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더십> 스스로 가장 낮은 곳에서…섬김의 리더십으로 포용하다

1987년 6월항쟁 명동성당
“학생들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신부와 수녀를 밟고 지나라…”
김수환 추기경의 ‘서번트 리더십’
격동의 현대사 약자들의 버팀목

영웅들의 전설적인 무용담은 듣는 이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그러나 의인들의 숭고한 희생담은 듣는 이들이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이해관계와 욕망에 얽매이는 일보다 그로부터 초연하는 일이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이 같은 희생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해야 하는 극한상황으로 치닫기도 한다. 세계사의 적지 않은 페이지가 자신의 피를 먹물로 삼아 옳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보편적 가치와 인류애를 한 글자씩 새겨 나간 의인들의 기록이다. 누구도 쉽게 발을 들이지 못하는 가시밭길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리더십은 여느 영웅들의 리더십 이상으로 창조적이며 감동적이다. 남을 밟고 올라서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사회분위기 속에서 스스로 낮은 곳을 향하는 크리에이티브 리더십으로 뭇사람을 감화시킨 종교 지도자를 돌아본다.

▶소탈한 자세와 포용의 정신으로 세계인을 매료시킨 프란치스코 교황=지난해 12월 17일(현지시간) 77번째 생일을 맞은 프란치스코 교황과 아침식사를 함께한 사람은 네 명의 노숙자였다. 교황은 이날 이들과 함께 아침미사에 참석한 뒤 식사를 나눴다. 3일 전인 12월 14일엔 1만여명의 아이들이 교황에게 생일 케이크와 축하카드를 전달하기도 했다. 당시 교황이 자신의 흰색 주게토(사제가 쓰는 둥근 모자)를 벗기는 돌발행동을 한 아이를 향해 온화한 미소를 짓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공개돼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해 12월 11일 ‘2013년 올해의 인물’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정했다. 교황은 이제 종교계를 넘어 전 세계적인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이 같은 세계인의 열광은 교황의 소탈한 리더십에서 비롯됐다.

교황이 자신의 즉위명을 ‘빈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13세기 성자 프란치스코를 선택한 이유는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치유의 교회를 건설하기 위한 의도였다. 교황은 현재 즉위명에 걸맞게 전임자가 사용한 화려한 관저 대신 교황청에 딸린 게스트하우스에 거주 중이다. 또한 교황은 이동시 전용 방탄 리무진을 마다하고 20년을 넘긴 오래된 자동차를 이용하고 있다. 교황은 지난 13일 염수정 추기경을 비롯해 새롭게 서임된 19명에게 보낸 서한에서도 절제와 섬김을 강조했다.

교황은 서한을 통해 “추기경 서임은 승진, 영예, 훈장이 아니라 그저 봉사일 뿐”이라고 지적하며 “금욕, 절제, 빈곤 등 복음정신과 관계없는 상류사회 분위기를 풍기거나 축하연을 열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7월 29일 영국의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는 “교황은 각종 행사에 참석할 때도 개인 의전을 거부하고 추기경과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고 같은 숙소를 사용하는 등 스스로를 교황보다는 주교로 간주하고 있다”며 “이런 행동은 지지자로부터 ‘리더가 우리와 함께한다’는 깊은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교황의 리더십을 분석해 보도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종교지도자지만 사실상 세속적인 정치지도자 이상의 지위를 누리는 특별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럼없이 아래로 내려와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는 모습이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비가톨릭 신자에게도 많은 감명을 줬다”며 “이 같은 교황의 행보는 사랑, 화해, 양보 등 종교가 추구하는 궁극적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교세의 증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교황의 리더십은 소탈함에서 끝나지 않는다. 리더십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것은 강력한 개혁의지와 포용의 자세다.

