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깊어가는 한숨, 경영공백 현실화 코앞까지의 스토리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SK그룹 횡령 사건’에 대해 법원이 또 다시 최태원 회장 형제의 공모를 인정했다. 법원은 사건의 공범인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에 대해 징역 3년6월의 실형을 선고, 최 회장과 최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수석부회장 역시 실형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SK그룹으로서는 회장의 실형 선고로 인한 경영 공백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 설범식)는 지난 28일 SK그룹 횡령 사건을 공모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로 구속 기소된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에 대한 재판에서 “최 회장과 최 부회장은 (SK 횡령 사건의) 전 과정을 명확히 인식하고 본질적으로 관여해 공모한 것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판단한 사건의 실체 개요에 따르면, 김 전 고문과 최 회장 형제 그리고 김준홍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 등 4명이 이 사건의 공모자다. 최 회장 형제는 1990년대 후반부터 김 전 고문과 거래하며 신뢰 관계를 쌓아왔다. 탁월한 금융지식과 주식 투자 능력이 있었던 김 전 고문은 최 회장 형제의 자금을 몇 배로 불려준 일이 여러 차례 있었고, 이 덕분에 최 회장 형제에 대해 우월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최 회장 형제 모두 김 전 고문에게 존대를 했고, 김 전 고문은 반대로 최 회장 형제에게 하대했다.

SK 본사 전경

그러던 2008년 4월께 김 전 고문은 최 회장 형제에게 자신의 옵션투자금을 조달해달라고 요구했다. 최 회장은 SK그룹 지배권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던 SK C&C 주식까지 담보로 잡혀가며 저축은행 대출을 받아 자금을 마련해줬다. 최 회장은 선대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동생인 최 부회장이 많은 것을 포기한 것에 대해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고, 김 전 고문이 옵션투자를 통해 이익을 내면 일부를 동생에게 분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실무적인 역할을 김 전 대표가 담당했다.

하지만 2008년 10월 SK C&C 주식을 담보로 이용한 대출이 만료가 되는 상황에 처하자, 최 부회장은 미국에 출장을 가 있던 김 전 대표에게 한국으로 들어와 자금 마련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여러 방안을 모색하던 와중에 결국 결론을 내게 된 것이 이번 범행인 ‘SK 계열사가 465억원의 펀드 출자를 하게 한 뒤 선지급 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SK E&S와 SK 가스 등 계열사가 펀드 출자를 한 과정은 비정상적이었다. 재판부는 “계열사의 펀드 출자과정은 정상적인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라 최 회장의 지시를 거쳐서 한 것”이라며 “이는 김 전 고문의 옵션투자금이 아니라면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고 밝혀 처음부터 최 회장이 범행에 공모한 것임을 인정했다.

김 전 고문은 펀드 출자금이 자신에게 넘어온 과정은 자신과 김 전 대표의 개인적인 거래였고, 최 회장 형제는 전혀 몰랐던 일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개인적인 거래였다면 김 전 대표가 굳이 최 회장을 찾아가 펀드 출자를 빨리 해달라고 서두를 이유도 없었고, 최 회장이 김 전 대표에게 전화해 선지급 상황을 확인하는 등 개입할 이유가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최 회장 형제 모두 이 전 과정을 명확히 인식하고 본질적으로 관여해 공모한 것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앞서 최 회장 형제와 김 전 대표의 항소심을 담당한 재판부는 최 회장과 최 부회장의 혐의를 인정해 각각 징역 4년과 징역 3년6월의 실형을 선고한 바 있다. 최 회장은 항소심 재판과정에서 “펀드 출자에는 관여했지만 선지급에는 관여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 전 고문의 재판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최 회장 형제로서는, 이번에도 4인의 공모가 인정됨에 따라 오는 2월께에 있을 대법원 재판에서도 혐의를 벗기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공범 관계에 있던 김 전 고문이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점은 최 회장 형제도 비슷한 수준의 형량이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게 한다.

대법원에서 최 회장의 형이 유지된다면 올해 신규 사업과 해외 투자를 정상화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으려 했던 SK그룹의 계획 역시 일정 정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게 된다. SK그룹은 올해 에너지와 반도체 분야에 역점을 두고 투자 전략을 수립해 왔다. SK종합화학은 스페인 렌솔 사와 기유 공장을 하반기까지 완공하기로 합작을 추진 중이며,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배터리와 리튬이온분리막 투자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내년까지 1조8000억원을 투자해 경기 이천 본사에 최첨단 시설을 갖춘 반도체 공장과 클린룸을 건설할 계획이다.

SK그룹 관계자는 “총수의 경영 공백으로 SK E&S가 STX에너지 인수의향서를 냈다가 불참하는가 하면, SK텔레콤이 ADT캡스 인수를 검토했다가 백지화시켰고, SK에너지가 호주UP 지분 인수 예비 입찰에 참여했다가 본 입찰에서 빠졌다”며 “에너지와 자원 개발 분야를 직접 챙기려고 했던 최 회장이 구속된 이후로 그 쪽 사업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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