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팬더… 붉은 호랑이… 필드위의 ‘색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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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게나 입은 듯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필드를 누비는 유명 골퍼들의 스타일은 세계 정상급 스타일리스트들의 치밀한 작업 끝에 탄생된 것이다.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어느 것 하나 대충 입거나, 대충 걸친 게 아니다. 색상이며 디자인, 디테일 모두가 철저한 전략의 산물이다. 특히 골프웨어의 색상은 더욱 그렇다.
 
소리는 없지만 강렬하다. 부딪히진 않지만 치열하다. 초록색 그린 위에서 펼쳐지는 색깔 전쟁이 갈수록 화려해지고 있다. 골프엔 유니폼이 없다. 자신이 택한 스타일로 개성을 표현하고, 본인이 고른 색깔로 자기만의 이미지를 만들어간다. 최근 선수들은 다채로운 ‘필드 패션’을 기싸움과 신경전의 수단으로까지 활용하고 있다.  지난 6일 끝난 PGA대회인 AT&T내셔널 최종 라운드에서 타이거 우즈와 앤서니 김이 함께 나선 챔피언조는 필드에서 유독 튀었다. 최종 라운드에서는 늘 빨간 티셔츠를 입는 우즈에 맞서 앤서니 김은 파란 셔츠를 골랐다. 우즈의 까만 모자, 검은색 바지와 대비되도록 모자와 바지는 모두 흰색으로 맞춰 입었다. 1라운드에서의 선두 자리를 2라운드에서 우즈에게 내준 앤서니 김은 3라운드에 다시 공동선두로 올라서며 우승 의지를 다졌다. 마지막 날 같은 조에서 경기를 펼치게 된 두 선수를 두고 언론에서는 ‘붉은 호랑이(Tiger)’ 대 ‘파란 사자(Lion)’로 신경전을 부추겼다.
 
철저한 심리 공략까지 동원했지만 결국 우즈를 넘어서지 못한 앤서니 김은 3위에 그쳤다. 그러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두 선수의 선전에 최종 라운드에서의 심리전까지 볼거리를 더 하며 경기 중계 시청률도 지난해보다 3배 높을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한승희 닥스 숙녀부문 컬러리스트는 “중요한 자리에 자신을 각인시키기 위해 강한 색을 택하기도 하고 액세서리로 포인트를 줘 자신을 표현하기도 한다”며 “옷의 컬러를 어떻게 조화시켰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이미지는 굉장히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종라운드에 빨간 티가 뜨면
 
타이거 우즈는 최종 라운드에서 유독 강하다. 일단 선두로 4라운드를 시작했다면 역전은 불허다. 몇 타 뒤진 상태에서 출발해도 극적인 역전으로 드라마를 만든다. 올 들어서도 지난 3월 아널드파머인비테이셔널에서 5타차 역전 우승을 일궈냈다.
 
승리에 환호하며 주먹을 불끈 쥐는 우즈와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는 빨간색. 우즈가 최종 라운드에서 늘 빨간 티셔츠를 입고 등장하면서 ‘빨간 셔츠의 공포’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타이거 우즈가 마지막 라운드에 나설 때 붉은색 티셔츠를 입는 이유는 태국 출신인 어머니 컬티다의 권유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염소자리’인 우즈에게는 붉은색이 힘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우즈는 어머니의 말에 따라 열여섯 살 때부터 대회마다 빨간 티셔츠를 입었다. 빨간 티셔츠에 대한 질문에 우즈는 “어머니가 빨간색엔 행운이 깃든다고 해서 미신인 줄 알면서도 입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심리학적으로 붉은색은 열정과 에너지를 상징한다. 과학자들은 영장류에 있어 빨간색은 위협색으로 패기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실제 우즈와 마지막 라운드에 나선 상대 선수들이 스스로 먼저 무너져 내리는 경우도 많았다.
 
우즈 본인에게도 빨간색 티셔츠가 평소 냉정하고 차분한 성격을 자극해 근육을 긴장시키고 힘을 분출하게 한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우즈가 검은색 중심의 코디를 했을 땐 성적이 좋지 않았다. 

▶나만의 색을 만들어라
 
타이거 우즈의 빨간색이 위협이자 자극이었을까. 우즈 외에도 자신을 하나의 색깔로 각인시키려는 골퍼들이 늘고 있다. 1인자의 실력을 상징하는 ‘황제’나 ‘여제’와 같은 수식이 아니라도 색깔과 관련된 애칭으로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LPGA에서 뛰는 여자 선수 중 폴라 크리머는 핑크색을 좋아해 아예 ‘핑크 팬더’란 별명이 붙었다. 우즈처럼 최종일에 빨간 티셔츠를 입는 정도가 아니라 의상과 골프백, 그립과 액세서리는 물론 마지막 라운드엔 머리 리본과 볼까지 핑크색으로 맞춘다. 짧은 치마를 즐겨 입는 미셸 위도 핑크색 애호가로 매니큐어까지 핑크로 꾸미고 필드에 나서기도 한다.
 
한때 최경주는 마지막 라운드에서 늘 오렌지색 상의를 골랐고 드라이버와 우드뿐 아니라 아이언 샤프트까지 오렌지색으로 바꾸면서 ‘오렌지 탱크’라고 불렸다.
 
욕심을 내면 뒤처지고 잡념이 많으면 무너진다는 골프는 결국 심리전. 선수들은 그날의 컨디션뿐 아니라 옷 색깔을 포함한 패션 역시 경기력에 영향을 준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LPGA 투어에서 ‘필드의 패션모델’로 불리는 나탈리 걸비스는 “옷을 잘 입을 때 집중력이 더 좋아진다”고 말했다. 걸비스가 최종일 검은색 옷을 즐겨 입는 이유도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LPGA에 걸비스가 있다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무대에서의 패션 모델은 서희경(하이트)이다. 늘씬한 키와 날씬한 몸의 서희경은 “예쁜 옷을 입고 플레이를 하면 기분이 좋고 자신감도 생기는 것 같다”며 “심리적으로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윤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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