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수기자의 상수동이야기8>“이 녀석아 빌려서 봐!”, 그 시절 만화방을 추억하다

[헤럴드경제= 김상수 기자]그 시절, 일주일 중 가장 손꼽아 기다린 날은 단연코 화요일이다. 토요일도 일요일도 화요일 앞에선 무력하기만 했다. 화요일 학교가 끝나자마자 동네 서점으로 달려가면 따끈따끈한 아이큐점프, 소년챔프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행복했다. 그저 그런,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소년에게 ‘드래곤볼’은 용에게 빌 소원을 고민하게 했고, ‘슬램덩크’는 잘하지도 못하는 농구공을 사게 만들었다. 고등학생이 된다면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저녁’이 펼쳐질까? ‘타이의 대모험’을 따라 손으로 용 문양을 그려보던 시절. 화요일은 그런 시간이었다. 현실을 멈추고 미래를 꿈꾸게 하는 시간.

그렇게 처음 시작된 화요일의 인연은 단행본 시대가 도래하며 자연스레 사라졌지만, 그 뒤로 그 자리는 만화방이 대신하게 됐다. 야간 자율학습이 끝난 후 습관처럼 거쳐 갔던 동네 만화방. 학주, 피바다 뒷담화에 열을 올리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해드폰을 쓰고 있던 주인이 눈짓으로 인사를 건넨다. 밤이 되면 인터넷방송 DJ로 변신하는 욕쟁이(?) 아저씨.

이 순간만큼은 수능도, 첫사랑 고민도, 진로 문제도 필요 없다. 난상토론이 벌어진다. “이거 빌리자니까?”, “야 그 만화 유치해. 차라리 이걸 봐”, “베르세르크는 언제 나오는거야.” 시끌시끌하다 순간 또 조용해졌다. 선 채로 책장을 한 장 두 장 넘기는 아이들. 몇 분이 지났을까. 끝내 저 멀리서 욕쟁이 DJ 아저씨가 소리쳤다. “야 이 X들아, 빌려서 안 볼래!” 


한바탕 소동 뒤 들고나온 책은 겨우 만화책 한 권. 우르르 몰려가 난상토론 끝에 결정한 책이다. “이제 그만 적립 좀 해라. 만원 하면 1000원 더 붙여줄게. 너넨 만날 한 권이냐.” 듣는 듯 마는 듯 “안녕히 계세요” 외치고 나가려는 아이들을 급하게 아저씨가 불렀다. “너희 주려고 챙겨놨는데 깜빡했다.” 삼각김밥이다. 바로 옆집 편의점에서 제공한, 유통기한이 막 지난 음식들이다.

아이들을 주려고 밤늦게까지 음식을 챙겨놓은 욕쟁이 아저씨. 그리고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도 즐겁게 감사히 받아들던 그 아이들. 지금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챙겨놓는 어른이나 그런 음식을 받을 줄 아는 아이들이나. 그땐 그런 시절 그런 공간이었다.

지금도 만화방을 생각하면 슬그머니 웃음부터 나온다. 초밥왕도, 야구선수도, 연애 도사도 꿈꾸게 했던, 그리고 그런 꿈들에 ‘가능성’이란 단어를 붙일 수 있었던 시절. 만화는 무수한 가능성의 촉매제였다. 


꽤 많은 시절이 지났지만 지금도 휴가를 맞이하면 꼭 찾는 곳이 만화방이다. 물론 격세지감은 있다. 휴가 때 자장면 하나 시켜놓고 점심부터 저녁까지 돈 걱정 없이 실컷 만화를 보고 나오는 날엔, ‘아 이젠 돈을 버는 어른이 됐다’ 는 생각에 묘한 기분마저 든다. 어른이 된다는 건 가능성을 돈으로 바꿔가는 과정일까.

