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재곤의 스포츠오딧세이 – 기성용의 진화

내일모레가 설이다. 흩어진 가족과의 만남이 시작된다. 그간 동공에 침전돼 있던 자신의 흔적들을 집안의 이곳저곳에서 다시금 느끼게 될 것이다. 소소한 기억부터 잊고 있던 추억까지도. 그래서 본가로의 회귀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조우하는 숨김없는 광장(廣場)일 것이다.

핵가족 이전의 대가족제도 하에서 수평적인 가족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누군가의 희생과 양보가 가족 간의 평형을 도모할 수 있었다. 원망과 치유는 자신의 몫이자 또한 그를 둘러싼 각 구성원간의, 긴 채무의 영역이었다. 타인에게 받은 상처보다, 가족에게 받는 상처의 골이 더 깊을 수 있었다. 


지난해 기성용(선덜랜드)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을 통한 진통도 같은 흐름 속에 있다. 팀은 가족이며, 감독은 스승과 부모라는 역할 규정이 우리사회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갈 길은 바쁜데, 경기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니 그는 더더욱 공분의 대상이 됐다. 더군다나 사과 시점도 맥을 잘못 짚었다. 자신의 주장이 옳기에 번복할 수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사과에 대한 학습효과가 익숙치 못했던 건지, 그도 아니면 채무자의 충격에 따른 공황상태였는지, 불분명했다. 정답은 빠른 사과뿐이었다. 결론은 공인의 자세에 대한 지적이었는데 그는 이 부분을 간과했다.

절박한 순간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줄 사람이 있는 것은 큰 행운이다. 홍명보 감독은 그 역할을 자처했고, 그를 다시 운동장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대표팀의 경기에서 그를 지켜보는 팬들의 시선은 예전 같지 않았다. 그도 뭇사람의 주목을 애써 피했다. 내면의 모습을 들여다볼 시간이 필요했을 게다. 그만큼 일련의 과정이 녹록치 않았다. 


한동안 정체기를 맞을 것 같은 삶의 위기에서 그는 또 한 번 가연(佳緣)을 만나게 된다. 작년 10월 초 새로 부임한 선덜랜드의 거스 포옛 감독이다. 선수는 감독의 지시에 따라 한 치의 오차 없이 멀티플레이어의 자질을 드러냈고, 감독은 선수에게 출전을 보장하면서 무한 신뢰를 보내는 기막힌 관계가 형성됐다. 쉽게 찾아오기 힘든 찰떡궁합이다. 결과는 행복했다. 팀을 캐피탈원컵(리그컵)의 결승전에 올려놨으며 임대선수인 그에게 홈팬들은 “Ki, Ki, Ki, Ki, Ki, Ki,~“라는 응원가로 응답했다.

국내 팬들 역시 그의 활약을 보고 그동안 가졌던 감정을 누그러뜨리며, 오히려 월드컵에서 육체적 한계를 드러낼까 염려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세월이 약이 됐으며 자신의 노력이 돌파구를 만들어 냈다. 그가 지금처럼 활약을 이어간다면, 빅 클럽으로의 이적도 묘연한 것은 아니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그가 한 가지를 얻기 바란다. 세상사 혼자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는 사실 말이다. 주변과 자신과의 열려있는 장(場)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담길 바란다. 소장자가 화가에게서 받은 그림을 소중하게 오래도록 간직할거라는 확신을 주면, 화가는 자신의 명화를 흔쾌히 내밀게 된다. 팬들의 마음도 이와 진배없다. 설 연휴 그의 경기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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