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유의 춤과 사랑이야기]Pina의 여림과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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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나이별 이칭’을 보면 세상의 원리와 순리가 보인다. 이십대 꽃다운 나이 ‘방년’, 마음이 서는 삼십대 ‘이립’, 세상 것에 미혹 당하지 않는 사십대 ‘불혹’, 하늘의 명을 깨닫는 오십대 ‘지천명’, 그리고 귀가 순해져 모든 말을 이해한다는 육십세의 ‘이순’.

내가 그녀의 작품을 만난 것은 내 나이 십대 후반이었다. 심심했다. 공연 내내 오만 잡생각에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이십대 후반, 그녀의 작품을 또 만났을 때 멋있다고 했다. 무식한 게 들키고 싶지 않아 그저 남들이 하는 말을 따라 했다. 불혹의 나이에 접어드는 이즈음 난 그녀의 또 다른 작품 앞에서 울어버렸다. 왜? 그녀는 몸둥이를 통해 무대에서 내 인생을 말해주었고 그 부메랑이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닮고 싶은 무용가이자 안무가인 피나 바우쉬(Pina Bausch). 그녀의 오래된 친구이자 영화 감독 빔 벤더스는 최근 작품 <Pina>를 통해 그녀가 살아 생전 만들어낸 주옥 같은 명작들을 엮어내고 있었다. 그녀의 춤 철학, 무용수에 대한 날카로운 탐구, 단원들의 절대적인 그녀를 향한 믿음과 존경.

2009년에 작고한 피나 바우쉬는 독일 출생으로 미국 줄리어드 대학에서 수학한 뒤 본국으로 돌아가 활동한 독일 무용가이다. 그녀는 미쳤다. 무대 전체를 흙으로 뒤덮어 그 위에서 춤을 추는가 하면, 때론 카네이션을 무대 전체에 깔아놓고 춤을 춘다. 그녀의 무대에서는 물이 흐르는 강이 있고 집채보다 더 큰 바위덩어리가 있다. 즉, 그녀 작품 안에는 물, 흙, 바람과 같은 자연 속에서 사람과 동물이 함께 뛰어 논다.

탄츠테아터(Tanztheater·무용연극)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천재 안무가 피나 바우쉬. 그녀의 무용수 한 명은 그녀에게 여림과 강함(fragility & strength)의 정의를 아는 안무가라는 평을 내린다. 그녀의 작품은 부서질듯한 미세한 감각과 움직임, 그리고 터져 나갈 듯한 폭발적인 힘이 함께 존재한다.

일상에 존재하는 하나하나가 그녀에게는 춤이 되고 소재가 된다. 얇은 회초리의 날카롭고 가느다란 소리를 이용해 무대에서 관객을 자극하는가 하면, 이미 자기의 생명을 다한 노인 무용수를 통해 와인 잔에 올라서려 하는 멍청한 행동들이 가슴을 찡하게 만들기도 한다. 거침없는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관객과 대화하기도 하고, 미친 듯이 주절거리며 때론 독백하는 춤이 피나 바우쉬가 추구한 새로운 장르의 예술세계였다.

그녀의 단원들에게는 아직 피나 바우쉬는 살아있다. 무용수에 대한 철저한 탐구. 작은 미물도 놓치지 않는 지독한 날카로움이 무용수들에게 있어 피나 바우쉬는 교주였고 하늘이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그녀의 춤에 대한 사랑이며 믿음이었음을 그녀의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정지유/무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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