다.

다행스럽게 1년후 쥐띠해인 1996년 병자년부터 부동산 경기 호조와 각종 미국 경제에 긍정적인 지표들이 한인경제와 맞물려 90년대 후반까지 이어진 미국호경기에 한인 경제도 편승하는 분위기를 보여줬다.

이에 본보는 같은 띠의 해였던 1995년과 지난해인 2007년의 유사한 경기부진 상황과 이를 극복해 갔던 1996년도 한인 경제 상황을 돌아본다.

또한 지난 12년간 급속한 속도로 성장한 한인경제를 짚어보고 민첩함과 강한 활동력을 바탕으로 재물과 다산을 상징하고 있는 쥐띠해인 2008년 한인 경제의 왕성한 성장을 전망해 본다.


12년간의 한인 경제 변화 (1) 다운타운 의류업계

1994년 12월 멕시코 정부의 페소화 절하 조치로 전체 매출중 30~40%의 비중으로 멕시코와 거래를 했던 300여 한인 의류업체들에게 1995년은 시련의 한해로 기록됐다.

전체에서 멕시코와 중남미가 차지하는 비중만큼 30~40%가량의 매출 하락을 기록했던 300여 한인 의류업체들에게 이러한 위기는 새로운 기회를 찾게되는 1996년을 만들어 주었다.

한인 의류업체들은 기민한 대처는 1996년을 기점으로 멕시코 등 중남미에 몰려있던 비중을 미국 국내 및 타지역으로 시장확대를 시도해 위기를 기회로 살리게 됐다.

포에버 21과 같은 대형 의류 유통 업체들의 성장과 지금은 이미 보편화된 주류 대형 백화점과 할인점 납품 및 한국, 중국, 유럽 등 시장 다변화 역시 이시기 부터 진행되었다.

과거처럼 업체간 과도한 가격 경쟁과 디자인 복제, 렌트비와 키머니 부담 등 산적한 문제에서 아직 벗어나진 못했지만 현재 한인의류업계는 LA다운타운 의류 상권의 70%이상을 차지하며 12년전 30억달러 수준의 전체 매출규모에서 2배정도 증가한 60억 달러의 연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업체수 역시 두배이상 증가한 800~1000여개에 이르며 전체 LA한인 경제의 30%가량을 차지해 12년전이나 지금이나 LA한인경제의 젖줄이라고 불리고 있다.

2008년 들어 한인의류업계는 증가추세에 있는 중국의 인건비와 노동법 문제 대두에 따른 해외 생산기지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업계는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와 함께 중국의 30%수준의 인건비의 숙련공과 언어문제도 없는 북한 개성공단내 공동생산기지 추진과 한국의 섬유 및 패션 관련 지자체 및 유관단체와의 긴밀한 협조를 이끌어내 실질적이며 지속적인 성장동력을 마련하고 있다.

(2) 부동산

1995년이나 12년후인 2007년 모두 미국의 전국적인 부동산 침체의 영향으로 한인들 역시 극심한 어려움이 이어졌다.

1995년부터 지속된 각종 부동산 경기 부양정책에 따라 1996년에 LA지역 평균주택가격 17만 7270달러로 저점을 찍고 7년만에 반등해 1998년 20만 100달로 상승했으며 2000년대 중반 호경기에 비해 다소 하락하긴 했지만 2007년 말 57만여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 반등에 기점 역할을 했던 1996년은 연초부터 30%를 육박하는 매매 증가를 기록하며 건축경기와 전체 고용시장 활성화에 촉매제 역할을 했다.

이색적인 것은 당시 한인 주요 언론을 통해 확인된 LA 한인타운 콘도 판매가는 1베드룸은 5~10만달러, 2베드룸은 7~15만달러선. 이는 현재에 1/6수준으로 12년간 가격 상승폭이 컸음을 보여주고 있다.

상가 렌트비의 경우 현재 한인타운 주요 상권이 스퀘어피트당 7~10 달러선에서 렌트비가 책정되는 것에 반해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1달러 50센트 가장 비싼 지역이였던 웨스턴과 6가 일대가 스퀘어피트당 3달러 50센트를 기록했다.

