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박영규, 기득권 정점 이인임 연기 단연 돋보인다

[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대하사극 KBS ‘정도전’에서 개성 넘치는 캐릭터 연기를 펼치고 있는 박영규와 조재현의 선악 대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인물들이 펼치는 관계와 대결구도는 때로는 현실정치를 보는 듯 하다.

박영규가 연기하는 이인임은 ‘정도전’(극본 정현민, 연출 강병택, 이재훈)을 통해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역사적으론 무명에 가까웠던 그가 드라마 ‘정도전’을 통해 박영규란 배우를 만나면서 희대의 악역으로 브라운관을 빛내고 있다.

“정치란 말입니다”로 시작되는 다수의 어록을 만들어내고 있는 이인임. 죽은 공민왕(김명수)이건, 명덕태후(이덕희)건 백전노장 최영(서인석) 장군 앞에서건,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어린(?) 신진사대부들 앞에서건 자신에게 걸림돌이 되는 모든 세력 앞에 정치에 대해 한 수 가르치려 드는 능구렁이 정치 9단인 그는 노회한 정치인의 전형이자 부패하며 악랄한 기득권 세력의 정점에 서있는 인물이다.

그런 이인임을 영화 배트맨에서의 악당 ‘조커’로 규정한 ‘이인임 조커설’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자신에게 도전하는 이라면 그게 누구든 무참히 짓밟는 그 미소조차 섬뜩한 그의 모습에서 조커를 연상하는 것. 입의 양 미간을 찢어 올려 가만히 있을 때도 웃는 모습인 ‘조커’와 어딘지 모르게 닮은꼴이라는 게 네티즌들의 견해다.


이인임과 조커는 하지만 정반대의 캐릭터이기도 하다. 감정 컨트롤이 전혀 안 되는 조커와 달리 이인임은 냉정하다 못해 냉혈한처럼 보일 정도로 감정 절제에 탁월하다. 상대에게 웬만해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다. 시종일관 미소로 응대하는 이인임은 도리어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속담을 과감히 뒤집듯 웃는 얼굴로 사람 속을 박박 뒤집어 놓는 캐릭터다.

어찌됐건 드라마 ‘정도전’에서 이인임은 영화 배트맨의 조커 같은 ‘악당’임에는 분명하다. 현재까지는 조커 이인임의 완판승. 공민왕 시해를 시작으로 초장에 정도전(조재현)을 유배 보냈고, 어린 우왕(정윤석)을 꼭두각시로 조정 명덕태후의 영향력을 실추 시키는 가하면 끝까지 자기편이 되지 않는 태후에게 직접 칼을 겨눠가면서까지 자신의 권위 앞에 굴복시켰다. 만인에게 추앙받는 백전노장 최영조차 이인임에 두 손 두 발 다 묶인 상태다.

하지만 아직 판단은 이르다. 우리에겐 정의의 히어로 ‘배트맨’, 정도전이 있기 때문. 이인임이 조커라면 정도전은 단연 배트맨이다. 말단관료 시절에도 기라성 같은 권문세가의 우두머리 이인임에 정면으로 맞서며 도전했던 이가 정도전이고, 왕이든 무장이든 그 누가됐든 불의와 타협하려는 이들 앞에 나타나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이가 정도전이다.

유배지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조정의 조세제도를 지키지 않고 위조사패(임금이 토지를 하사하면서 주는 공문서 사패)를 만들어 백성들의 곳간을 불법으로 취하는 지방의 아전들과 부패한 권문세가들에 목숨을 걸고 맞서는 중이다. 삭탈관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유배인 신분임에도 불의라면 못 참는 정의의 히어로다.

‘정의는 승리한다’는 진리가 아직은 통하지 않고 있지만 백성들의 삶을 온 몸으로 체득하며 와신상담하는 그가 살아있는 한 고려왕실을 휘젓고 있는 ‘악당’의 활약도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정도전은 혼자 힘으로는 배트맨의 ‘아성’을 따라잡기에 역부족이다. 패기와 지혜만으로는 악당을 제거하기 힘들게 마련이다. 이에 맹장이자 덕장 이성계(유동근)와의 조합이 기대를 모은다.

9회에서 이성계는 이인임과의 대결을 암시했다. 자신에게 도전하는 이성계에 “무릎을 꿇으시오”라고 명하는 이인임의 노기어린 표정이 본격적인 대결을 예고하고 있다. 난세를 붓으로 평정한 사나이 정도전과 그를 둘러싼 진짜 정치가들의 살아있는 정치 이야기를 다룬 ‘정도전’은 현실 정치보다 더 재미있다.

/wp@heraldcorp.com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