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어한다 고로 존재한다…스마트시대 더욱 빛나는 TV리모콘의 존재감

[헤럴드경제= 정태일 기자]어느날 집안에 있던 리모콘이 사라진다면? 그래서 TV를 시청하다 채널이나 음량을 조절하려고 할 때마다 TV나 셋톱박스 버튼을 일일이 눌러야 한다면?

리모콘이 고장나거나 배터리가 닳아 잠시나마 리모콘 없이 TV를 시청했던 경험이 있다면 그 불편함에 대해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해외 각종 유명블로그에는 리모콘을 어디에 뒀는지 못찾아 약 30곳 가까이 되는 곳을 뒤졌던 일화가 소개되거나 리모콘 분실 시 소파 밑부터 침대 커버 속, 장난감 박스 속 등 단계별로 리모콘을 찾는 팁이 제공될 정도다.

리모콘과 가장 밀접한 TV산업계에서는 사용자 경험(UX) 측면에서 리모콘의 비중이 70% 가까이 차지한다고 보고 있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직관적’이다는 감성이 강조됐지만, 리모콘은 그 이전부터 가장 직관적인 기기로 통했다는 것이다. 전원버튼ㆍ볼륨ㆍ채널ㆍ숫자판 등 물리버튼의 위치배열서부터 사용자가 쉽게 누를 수 있도록 설계되고, 조작 결과값이 화면에 바로 나타나는 것이 강력한 UX로 꼽힌다. 

초기 스마트TV가 나오던 2009년 전후 리모콘은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핫키들이 많이 배치됐다. 그러면서 일반 기능과 섞이면서 버튼이 많이 생겨났다.


스마트 시대로 넘어와서도 리모콘은 전통의 기능과 사용성을 유지하면서도 모션인식, 터치패드, 음성인식, 자판 등 상당 부분 스마트 환경에 맞게 진화하고 있다. 심지어 스마트폰 기업들도 리모콘을 연구하며 리모콘의 UX를 스마트폰에 도입하고 있다.

1950년 미국의 제니스사가 선보의 최초의 유선 TV 리모콘 이름은 ‘레이즈 본(Laze Bone)’이었다. 손가락만 까딱해도 TV를 조작할 수 있으니 리모콘은 사용자를 게으르면서도 TV에 충성적인 고객으로 만들 수 있었다.

약 30년 뒤인 1983년 국내에 첫 TV리모콘이 등장할 때도 리모콘은 사용자에게 편리함을 제공했지만, TV시청 환경을 정적으로 만들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소파나 벽 등에 기대 본다고 해서 ‘린백(Lean-back)’이라고 불렀다. 

국내의 경우 이처럼 린백 환경이 25년 넘게 이어졌다. 그러다 스마트폰과 스마트TV 등 스마트기기가 범람하면서 리모콘 작동에 근간이 되는 기술에 변혁이 찾아왔다. 그동안 적외선(IR) 방식으로 원격조정이 가능했다면 2009, 2010년부터는 전파를 이용하는 RF방식이 채택됐다. 

적외선 방식에서 전파로 기술 방식이 바뀌고 모션과 터치패드가 들어오면서 리모콘의 버튼들이 대거 줄어들었다.

RF방식의 리모콘이 나오면서 클릭, 드래그, 메뉴 선택 등의 브라우징 기능이 새롭게 추가됐다. 이를 두고 리모콘이 ‘에어마우스’로 진화했다고 업계는 불렀다. 리모콘에 마우스 기능 역할이 들어가면서 그동안 리모콘을 빼곡히 채웠던 물리버튼 수가 감소해 이 때부터 리모콘 디자인 트렌드가 ‘심플’로 변했다. 기대서만 TV를 봤던 사람들도 몸을 앞으로 빼고 리모콘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포워드’로 바뀌기 시작했다. 자이로센서가 탑재되면서 스마트폰에서 가능했던 모션인식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최근 1, 2년사이 리모콘은 또 한 번 업그레이드됐다. 실제 스마트폰 화면 환경을 리모콘에 그대로 가져와 터치패드를 만들었다. 기존 모션인식 리모콘이 팔과 손목에 피로감을 가져온다는 불편이 제기되자 이를 개선한 것이다. 스마트TV를 보기에 단순입력 기능에 한계가 따르자 이번에는 휴대전화 쿼티 자판을 달아 다양한 문자입력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또 삼성전자의 S보이스, 애플의 시리처럼 음성으로도 리모콘을 제어할 수 있도록 기능이 다양해졌다. 리모콘이 음성을 인식하면 이를 셋톱박스로 전달해 결과값을 TV화면에 보여주는 원리다.

디자인 또한 리모콘이 포인터(마우스처럼 화면에 커서가 표시되는 것) 역할을 하면서 손목의 피로도를 줄이기 위해 직사각형 형태의 디자인에서 곡선형으로 제작되는 추세도 보이고 있다. 

리모콘을 전보다 많이 움직이면서 사용함에 따라 손에 쥐기 쉽도록 곡선 형태의 디자인도 나타났다.

이처럼 리모콘이 ‘스마트폰化’ 되는 것처럼 반대로 스마트폰도 리모콘의 기능을 채택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10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발자 데이를 열고 LG 스마트폰의 Q보이스와 Q리코트를 결합해 TV를 켜는 시연을 했다. 개발자들은 스마트폰으로 여러 기기를 제어할 수 있는 기능에 관심을 보이며 적외선방식뿐만 아니라 와이파이나 블루투스를 통해서도 기기를 제어할 수 있도록 확장해달라고 요구했다.

특히 Q리모트는 시판되는 기기의 기본 정보와 기기별 IR 제어 코드 정보를 갖고 있어 사용자가 기기만 등록하면 쉽게 제어가 가능하다. LG Q리모트로 제어 가능한 기기는 TV, 셋톱박스, 오디오, DVDㆍ블루레이, 프로젝터, 에어컨 등이다. 저장되지 않은 기기는 LG Q리모트에 정보가 없는 기기의 IR 제어 코드를 인식하는 학습기능을 통해 스마트폰에 저장함으로써 새로운 기기를 제어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케이블TV 방송사들도 별도의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해 배포 중이다. 사용자가 이를 스마트폰에 설치하면 스마트폰으로도 TV를 조작할 수 있다. 이는 별도의 EPG(Electronic Program Guide 안내전문채널)가 없어도 돼 더욱 쉬운 UI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killpass@heraldcorp.com

터치패드와 쿼티자판이 한 리모콘에 구현되면서 두께를 얇게 하기 위해 도어를 열고 닫을 수 있는 디자인의 리모콘도 생겨나고 있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