또한 1996년은 한인타운이 위치한 미드윌셔 지역의 상업용 건물의 한인소유가 본격적으로 시도된 때이기도 하다.

당시 30%를 넘는 공실률을 기록하던 한인타운 윌셔지역 후버에서 노턴까지 이어진 50여개 대형 오피스 빌딩 중 이기간 한인소유 비율은 20%. 현재는 제이미슨 프로퍼티를 비롯한 한인들이 이지역의 90% 이상을 소유하고 있으며 공실률 역시 LA카운티 전체 사무실 평균인 8.9%보다 낮은 5%에 불과해 한인들의 상업용 부동산 투자 확대와 관리에 괄목할 만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2006년 후반기부터 1년넘게 이어지고 있는 부동산 경기 침체와 서브프라임의 여파로 동면에 빠져있는 한인 부동산 시장은 올 한해 경기 역시 12년전인 1996년과 달리 밝지않게 전망되고 있다.

현재 미국 부동산 시장은 한국의 해외투자 규제 완화 조치로 인한 미국 내 부동산 투자 자금 유입 증가에 대한 기대감과 3번에 걸쳐 인하된 연방기준 금리가 올들어 2%가량 추가로 내리 부동산 경기를 부양 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긍정적인 예측으로 시장의 희망을 주고 있다.

하지만 미국경기부진 및 인플레이션 우려, 환율하락과 국제 금융시장 불안 등 경기후퇴를 알리는 전문가들의 예측 또한 쏟아지고 있어 쥐의 특성처럼 현명하고 기민한 시장 대처가 이어지지 않을 경우 시장에서 도태될 우려가 있는 중요한 한해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3) 한인은행권

지난 12년간 한인 은행권은 엄청난 규모의 외형적 성장을 이뤘다.

1995년 말 당시 남가주 지역 9개은행 32개 지점에서 900여명의 직원으로 13억달러의 예금고를 기록하던 것이 12년후인 지난 2007년 말 현재 14개은행의 210지점에서 3000여명의 직원들이 820% 가량 급증한 120억 달러의 예금고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도 12년전과 같이 부실대출과 과도한 경쟁에 따른 성장통을 지속해 오고 있으나 1995년말 1108만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던 한인은행권은 2007년 12년 전보다 12.6배에 달하는 1억 4000만 달러 규모로 순익이 확대되었으며 3000명 안팎으로 200%이상 증가한 직원수 역시 LA지역 고용에 상당 부분을 담당하게 돼 한인경제에 중요한 축으로 자리매김 했다.

올 한해 한인은행권은 12년전에도 경험한 부실대출문제 해결과 경쟁구도의 지속 속에 타주진출 확대 및 한국에서 유입되는 투자금 운용과 함께 지난해 부터 불거져온 LA한인 은행간 및 한국 유력 은행의 인수합병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측된다.

또한 이와 더불어 고위직의 은행간 인력이 오가는 인사태풍도 예고 되는 등 급변이 예상되는 미국 및 국제경제의 변화와 함께 한인은행권의 시장 상황 역시 급변이 예상된다.


▲ 1995년말 LA한인타운 전경                                                 그래픽 김태훈

ⓒ2008 Koreaheraldbiz.com

(4) 기타

1995년 세밑 한인타운 분위기는 긴 불황의 터널 끝의 모습과 함께 당시 한인타운 지역 LA시의원이였던 네이트 홀든 의원의 한국 방문시 성접대 파문과 한인비하 망언으로 어수선한 사회적 분위기가 이어졌다.

지난해 LA한인타운은 과도한 한국 대선 열기와 함께 김경준, 에리카 김 등 BBK과 관련된 이슈와 루머들로 멍들었던 연말로 기록됐다.

1996년에는 연초부터 제 22대 한인회장 선거를 둔 잡음 속에서 조인하 회장이 당선됐으며 연말에는 미국에 대통령선거에서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다.

