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유의 춤과 사랑이야기]스카프에 끝난 맨발의 영혼

▲이사도라 던컨
없이 살았던 그때, 중고등학생의 로망은 승리의 화신을 나타내는 운동화 한 켤레를 사는 것이 꿈과 희망이었다.
 
어리석게도 모조품을 사 신고 그 위에 매직으로 덧바르며 진품인양 폼을 내던 ‘폼생폼사’ 동창들이 생각난다. 그들에게는 신발은 부의 상징이며 명예 이상의 도구였을 것이다.

신발의 역사는 약 2만5천년 정도로부터 시작된다. 이집트에서는 신분이 높은 이들 앞에서 샌들을 신을 수 없었으며 로마에서 또한 직업에 따라 샌들의 색깔이 달라야 하는 국가적인 법이 있었으니 신발은 계급이요, 지위였다.
 
 발레 또한 귀족을 위한 놀이문화였고 이것을 완성시킨 이는 프랑스 루이 14세의 호사스런 취미로부터 시작된다.

초창기의 발레신발은 하이힐로부터 출발한다. 18세기에 이르러 뒤축의 힐만 제거되며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뒤 지금의 모습인 플렛슈즈의 형태를 취한다. 이랬던 것이 19세기에 이르러 이태리 여성 발레리나 마리 탈리오니에 의해 발끝으로 춤을 추는 토슈즈의 작품이 선보이게 된다.

하늘을 향한 도전, 신을 향한 외침으로 상징되는 발레작품이 전부이던 그때 1877년 파산한 은행가의 딸 이사도라 던컨이 세상에 태어난다. 아름다움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운명을 가졌던 것인가? 아니면 태생에 대한 반항심이던가? 그녀의 일생은 소설이었고 비운의 주인공 그 자체였다.

꽉 조이는 코르셋 대신 고대 그리스의 의상을 입고, 발톱이 빠지는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는 토슈즈를 던져버리며 맨발의 이사도라 던컨은 그리스의 사랑과 자유를 꿈꾸며 ‘현대무용의 어머니’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하지만 거창한 수식어와는 달리 그녀의 개인적인 삶은 피폐했고 처절했다.

그녀는 스캔들의 원산지였다. 사람들은 그녀가 천여명의 남자들과 무절제한 생활을 한다며 수군거렸고, 천재적인 무대예술가와 재벌과의 연속적인 이혼, 그리고 아들의 죽음. 이러한 모든 불행은 점점 그녀를 미치게 만들었고 그러한 불행이 더더욱 맨발로 그녀를 무대에서 자유롭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쉰 살의 그녀 앞에 죽은 아들이 돌아왔다. 자신의 나이를 속여가며 20살 연하의 남자와 결혼을 하고 만다. 단지 그 남자의 외모가 죽은 아들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당연히 그녀의 결혼생활은 온전할 리가 없었다. 거침없는 폭언과 폭력 앞에 그녀는 술에 의지했고 그럴수록 그녀의 인생은 망가져갔다.

정신을 차리고 무대생활을 시작했을 쯤 그녀는 차에 올랐고 평소 즐겨 착용했던 그녀의 스카프는 자동차 바퀴에 끼어 출발과 동시에 그녀의 목을 졸랐다. 맨발의 영혼 이사도라 던컨. 처절한 사랑이 그녀를 현대무용의 어머니로 만들었을지는 모르나 그녀의 실제 모습 속에는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는 절망 속의 어미의 모습 뿐이다.

무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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