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두교서 입법 성공률 43%는 보장, 가장 긴 연설은 클린턴의 9190단어

[헤럴드경제=문영규 기자]매일 전 세계가 미국 대통령의 입을 주목한다. 때로는 전 세계 각국의 수장 격인 반기문 국제연합(UN) 사무총장보다도 영향력있는 인물로 손꼽히는 것이 미국 대통령이다.

1년 중 유난히 그의 입을 주목할 때가 있다. 매년 한 해 국정 전반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연두교서(State of Union Message)를 발표할 때다. 이 연설은 건국 이후부터 대통령의 연례행사로 자리잡았고 1월 말이나 2월 초 상ㆍ하원 양원합동회의에서 대통령의 정책 소신을 밝힌다.

연두교서가 중요성을 띠는 것은 오랜 전통 때문만은 아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1965년부터 2002년사이 연두교서에 언급된 어젠다 중 43.3%를 입법화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2012년 1월 29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axis of evil) 발언도 이 연두교서에서 나왔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이란과 이라크, 북한을 지칭하며 “이런 나라들과 테러리스트 연합은 악의 축을 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1975년 1월 15일 있었던 연설에서 “여러분에게 연두교서가 좋은 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고 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린든 존슨 대통령은 1964년 1월 8일 “이번 행정부는 오늘, 지금 여기서 미국의 가난과의 무조건적인 전쟁을 선포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오바마 대통령의 연두교서에선 ‘일자리’(jobs)란 단어가 32번이나 나온 기록도 있다.

역대 연두교서 중 가장 길었던 것은 1995년 1월 24일 빌 클린턴 대통령의 연설로 무려 9190단어로 구성됐다. 이는 1950년 이후 평균 분량인 5353단어와 비교했을때 두 배에 가까운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정책 방향에 대해 처음으로 자신의 견해를 공식적으로 피력한 것은 1790년 1월 8일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당시 뉴욕에 있었던 의회에서 8개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1801년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의회에 직접 참석하지 않고 메시지를 적어 보내기도 했는데 이는 영국 왕실의 ‘의회 개원식 국왕연설’(Speech From The Throne)과 같은 전통을 따르고 싶지 않아서였다.

의회에 직접 참석하지 않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전통은 우드로 윌슨 대통령때까지 이어졌다. 그러던 것이 1913년 윌슨 대통령이 직접 의회에서 연두교서를 발표한 이후 특별한 경우가 없는 한 대통령의 출석이 계속 이뤄졌다.

참석하지 않은 경우는 두 차례였는데 1973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1981년 지미 카터 대통령 재임기간이었다.

연두교서가 라디오로 처음 중계된 것은 1923년 캘빈 쿨리지 대통령때였으며 TV로 방영된 것은 1947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때였다. 시청률이 가장 높은 ‘프라임타임’ 중계는 1965년 린든 존슨 대통령이 시작했다.

연두교서는 정치 스타를 탄생시키기도 한다. 1966년 당시 상원의원이던 에버렛 더크슨과 제럴드 포드가 린든 존슨 대통령의 연두교서를 두고 회답 연설을 통해 비판했으며 이것이 처음으로 TV를 통해 중계되기도 했다.

포드 의원은 1966, 1967, 1968년 회답 연설을 했고 조지 W. 부시 의원(1968년), 빌 클린턴(1985년)도 연설을 했다. 이들은 모두 후에 대통령직에 올랐다.

다른 전통도 있는데 1960년대 초부터 장관들 중 한 명은 연두교서에 참석하지 않고 있다. 이는대통령과 행정부가 유고되는 국가 비상사태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보안상의 이유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1984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재임 당시 불참하는 장관이 처음 공개됐다. 그는 재임 당시 도시주택개발부 장관이었던 새뮤얼 피어스였다.

[email protected]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