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유의 춤과 사랑 이야기]사람의 향기 그리고 그 땅의 사랑

 
통영오광대


여러 나라 여러 지방을 돌아보아도 먹거리와 풍경의 매력에 빠졌을 뿐 사람의 향내에 취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이곳은 예술가라면 한번쯤 죽기 전 살아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곳. 사람냄새 그윽한 그곳은 바로 통영이다.

물 냄새, 무언(無言)을 만드는 낙조의 향기, 그리고 겸허함을 갖게 하는 사람들. 이러기에 수많은 예술가들이 통영이라는 지역에서 나왔는지 모른다. 근·현대사를 아우른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 뿐 아니라 20세기의 현대음악을 이끈 윤이상 선생과 같은 거장들을 낳은 곳이 바로 동양의 나폴리 통영이다.

이곳에 또 다른 예인 문둥이가 있다. 살갗에서 진물이 흐르고 눈썹도 없이, 비뚤어진 입으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성하지 않은 두 다리를 절룩거리며 춤을 춘다.

” 아이고 여보소 이네 한말 들어보소. 삼대 할아버지, 삼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인간의 죄를 얼마나 지었기에 몹쓸 병이 자손에게 까지 미쳐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단 말인가!”
이것은 다름아닌 <통영 오광대> 첫 마당에 나오는 문둥이의 탄식이다.

지체 높은 양반으로 태어났건만 얼굴의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망가져 버리는 저주받은 병. <통영 오광대>에서 말하는 문둥이는 의학적으로 말하는 나병을 앓고 있는 사람만이 아니다.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사회의 지도층으로서 지켜야 할 덕목을 지킨 자가 아닌, 삼대째 썩어 빠진, 가진 자의 만행을 꼬집는 소리이다. 어찌 보면 두 눈으로 보이는 흉물스러움 보다 더 역한 것은 사람의 도리를 모르고 사는, 그리고 그 죄를 알지 못하는 것일 게다.

이러한 부조리와 불합리를 총 다섯 마당을 통하여 <통영오광대>에서는 말하고 있다. 광대들의 탈놀이 오광대. 대광대패라 하여 전문 예인들로 연희되는 것과는 달리 통영의 것은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전승되어 왔다.

문둥이의 제 1과장 덧배기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작두를 타는 무당을 보는 듯하다. 양반과 말뚝이의 놀이 제 2과장 풍자탈, 사람이 만든 괴물 영노가 양반을 벌주는 제 3과장 영노탈, 본처와 애첩의 애환을 그린 제 4과장 농창탈, 끝으로 양반의 운명도 별수 없다는 교훈을 주는 사자춤의 포수탈로 총 다섯 마당을 이룬다.

그들이 살아온 땅을 사랑하는 통영사람들. 이런 마음이 그들이 웃고 우는 춤사위에서 그대로 전달된다. 여과되지 않는 춤사위 속에 낙조의 향기도 물의 향기도 그리고 사람의 내음도 이 이방인의 발걸음을 잠시 묶어 두었다.
정지유/무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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