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주지사, ‘동해병기법’으로 딜레마”< WP>

“한인사회와 일본 정부 사이 ‘불행한 선택’ 직면”

민주-공화 대결구도 개입…WP 동해병기 사진 게재

민주당 소속인 테리 매콜리프 버지니아 주지사가 ‘동해병기 법안’으로 인해 정치적 딜레마에 빠졌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30일 보도했다.

지난해 선거과정에서 한인 유권자들에게 ‘동해병기’를 지지한다고 공약했으나 당선 이후 주(洲)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일본 측의 반대 로비를 받아 어느 한쪽을 잃을지도 모를 ‘불행한 선택’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WP는 “매콜리프는 버지니아주의 거대한 교역 파트너의 하나인 일본을 화나게 하거나 버지지나의 핵심 유권자 조직인 한인사회와 거리를 둬야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딜레마적 상황은 버지니아주 하원의 법안심의 과정을 통해 표면화되고 있다. 상원을 통과한 법안이 하원 교육위 소위에 상정된 이후 한·일 양쪽의 로비가 첨예하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일본의 전방위적 로비는 매콜리프 주지사측의 태도를 크게 바꿔놓았다. 사사에 겐이치로 주미 일본 대사가 지난해말 당선인 신분의 매콜리프 주지사에게 “동해병기 법안에 서명하면 경제협력에 손상을 입을 것”이라고 협박하는 편지를 보낸데 이어 지난 22일에는 직접 리치먼드로 내려와 주지사를 상대로 ‘대면 설득’을 시도했다. 고용된 로펌인 ‘맥과이어우즈 컨설팅’ 로비스트들은 의원들을 일일이 만나 총력적인 설득에 나서고 있다.

이 때문인지 당초 동해병기를 공약했던 매콜리프 주지사 측은 이번 사안에 대한 공개적 입장표명을 삼가는 분위기다. 브라이언 코이 대변인은 “수천개의 법안이 있는데, 아직 통과도 되지 않은 법안에 신경쓸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측근인 조지프 D. 모리세이(민주·헨리코) 주 하의원은 “선거과정에서 공약을 일일이 들여다볼 겨를이 없었다”고 변명했다.

WP는 한걸음 더 나아가 매콜리프 주지사 측근과 정치참모들은 법안을 “죽이도록”(Kill) 민주당 의원들에게 지침을 내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법안이 의회를 통과해 주지사가 서명을 해야하는 상황까지 만들지 말라는 주문이다.

이에 맞서 우리나라는 안호영 주미대사가 이날 리치먼드로 내려가 매콜리프 주지사와 의회 지도자들을 비공식적으로 만나 동해병기법안 처리에 협조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버지니아주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일본이 한국에 비해 압도적이라고 WP는 보도했다. 버지니아주 입장에서 보면 일본은 제2의 투자국인데 비해 한국은 20위권에도 못미치고 있다. 버지니아가 수출하는 농산품의 경우 일본은 제12위의 수입국이지만 한국은 30위권을 맴돌고 있다.

그러나 버지니아 주내의 한인 사회는 규모가 큰데다 정치적으로 잘 조직화돼있어 가볍게 볼 수 없다는게 WP의 지적이다.

더욱이 이번 사안은 일제강점기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재미 한인사회의 ‘정서’에 호소하는 측면이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계 여성과 결혼한 챕 퍼터슨 (민주·페어팩스) 상원의원은 WP에 “우리 장인은 아직도 일본 이름을 갖고 있다”며 “이런 분들이 아직도 (버지니아주 한인밀집지대인) 애난데일에 생존해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동해병기법안 처리는 민주당과 공화당간의 정치적 대결구도로 변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게임이 복잡해질 가능성이 커보인다.

지난해 주지사 선거 패배후 정치적 수세에 몰려있는 공화당으로서는 매콜리프를 정치적 곤경에 밀어넣을 수 있는 호기를 맞은 셈이라고 WP는 보도했다. 특히 올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소수인종계의 표심을 자극할 수 있는 ‘소재’를 찾은 점도 공화당으로서는 고무적인 대목이다.

이에 따라 공화당은 동해병기 법안을 어떤 식으로든 하원에서 통과시켜 주지사 책상 앞에 올려놓는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공화당 전국위원회에서 아·태지역 출신 소수인종 문제를 다루고 있는 제이슨 정 국장은 “이번 동해병기 문제로 인해 매콜리프는 국제적 사건의 중심에 섰으며 코너에 몰리게 됐다”고 말했다.

공화당 측은 이번 사안이 매콜리프의 정치적 동지이자 2016년 대선의 민주당 유력 예비주자인 힐러리 클린턴에게도 부정적 영향이 끼칠 것으로 보고 있다. 정 국장은 “매콜리프는 버지니아 주에서 힐러리의 가장 중요한 대리자로 인식되고 있다”며 “한인사회가 힐러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인 사회와 일본 정부간의 로비전 성격이었던 동해병기법 처리가 민주당과 공화당간의 정치적 대결구도로 탈바꿈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버지니아주 하원은 모두 100석으로 공화당(67석)이 민주당(33석)을 압도하고 있다.

WP는 이 기사를 이례적으로 1면에 3단 크기로 비중있게 다뤘으며 기사도중에 등장하는 지도에 ‘일본해(Sea of Japan)’와 ‘동해(East Sea)’를 병기해 눈길을 끌었다.

워싱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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