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유의 춤과 사랑이야기]부정놀이

전쟁의 신이여 부정한 것을 없애주어라

부정놀이춤
어린 시절, 모태신앙이라는 이유로 제사나 굿하는 것을 직접 본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의 기억이다. 어머니를 따라 재래시장에 갔다. 이것저것 정신 없이 구경을 하다가 순간 왼쪽 등짝에서 불이 났다. 황당했다.
 
아무 이유없이 어머니께 기습공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유인즉, 시장 귀퉁이에서 울려 퍼지는 굿 소리에, 나도 모르게 무릎을 굽히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던 것이다. 그 모습이 어머니께는 상스럽게 보였던가 보다. “커서 뭐가 되려느냐? 남들 앞에서 다신 그러지 마라!” 라는 꾸중을 들었고, 그 당시 내 자신이 너무도 창피스러워 그 자리에서 도망가고 싶었던 기억이 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무당이 추는 <무속춤>을 추고 있다. 스스로의 선택이었고, 어린 시절로부터 삼십여년이 지난 지금은 내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 춤을 통한 무당춤은 현재 무대에서 재현된다. 즉, 신을 받은 무당들은 굿판에서 그들의 춤을 추고, 나와 같은 부류의 춤꾼들은 대부분 무대 안에서 무당 춤을 재현한다.

예전부터 우리 어르신들은 ‘부정 탄다’라는 말씀을 하시며, 남이 쓰던 물건을 집에 들이는 일마저도 함부로 하지 않으셨다. 물론, 사람이 죽고 사는 출산과 장례, 그리고 사람을 만나는 일 또한 조심하셨다.
 
그 속의 의미는 깨끗하지 못하거나 사람이 죽는 따위의 불길한 기운인 ‘부정(不淨)’을 미리 예방하려는 의미였다. 여기에 신을 춤으로 즐겁게 놀린다는 ‘놀이’라는 의미까지 가미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부정놀이’라는 한국 무속춤의 탄생 배경이다.

‘부정놀이’는 경기도 당굿이 본적지가 된다. 즉, 이 춤이 태어난 곳은 경기도에서 이루어진 당굿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이 경기도 당굿의 한대목인 ‘군옹굿’이 ‘부정놀이’의 모태가 된다.
 
이것을 고(故)김숙자 선생이 춤으로만 재창조한 것이 지금 우리가 추고 있는 무속춤의 하나인 ‘부정놀이’가 된다. ‘군옹’ 이란 옛날옛적 이름을 날렸던 장수신을 말하는데 예를 들어 삼국지의 조자룡같은 전쟁터의 신과 같은 존재로, 모든 악귀와 재앙을 막아주는 수호신을 말하는 것이다.

열 두개나 일곱개의 조그마한 방울들이 매달려 있는 방울을 들고, 극락에 있는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이 그려져있는 삼불부채를 든다. 무관이 입었던 빨강색 긴 장삼모양인 ‘척릭’과 빨강색의 갓을 쓰고 ‘부정놀이’는 전쟁의 신의 힘을 빌어 부채 속에 있는 삼불과 함께 신과 복을 맞아들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간은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는 것을 춤을 추면서 느끼게 된다. 그 집착은 자신을 사랑 하는 곳에서부터 나왔을 것이다. 자신을 지키고 싶은 욕심, 다치고 싶지 않은 애착 말이다.’부정놀이’와 함께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세상에서 가장 큰 돼지와 삼지창이 보관되어있던 컨테이너 박스에서 옷을 갈아 입었던 굿판이 기억난다.
 
내가 이렇게 까지 하며 이 춤을 지켜야 하나….잠시 어린 마음에 갈등을 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성당에서의 행사든, 방송국에서의 행사든 아니면 무대에서 이루어진 공연이든 간에 이 춤을 보고 싶은 이들은 삶의 평화와 기쁨을 기원하는 공통분모가 지니고 있다. 이것은 또한 자신들의 삶을 지키려는 삶에 대한 짙은 사랑 아닐까 싶다.
정지유/무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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