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의 뭔소린지]기부 행위의 불편한 속셈

지난 주 세계의 시선은 새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에 모여 있었다. 하얀 연기와 함께 선출된 프란치스코 1세는 청빈함으로 유명한 분이다.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을 위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하셨고 스스로도 관저를 마다하고 작은 아파트에서 생활하며 직접 음식을 해드시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분이다. 이번에도 교황선출 전 묵었던 숙소의 숙박료를 직접 계산해서 화제가 됐다.

자신이 교황으로 선출되면 축하하기 위해 로마에 오지말고 그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기부하라고 아르헨티나 신자들에게 당부하셨다지?
 
바다가 썩지 않는 건 3%의 소금 때문이라고 하는데 나같은 인간들이 오염시킨 세상에서 아직도 공기가 숨쉴 만하고, 꽃이 제때 피고, 물이 투명한 것은 다 이런 분들의 정화노력 때문이다.

의사며 예언가로 1900년대 초반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던 에드가 케이시는 교황청의 해산을 예언했지만 교황청 굴뚝에서는 하얀연기가 아직도 솟아 오르고 있고 프란치스코 1세같은 분들이 낮은 곳에 계시는 한 그의 예언은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하긴 이미 예언시기도 지났지만.

교황께서 당부하셨던 그 기부. 세금보고철이라 뭐 공제받을게 없나 이것 저것 챙겨보다 작년에 Good Will에 안 입던 옷 한보따리 갖다주고 받은 영수증이 눈에 띈다. 그게 지난 한해 세상과 나눈 유일한 노력, 아니 이건 노력도 아니다. 그냥 시늉이다.

사실 안입는 옷들이 가뜩이나 좁은 옷장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고역이다. 그래서 갖다줬을 뿐이지, 이걸로 헐벗은 이웃이 온기를 유지하기를 바란 것도 아니다. 팔아 봤자 돈도 안되는데 그렇게 갖다주고 세금보고에 공제액이라도 높이자는 계산이다.
 
그러니 이건 기부도 아니고 온정도 아니고 노력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면서 또 불순한 상상을 해본다. 혹시 돈많은 부자들이 기부하면서 나같은 생각하는 거 아냐?

2012년 다보스 포럼에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있었다. 가장 효과적인 시스템이라고 믿었던 자본주의의 부작용이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 하고 따뜻한 자본주의를 실현해 나가자는 뭐 그런 주제들이었다.
 
이런 내용이 보도되자 언론에서는 부자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등, 다보스가 자본주의를 버리고 포스트 캐피탈리즘을 채택했다는 등 요란했었다. 그런 보도를 접할 때마다 혼자 웃었다. 기가 막혀서 웃었다. 따뜻한 자본주의? 내가 아는 한 그런 건 없다.

자본주의의 속성이 차갑고 비정한 건데 거기에 무슨 온기를 바라는 건 뱀에게 따뜻한 피를 가지라고 하는 것과 같은 소리다. 그리고 그 후 뭐 달라진 건 없다. 금융시장 붕괴와 경기침체로 1%에 대한 반감이 사나워지니까 달래보려는 건지 이게 무슨 립서비스도 아니고.

우리가 가진 건 없지만 바보는 아니다. 그런 것을 반성과 성찰이라고 발표하는 논조도 열받는다. 그걸로 우리의 곤궁이 구제될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에 없었다. 그저 한편의 고해성사를 보는 느낌이었으니까.
 
이 척박한 세상에서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은 기부일거다. 그러니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이 그렇게 많은 돈을 기부하겠다고 하고, 부자증세하라고 하는 것일테고, 그런 뉴스를 보면서 온기를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빌 게이츠가 독일부자들에게 기부 캠페인 동참을 권유하는데 반응이 영 시원찮다. 그럼 독일부자들은 인색하고 짠돌이라서 그런 건가?

2012년 독일의 한 거부가 시사 주간지 슈피겔과 인터뷰를 한다. 미국에서는 기부액의 대부분이 세금에서 공제되기 때문에 부자들은 기부를 할 건지, 세금을 낼 건지 선택하게 된다는 뼈있는 말을던진다. 기부를 하는 의도가 뭐냐고 묻는거다. 영국의 가디언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간다.

‘만약 부자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진심이 있다면 다른 약속을 하면 된다. 세금을 제 때 제대로 내고 직원들에게 월급과 연금을 더 많이 주고 고용안정을 보장하고 근로환경을 개선해주면 된다’고 반박한다.
 
독일에서는 높은 세금을 내는 행위 자체를 기부의 한 방편으로 인식한다. 거둔 세금으로 정부가 알아서 필요한 곳에 쓸 거라는 믿음때문이다.

정부가 아닌 일부 단체들이 주체가 되어 막대한 기부액을 활용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방법인 지에 대해 독일부자들은 회의적이다. 거기에 세금 공제혜택은 그 의도를 의심하게 하고 가끔 기부행위가 화려한 마케팅 전략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현재 우리의 시스템에서 기부는 그나마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거의 유일한 구원이다. 그런데 나처럼 Good Will에 기부한 몇푼 안되는 돈같고도 세금공제를 위한 잔대가리를 굴린다면 기부받는 사람들이 너무 불쌍해진다. 밥을 먹을 수 있는데 죽을 먹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것도 감지덕지하면서.

독일에서는 세금도 기부라고 흔쾌히 납세한다는데 난 세금철이면 어떡하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을까 고민한다. 한푼이라도 줄이려고 눈 벌개가며 숫자 맞춘다.

버림받은 자들을 위해 에이즈 환자들의 발을 씻기고 입을 맞추던 교황 프란치스코 1세같은 분들이 나같은 인간들 때문에 수고가 더 깊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가장 원하던 일이 자신으로 인해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것이라고 했는데 가뜩이나 힘든 세상에 민폐만 끼치는 것 같아 미안하고 면목없다. 오늘도 선명한 기부를 하고, 봉사활동을 마다않는 분들께 마음으로부터 깊은 채무의식을 느낀다. 부끄럽고 쪽팔리다.

김형준8


김형준/방송인·닭굽는 마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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