교황은 즉위 후 “최근 교회가 여러 잘못을 통해 신도와 멀어졌다”고 과감하게 과오를 인정하며 돈세탁과 검은 돈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떨치지 못하는 바티칸 은행의 개혁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는 이전 교황도 제대로 손을 못 댄 일이었다. 또한 교황은 바티칸 은행에 대한 외부 회계감사 결과를 최초로 공개하고, 외부 금융사를 고용해 교황청의 부동산과 주식 등을 관리해 온 사도재산관리처 조사에도 착수했다. 또한 교황은 동성애자와 낙태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고, 양심을 지키며 사는 무신론자도 신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발언해 전 세계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교황청은 지난 22일 “교황이 8월 대전에서 열리는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에 초청을 받았으며 방한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1984년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첫 방문지를 광주로 택했다. 이는 당시 군사정권 아래서 민주화를 갈구하던 젊은이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요한 바오로 2세의 재위기간 한국의 가톨릭 신자는 무려 3배 이상 증가했다. 이 같은 전례에 비춰볼 때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 성사된다면 한국의 정치,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위로는 단호함, 아래로는 섬기는 자세로 국민에게 감동 준 김수환 추기경=2007년 10월 서울 동성고 개교 100주년 기념 전시회에서 특별한 그림 한 점이 화제를 모았다. 얼굴의 윤곽과 이목구비를 간략히 그린 이 그림의 아래엔 ‘바보야’라는 문구와 함께 ‘김수환 자화상’이라는 서명이 담겨 있었다. 이 그림은 같은 해 5월 김수환 추기경이 개교 100주년 전시회에 그림과 글씨가 필요하다는 동문의 부탁을 받아 마지못해 검은색 유성 파스텔로 즉석에서 그린 것이다. 이후 ‘바보’는 많은 사람의 가슴 속에 사전적인 의미만으로 풀이하기 어려운 뭉클한 단어로 자리를 잡았다.

김 추기경은 종교를 뛰어넘어 전 국민적인 존경을 받았던 정신적 지도자였다. 김 추기경의 사목 표어는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PRO VOBIS ET PRO MULTIS)’다. 김 추기경의 리더십은 사목 표어처럼 모든 사람을 섬김으로써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이른바 ‘서번트 리더십’으로 요약된다.

김 추기경은 1970~80년대 급격한 경제개발에 밀려 살 곳을 내줘야 했던 철거민을 보듬고 노동문제에 대한 관심을 요구하며 인간적인 삶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또한 그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결성해 사랑의장기기증운동과 백혈병어린이돕기운동 등을 펼치고, 성가정입양원을 설립해 미혼모 출산아의 국내 입양을 추진, 20년간 매년 100명씩 총 2000여명의 아기에게 새로운 가정을 찾아줬다. 이는 장기기증과 입양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을 늘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김 추기경 본인 역시 선종 후 자신의 각막을 두 사람에게 기증하며 마지막까지 나눔의 정신을 실천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진 뒤 2009년 한 해에만 무려 18만5000명이 장기기증을 약속한 데 이어 최근 국내 사후 장기기증 희망자가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섰다.

김 추기경의 ‘서번트 리더십’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준 것은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태도였다.

김 추기경은 1971년 12월 24일 자정미사를 통해 장기집권 수순에 들어간 박정희 대통령에게 비상대권을 주는 것을 비판한 데 이어, 이듬해 ‘10월 유신’이 단행되자 “초헌법적 철권통치는 우리나라를 큰 불행에 빠뜨릴 것이라고 단언한다”고 경고했다. 또한 그는 1980년 12월 12일 쿠데타 후 자신을 찾은 전두환 소장에게 “총을 먼저 빼든 사람이 이기는 서부활극을 보는 것 같았다”고 쏘아붙였다.

가장 극적인 순간은 1987년 6월항쟁이었다. 당시 명동성당에서 농성 중인 시위대를 보호하던 김 추기경은 경찰력을 투입하겠다고 통보하러 온 정부 고위 관계자에게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 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라”며 단호한 태도로 맞섰다.

격동의 현대사에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는 가장 부드러운 말투로 가장 힘있는 목소리를 내며 소외된 사람들의 마지막 버팀목 역할을 자임했다. 이는 수많은 사람에게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김 추기경의 선종 당시 명동성당으로 몰려든 40만명의 추모객은 그의 삶을 증명하는 이력서였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종교는 감성적인 부분이 많고, 정치는 결단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서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 그러나 종교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는 정치가 부당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 간접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김 추기경은 부당함에 맞서는 사람들에게 ‘늘 당신 곁에 있다’는 용기를 줌으로써 우리가 잃어버린 많은 권리를 되찾는 데 도움을 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정진영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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