무엇이든 다 있을 법한 상수동에는 안타깝게도 만화방이 드물다. 휴가 때마다 참 괴로운 일이다. 그리 멀지 않은 신촌에는 만화방이 수없이 많지만, 이상하게도 상수동엔 유난히 만화방을 찾기 어렵다. 현재 파악한 바로는 상수동엔 상수동만화방 1곳(혹 추가할 만화방이 있다면 제보 부탁합니다)이 있으며, 범(汎) 상수동으로 범위를 넓힌다면, 홍대에 2곳, 그리고 동교동삼거리 1곳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상수동만화방은 상수동 내 유일한(현재 아는 바론) 만화방이나 상수동이란 이름에 어울릴 만큼 특색있는 곳이다. 상수동 초행길이라면 찾아가는 길은 다소 어려울 수 있다. 상수역에서 합정역 방향으로 내려오다 한의원 옆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면 간판이 보인다. 건물에 붙어 있는 간판이니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깔끔한 인테리어에 안락한 의자가 일품. 작가별로 구분 지어 놓은 코너나 마블코믹스의 작품 등을 모아놓은 공간 등 다른 만화방에선 좀처럼 접하기 힘든 희귀작도 많다. 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추천도서를 건의할 수도 있다. 1시간에 2400원, 심야에는 1800원이다. 단점이 있다면, 좌석이 많지 않다는 점(자리 좀 넓혀주세요). 게다가 상수동 내 만화방이 드물기 때문에 데이트를 나온 커플들로 주말이면 좀처럼 좌석이 비질 않는다. 


상수역에서 홍대입구 방면으로 가다 보면 삼거리 포차 맞은편으로 홍대만화방이 있다. 카페 같은 상수동만화방과 달리 이 곳은 만화방 본연의 인테리어에 가까운 곳. 만화책 수는 더 많고 공간도 넓다. 1시간에 2100원, 5시간에 7000원, 8시간에 1만원이다.

동교동삼거리에 있는 킥킥나무란 만화방은 대여가 가능하다는 게 특징. 한 권 당 400원이며 회원 가입할 때 1만원을 맡겨야 한다. 물론 회원을 탈퇴하면 돌려준다. 시간 당 2100원이며 각종 음료수 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세트 메뉴도 다양하다.

또다시 겨울 휴가철이 왔다. 올해 휴가에도 어김없이 하루는 만화방에 투자할 심산이다. 추천작에 목마르다. ‘반드시 봐야 할 영화 100선’, ‘반드시 가봐야 할 여행지 100곳’은 있는데, ‘죽기 전에 반드시 봐야 할 만화책 100가지’는 왜 없는 걸까. 혹시나 상수동만화방에서 서로의 명작을 공유할 수 있는 고수와 소중한 인연이 닿길 기원하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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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수기자의 상수동이야기8>“이 녀석아 빌려서 봐!”, 그 시절 만화방을 추억하다

[헤럴드경제= 김상수 기자]그 시절, 일주일 중 가장 손꼽아 기다린 날은 단연코 화요일이다. 토요일도 일요일도 화요일 앞에선 무력하기만 했다. 화요일 학교가 끝나자마자 동네 서점으로 달려가면 따끈따끈한 아이큐점프, 소년챔프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행복했다. 그저 그런,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소년에게 ‘드래곤볼’은 용에게 빌 소원을 고민하게 했고, ‘슬램덩크’는 잘하지도 못하는 농구공을 사게 만들었다. 고등학생이 된다면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저녁’이 펼쳐질까? ‘타이의 대모험’을 따라 손으로 용 문양을 그려보던 시절. 화요일은 그런 시간이었다. 현실을 멈추고 미래를 꿈꾸게 하는 시간.

그렇게 처음 시작된 화요일의 인연은 단행본 시대가 도래하며 자연스레 사라졌지만, 그 뒤로 그 자리는 만화방이 대신하게 됐다. 야간 자율학습이 끝난 후 습관처럼 거쳐 갔던 동네 만화방. 학주, 피바다 뒷담화에 열을 올리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해드폰을 쓰고 있던 주인이 눈짓으로 인사를 건넨다. 밤이 되면 인터넷방송 DJ로 변신하는 욕쟁이(?) 아저씨.

이 순간만큼은 수능도, 첫사랑 고민도, 진로 문제도 필요 없다. 난상토론이 벌어진다. “이거 빌리자니까?”, “야 그 만화 유치해. 차라리 이걸 봐”, “베르세르크는 언제 나오는거야.” 시끌시끌하다 순간 또 조용해졌다. 선 채로 책장을 한 장 두 장 넘기는 아이들. 몇 분이 지났을까. 끝내 저 멀리서 욕쟁이 DJ 아저씨가 소리쳤다. “야 이 X들아, 빌려서 안 볼래!” 


