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무엇이 40년 우정을 등돌리게 했나

▲ 가수 이장희씨의 전직 매니저 김 석씨가 10일 LA한인타운 가든스윗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최승환기자 ⓒ2011 Koreaheraldbiz.com

10일 오전 LA한인타운의 한 호텔에서는 다소 의아스러운 기자회견이 열렸다. <가수 이장희 전 매니저 김 석씨 긴급 기자회견>이라는 타이틀이 배너로 내걸린 회견장에는 KBS MBC SBS 등 한국의 3대 지상파 방송사와 LA지역 로컬 매체에서 취재나온 기자 10여명이 자리했다.

이장희씨가 누구인가. 한때 LA지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매체로 꼽히던 라디오코리아의 사주였던 인물이다.그보다는 70년대 청년문화의 기수처럼 상징되는 <그건 너>의 가수로 더 유명하다.

콧수염을 트레이드마크 삼아 70년대 초중반 톱가수로 인기를 몰던 이씨는 한국 연예계를 초토화했던 대마초 파동에 휩쓸려 가요계를 떠났음은 잘 알려져 있다.

미국으로 건너와 LA에서 <로즈가든>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경양식을 겸한 술집을 운영하던 이씨는 80년대말 라디오코리아의 사장으로 변신, 2000년대 중반까지 재미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지난 2003년 라디오코리아를 전격적으로 폐업하고 자신이 운영하던 또다른 매체 <스포츠서울USA>의 발행인으로만 이름을 남겨두더니 그마저도 몇년전 매각, 울릉도에 주로 기거하면서 은퇴생활을 해왔다. 세시봉콘서트에 출연한 이장희씨(MBC화면캡처) 그런 이씨가 작년말부터 한국에 불기 시작한 이른바 <세시봉> 열풍에 힘입어 대중매체에 등장한 게 지난 2월. MBC-TV의 인기예능프로그램 <놀러와>에서 설날특집으로 마련한 <세시봉 콘서트>에서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조영남과 함께 출연하면서 이씨는 일약 세간의 화제를 집중시켰다.

30여년 가까이 대중매체에 나서지 않던 그가 옛 통기타 친구들과 ‘감동적’인 우정을 과시하게 되면서 이씨는 순식간에 ‘전설’이 되고 ‘신화’로 포장되기 시작했다. MBC의 또 다른 인기예능 <강호동의 무릎팍 도사>에 출연, 그동안의 인생역정을 들려주기에 이르자 자서전을 출간하겠다는 출판사까지 나서는 등 이씨에 대해 ‘화려한 옛 추억의 인기’가 불 붙듯 되살아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직 매니저요, 친구요, 집사였다는 김 석이라는 인물이 ‘긴급’이라는 용어까지 덧붙인 기자회견을 가졌으니 이씨가 지난 30여년간 생활했던 LA지역의 미디어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회견을 갖기 닷새전인 지난 5일 각 언론사에 보낸 공문에 작성한 내용을 감안하면 김씨가 이씨에 대해 상당히 폭발성있는 폭로거리를 가진 것으로 보였다.

기자회견 참석 요청 공문에 따르면 김씨는 “이장희씨가 세시봉 친구들 열광에 힘입어 큰 인기를 누리게 된 뒤부터 측근들과 이권다툼을 심각하게 벌이고 있다”라며 “40년지기인 전직 매니저로서 이해할 수 없는 치졸한 행각을 펼치고 있어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대마초 파동 등에 휩싸여 LA로 도피해오는 등 그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고 도왔던 사람으로서 공인 이장희씨의 이중성을 폭로하고자 한다”는 말로 회견의 목적을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회견장에서 김씨는 세간에 알려진 이씨의 행적에 관한 내용 외에 이렇다할 폭로를 하지 않았다. 김씨는 “변호사들이 법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는 내용들은 말하지 말라고 해서 당초 폭로하려던 내용의 10분의 1도 말하지 못한다”라며 “일단 그동안 내가 고생한 대가로 그가 벌어들인 총재산의 절반을 요구하는 소송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도대체 뭘 폭로하려고 했는가”라는 기자들의 다그침이 이어지자 김씨는 “이씨가 두번째 부인과 이혼한 것은 TV를 던지고 골프채로 와이프를 무지막지하게 두들겨 패서 그런 것인데 그가 TV에서는 최고의 로맨티스트인 듯 자신을 묘사하는 데 역겨웠다”는 정도의 얘기를 꺼냈을 따름이다.

공식회견을 마친 뒤 김씨는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내 심정은 이장희씨 멱살을 붙들고 몇대 후려 패고 싶을 뿐인데 법적 제약 때문에 그러지 못해 답답하다”

김씨는 “가수 이장희에 대한 진실된 모습은 내가 죽기 전에 책으로 써서 반드시 널리 알릴 것”이라고 강조, 이씨에 대한 모종의 배신감이 상당히 깊어져 있음을 드러냈다.

김씨는 40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씨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도운 측근으로서 이처럼 ‘폭로’라는 형식의 비방에 나설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이런 식으로라도 이씨와 나의 오랜 인연을 끊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더 이상 이장희라는 인간에게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말도 했다.

이장희씨는 최근 한국 검찰에 한국저작권협회 신상호 회장을 음원수입 횡령혐의로 고발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씨는 참고인으로서 검찰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검사로부터 이씨가 자신에 대해 증언한 내용을 전해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4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한 자신을 ‘매니저도 아니었고,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김씨는 이씨가 LA에서 라디오코리아의 경영권을 확보할 당시 상당히 깊숙하게 지원했는데도 아무런 지분배당을 받지 못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씨는 자신의 분노가 “늘 주변 친지를 따돌리고 독식해 버릇하는 이장희씨의 욕심많은 인간성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환멸과 회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단정했다. 베풀지 못하는 우정에 칼을 빼든 셈이다.

따지고 보면 아무리 그렇다해도 40년 지기의 사생활을 폭로하려는 김씨의 ‘문제의식’은 공적인 영역과 상당히 거리가 멀다. 다만 김씨가 <긴급 기자회견>이라는 형식으로 얻은 게 있다면 이장희씨가 ‘신화’나 ‘전설’로 화려하게 포장될만한 공적인 가치가 있는 인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을 대중들에게 심어준 정도일 것이다.

황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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