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오버] 류현진, 다시 기회다

지난 주말 동안 벌어진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의 결과를 놓고 보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습니다.

클레이튼 커쇼와 잭 그레인키. LA다저스 마운드의 원투펀치. 메이저리그 최강의 좌우 선발투수. 태양은 다저스 선발 마운드 위에서 만큼은 두개가 떠오른다…얼마나 뛰어나고 강력한 지를 표현하는 온갖 수사가 동원됐던 그 두명의 투수가 나섰지만 단 1승도 거두지 못했습니다. 어찌 그들의 탓이겠습니까.

 
1,2차전에서 둘이 합해 14이닝 동안 3실점(2자책), 방어율 1.29를 기록했고, 탈삼진 15개였으면 명불허전이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1차전 3회에 2점을 뽑은 이후 19이닝 연속 스코어보드에 동그라미를 그린 타선을 질책할 수 밖에 없지요. 무려 16번이나 만들어진 주자 2,3루 상황에서 고작 1안타가 뭡니까.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디비전시리즈에서 탈락시킨 후안 유리베의 투런포가 터졌을 때만해도 거침없이 월드시리즈까지 내달리고도 남을 것같던 다저스 아니었습니까. 순식간에 지난 6월초 어느날의 꼴찌 분위기에 빠져든 꼴입니다. 다저스를 응원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어제 오늘 입에 거품 문 얘기를 새삼 길게 이어갈 필요는 없겠지요. 어쨌든 최소한 2번의 기회는 더 남아 있는 셈이니까요.

기회라고 말하니 이거, 우리의 류현진은 참으로 운이 좋은 선수라는 생각이 듭니다. 디비전시리즈 3차전에서 보여준 최악의 플레이를 만회할 수 있게 됐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25년만에 거머쥐려는 월드시리즈 우승의 꿈이 허망하게 꺼져버릴 지 모르는 팀에 기사회생의 계기를 만들어줄 기회를 잡았으니까요. 한 시즌 내내 지켜보고 굳어진 우리들의 판단과 느낌을 믿는다면 류현진에게 주어진 3차전은 너무나 명백한 ‘대운(大運)의 기회’입니다.

그 근거는 바로 엊그제 다저스 타선을 무력화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풋내기 투수들로부터 찾을 수 있습니다. 시리즈 2차전에 등판한 카디널스의 투수 5명 가운데 8회 아웃카운트 1개만 잡고 교체된 38살의 노장 랜디 초우트를 제외한 4명이 모두 루키나 다름없는 풋내기들이었습니다.

 
선발 마이클 와카와 8회 0.2이닝을 탈삼진 2개로 처리한 카를로스 마르티네스가 22살, 세이브를 따낸 트레버 로젠탈이 23살, 와카에 이어 7회를 마무리지은 케빈 지그리스트가 24살입니다.

1차전에서 사이영상 출신 그레인키와 맞대결해 대어를 낚은 조 켈리조차 25살에 빅리그 경력 2년 동안 통산 15승을 따낸 게 전부인 ‘애송이’였습니다. 그들은 팀내의 사이영상 출신 크리스 카펜터나 제이미 가르시아, 제이크 웨스트브룩같은 베테랑들의 부상으로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을 주목해봅니다.

 
게다가 약관의 나이인데도 그레인키와 커쇼가 품에 안은 사이영상 트로피 2개가 내뿜는 아우라에 눈길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헨리 라미레스의 옆구리에 시속 150km를 웃도는 강속구를 꽂아넣었고, 야시엘 푸이그의 ‘짐작스윙’을 농락했으며, 후안 유리베의 ‘한방 욕심’을 실컷 이용했습니다.

한국프로야구 경력과 올림픽,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의 경험을 갖춘 류현진의 내공은 카디널스 풋내기 투수들의 성과를 굳이 벤치마킹해야할 정도로 허술하지 않습니다. 빅리그에서도 누구보다 위기관리가 뛰어난 그의 배짱 또한 3차전의 선발 맞상대인 애덤 웨인라이트의 다승 1위(19승) 타이틀쯤은 콧바람거리로 만들기에 충분하지 않을까요?

 
 기회는 늘 위기에서 주어지고, 그걸 살렸을 때 성공스토리의 주인공이 되는 거지요. 어디 야구만 그렇습니까.

황덕준/미주 헤럴드경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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