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유의 춤과 사랑 이야기]님 잃은 꾀꼬리 한 마리: 황조가무

고구려 맨손춤
” 훨훨 나는 꾀꼬리는, 암수 다정히 즐기는데, 외로울사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

학창시절이 기억난다. 이 시는 문학적으로 역사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시다. 왜냐하면 최초의 현존하는 개인적인 서정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별표 다섯 개를 달았고 달달달달 시를 외웠던 기억이 난다. 고구려의 제 2대왕 유리왕의 작품 <황조가>. 짝을 잃은 애처로움을 표현하는 서정시.
 
이것이 바로 내 스스로 애절함을 느끼지 못하고 선생님으로부터 강요(?)되었던 빈출 1순위 안에 드는 문제 중에 하나였다.

지금 내가 바라보는 유리왕의 모습은 솔직히 우습다. 이 시는 결국 두 여자를 갖지 못한 탄식으로만 들릴 뿐이다. 그리고 또 집권자의 세력으로부터 자신의 여인을 지키지 못한 바보 같은 독백으로만 들리기 때문이다.
 
내용인즉, 유리왕의 왕비 송씨가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죽은 왕비의 자리에 두 명의 새로운 여인을 들이게 된다. 문제는 이 때부터 발생하기 시작한다. 이때 역시, 전라도냐 경상도냐의 출신의 문제 비슷한 것이 존재하였다. ‘화희’라는 여인은 골천 지방에서 뽑혀온 여인인 반면 ‘치희’ 라는 여인은 한인(漢人) 가문에서 나온 여자다. 즉, 중국에서 온 여인이다.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던 토착세력 골천여인 화희는 유리왕이 사냥을 간 사이 중국여인 치희에게 모욕적인 말을 한다. 종의 몸으로 첩실이 된 주제라며 중국여인을 사정없이 비하했고, 자존심 상한 치희는 이를 갈며 친정으로 돌아가 버린다.
 
사냥에서 돌아온 유리왕은 치희를 따라갔으나 떠나버린 여인은 돌아오지 않았고 이때 홀로 돌아오는 길에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꾀꼬리를 보며 “숲 속에서 훨훨 날아다니는 저 꾀꼬리는, 암컷과 수컷이 서로 정답게 노닐고 있구나. 사랑하는 임 잃어 외로운 이 내 몸은, 이제 나는 누구와 짝을 하여 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라며 자신의 처지를 시화하였다.

춤에서는 이때 황조가와 함께 <황조가무>가 존재하였다고 구전되고 있다. 물론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고 구체적인 춤의 무보도 존재하고 있지 않다. 다만, 현재 존재하고 있는 고구려 고분벽화를 통해 이러한 가설들을 유추하고 있을 뿐이다.
 
고구려의 춤은 예술사적 의의를 포함하고 있다. 고구려 705년의 역사 중 중국은 총 35개의 나라가 생성되고 패망하는 역사를 반복하였다. 이때 고구려는 중국을 통하여 외래의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춤 문화 자체를 생활 속에 스며들게 한다.

고구려의 대표적인 춤으로는 기다란 소매를 들고 추는 <소매춤>과 때론 이 칼럼의 사진에 나오는 <고산리 10호분> 벽화와 같이 맨손으로 춤을 추는 <맨손춤>도 있다. 특히, 고구려의 춤은 정적인 미와 동적인 미를 함께 가지고 있었고 특히 춤은 서민들과 함께하는 오락적인 요소가 강한 ‘함께하는 공동체 놀이문화’였던 것이다.

님을 잃은 애절함이든, 정치적 이유에서 자신의 여인을 지켜 주지 못한 모자람이든,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것이 유리왕의 삶이든 우리와 같은 서민들의 삶이든 춤은 우리의 삶과는 그리 멀지 않은 신기루임에 틀림없다.
정지유/무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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