공교롭게도 올해에도 LA한인타운에서는 5월 한인회장 선거가 예정돼 있어 벌써부터 유지급 인사들의 하마평이 오가고 있으며 올 연말 미국의 대통령 선거 역시 예정되어 있어 일부 한인자영업자와 다운타운 의류업자들은 조심스례 대선 특수를 예상하고 있다.

또한 관광,호텔,요식업 등 한인타운 주요 자영업자들이 기대하고 있는 한국인 미국 무비자 입국 시행에 대해 12년전에도 한국계 연방하원의원 이였던 김창준의원에 의해 발의되어 추진됐지만 경제적 기대효과 미흡과 원내 소수계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당시에는 좌절 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의 무비자 추진은 한미간 추진중인 FTA와 함께 양국간 경제교류 활성화에 상당부분의 기여가 예상되어 빠르면 연말, 늦어도 내년초 시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1990년대 초반 주택시장 붕괴로 일시적인 어려움을 겪던 미국 경제는 1980년대 제조업 분야의 과도한 희생을 감수한 구조조정과 90년대 금융과 정보산업 등을 중심으로한 신경제 체제를 구축을 통해 10여년간의 장기 호황을 누렸다.

주요 경제지표 변화중 서부 텍사스산 중질류(WTI)의 가격은 1996년 22.16달러를 기록하다 지난해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며 4배가량 급등해 100달러에 선까지 접근 했으며 올해는 76달러선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금값의 경우 1996년 온스당 250달러선에서 지난 연말 800달러를 돌파해 27년만에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올해는 780달러선이 유지 될것으로 예측된다.

환율은 1995년 평균 달러당 771원에서 1996년 804원대로 상승했으며 1998년 1400원대를 거쳐 2007년 930원대를 거쳐 2008년엔 850원대를 유지 할 것으로 전망된다.

LA지역 한인경제는 미국 경제상황에 분명한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경제특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나름의 톡특한 형태로 발전해 왔다.

미국 전반적으로 호경기로 돌아서던 1995년 다운타운 의류업과 부동산 경기에 비중이 높던 한인경제는 1~2년 늦게 회복세로 돌아섰다.

한편 인터넷 기업들의 거품이 붕괴되던 2000년대 초반 한인경제는 1997년 말 부터 진행된 한국의 IMF로 인한 본국 자금 및 인구유입에 따른 특수로 오히려 안정적 성장세를 유지하기도 했다.

호재 보다는 악재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2008년 미국 경제에 대해 LA한인경제는 발전의 발목을 잡는 국내적 요인과 함께 한미 FTA 최대 수혜지역, 무비자 시행에 따른 관광객 급증과 한국의 해외투자 제한 철폐 등 분명한 호재가 상존한다.

한세기를 넘어 새로운 백년을 써내려 가고 있는 한인들은 유대인보다 더하는 오명을 받아가며 남보다 더욱 근면한 자세로 경제 중심의 이민사를 이어왔다.

LA흑인폭동과 대지진 등 90년도 초반 위기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연 200억달러에 육박해 LA시의 1/6수준, 한국의 대구광역시 이상의 경제규모로 급성장한 LA한인경제는 언제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슬기로운 성장 저력을 발휘했다.

12년전 페소화 가치 급락으로 극심한 위기를 시장 다변화라는 기회로 변모시킨 한인의류업계와 90년대 후반 한국의 외환위기를 도와 한국 경제와 함께 한인경제 발전에도 이바지했던 한인들의 저력이 또다시 발휘된다면 현재의 위기도 극복 될 것이다.

시간상 자정에서 다음날 밝은 태양 빛이 어둠 속에서 잉태되는 시점이며 계절상 겨울의 음기(陰氣) 속에 만물을 탄생시킬 일점의 양기(陽氣)가 불씨처럼 점화되는 시기를 상징하는 쥐띠해인 2008년, 한인경제가 오랜 동면에서 깨어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만들어가는 한해가 되길 기대해 본다.

이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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