한바탕 소동 뒤 들고나온 책은 겨우 만화책 한 권. 우르르 몰려가 난상토론 끝에 결정한 책이다. “이제 그만 적립 좀 해라. 만원 하면 1000원 더 붙여줄게. 너넨 만날 한 권이냐.” 듣는 듯 마는 듯 “안녕히 계세요” 외치고 나가려는 아이들을 급하게 아저씨가 불렀다. “너희 주려고 챙겨놨는데 깜빡했다.” 삼각김밥이다. 바로 옆집 편의점에서 제공한, 유통기한이 막 지난 음식들이다.

아이들을 주려고 밤늦게까지 음식을 챙겨놓은 욕쟁이 아저씨. 그리고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도 즐겁게 감사히 받아들던 그 아이들. 지금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챙겨놓는 어른이나 그런 음식을 받을 줄 아는 아이들이나. 그땐 그런 시절 그런 공간이었다.

지금도 만화방을 생각하면 슬그머니 웃음부터 나온다. 초밥왕도, 야구선수도, 연애 도사도 꿈꾸게 했던, 그리고 그런 꿈들에 ‘가능성’이란 단어를 붙일 수 있었던 시절. 만화는 무수한 가능성의 촉매제였다. 


꽤 많은 시절이 지났지만 지금도 휴가를 맞이하면 꼭 찾는 곳이 만화방이다. 물론 격세지감은 있다. 휴가 때 자장면 하나 시켜놓고 점심부터 저녁까지 돈 걱정 없이 실컷 만화를 보고 나오는 날엔, ‘아 이젠 돈을 버는 어른이 됐다’ 는 생각에 묘한 기분마저 든다. 어른이 된다는 건 가능성을 돈으로 바꿔가는 과정일까.

무엇이든 다 있을 법한 상수동에는 안타깝게도 만화방이 드물다. 휴가 때마다 참 괴로운 일이다. 그리 멀지 않은 신촌에는 만화방이 수없이 많지만, 이상하게도 상수동엔 유난히 만화방을 찾기 어렵다. 현재 파악한 바로는 상수동엔 상수동만화방 1곳(혹 추가할 만화방이 있다면 제보 부탁합니다)이 있으며, 범(汎) 상수동으로 범위를 넓힌다면, 홍대에 2곳, 그리고 동교동삼거리 1곳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상수동만화방은 상수동 내 유일한(현재 아는 바론) 만화방이나 상수동이란 이름에 어울릴 만큼 특색있는 곳이다. 상수동 초행길이라면 찾아가는 길은 다소 어려울 수 있다. 상수역에서 합정역 방향으로 내려오다 한의원 옆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면 간판이 보인다. 건물에 붙어 있는 간판이니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깔끔한 인테리어에 안락한 의자가 일품. 작가별로 구분 지어 놓은 코너나 마블코믹스의 작품 등을 모아놓은 공간 등 다른 만화방에선 좀처럼 접하기 힘든 희귀작도 많다. 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추천도서를 건의할 수도 있다. 1시간에 2400원, 심야에는 1800원이다. 단점이 있다면, 좌석이 많지 않다는 점(자리 좀 넓혀주세요). 게다가 상수동 내 만화방이 드물기 때문에 데이트를 나온 커플들로 주말이면 좀처럼 좌석이 비질 않는다. 


상수역에서 홍대입구 방면으로 가다 보면 삼거리 포차 맞은편으로 홍대만화방이 있다. 카페 같은 상수동만화방과 달리 이 곳은 만화방 본연의 인테리어에 가까운 곳. 만화책 수는 더 많고 공간도 넓다. 1시간에 2100원, 5시간에 7000원, 8시간에 1만원이다.

동교동삼거리에 있는 킥킥나무란 만화방은 대여가 가능하다는 게 특징. 한 권 당 400원이며 회원 가입할 때 1만원을 맡겨야 한다. 물론 회원을 탈퇴하면 돌려준다. 시간 당 2100원이며 각종 음료수 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세트 메뉴도 다양하다.

또다시 겨울 휴가철이 왔다. 올해 휴가에도 어김없이 하루는 만화방에 투자할 심산이다. 추천작에 목마르다. ‘반드시 봐야 할 영화 100선’, ‘반드시 가봐야 할 여행지 100곳’은 있는데, ‘죽기 전에 반드시 봐야 할 만화책 100가지’는 왜 없는 걸까. 혹시나 상수동만화방에서 서로의 명작을 공유할 수 있는 고수와 소중한 인연이 닿길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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