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닫은 ‘과묵한 거인’ 안현수,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의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계속되는 인터뷰 요청에도 그의 대답은 “죄송합니다” 한마디 뿐이었다. 러시아 대표팀 스태프는 급기야 “니예트(안돼)”라며 막아섰다. 아버지 안기원 씨는 “금메달 따기 전까지는 모든 인터뷰를 사양하기로 했다네요. 그만큼 올림픽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거겠죠”라며 양해를 구했다.

‘쇼트트랙 황제’ 안현수(29ㆍ빅토르 안)의 올림픽이 시작됐다. 지난 2011년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는 2일(한국시간) 결전지인 소치에 입성했다. 러시아 대표팀 동료들과 소치 아들레르 공항에 들어선 안현수는 왼쪽 옆머리만 짧게 밀고 나머지를 기른 오렌지컬러 헤어스타일로 멋을 냈다. 머리 전체를 노랗게 탈색한 2006년 토리노올림픽 때를 떠올리게 했다. 그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유니폼 가슴에 태극기 대신 러시아 국기가 선명하다는 것이다. 


러시아 일간지 ‘스포르트 익스프레스’는 최근 안현수 특집 기사를 게재하며 그를 ‘과묵한 거인’으로 표현했다. 입은 다물었지만 그가 가슴 속으로 외치고 있는 꿈은 단 하나다. 토리노올림픽 영광 재현. 안현수의 카카오톡 프로필엔 ‘다시 시작’이라는 문구가 짧지만 강한 울림을 주고 있다. 아버지 안기원 씨는 카카오톡 대문에 ‘토리노 영광이여 다시 한번!’ 이라며 절실한 주문을 걸었다. 8년 전 토리노올림픽에서 안현수는 전무후무한 3관왕(1000mㆍ1500mㆍ5000m 계주)에 오르며 ‘쇼트트랙 황제’로 올라섰다. 아폴로 안톤 오노(미국ㆍ은퇴)가 금메달을 딴 500m에서도 동메달을 목에 걸며 전 종목 시상대에 올랐다.

지난 2011년 한국 생활을 접고 러시아로 떠나기 직전 만난 안현수는 “반드시 재기할 것이다. 토리노 영광을 재현해 올림픽에서 반드시 금메달을 따겠다”고 말했다. 당시 그의 말은 현실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2009년 대표팀 훈련 도중 무릎뼈가 부러지는 대형 사고를 당해 네차례나 수술대에 오른 그는 이후 번번이 대표팀에서 탈락했다. 그 사이 대한빙상연맹에선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으며 설상가상 소속팀 성남시청마저 해체됐다. “이제 안현수 시대는 끝났다”는 얘기가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들렸다. 쫓기듯 러시아로 가는 그가 “다시한번 올림픽 금메달을 따겠다”고 한 말은 그래서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하지만 거짓말같은 그의 예언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러시아는 사상 처음으로 동계올림픽을 개최하는 데다 쇼트트랙은 아직까지 노메달. 모처럼 품에 안은 금메달 후보 안현수에게 지원을 아낄 이유가 없었다.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과 안정된 훈련 환경 속에 빠르게 현지에 적응하고 몸을 끌어올린 안현수는 마침내 올림픽 금메달에 성큼 다가섰다. 올시즌 월드컵에서 500m 종합 1위에 오르고 유럽선수권대회 4관왕을 차지하며 전성기 때 이상의 기량을 회복했다는 평가다. 안현수와 함께 2002 솔트레이크올림픽에 출전했던 김동성 KBS 해설위원은 “탁월한 스케이팅 실력에 두 차례 올림픽을 경험한 노련미까지 더해져 메달을 확신한다”고 했다. 


호주 일간지 시드니모닝헤럴드는 2일 ‘소치를 빛낼 스타’ 10명을 꼽고 안현수를 조명했다. 이 신문은 안현수에 대해 쇼트트랙에서 금메달을 지금껏 따지 못한 러시아의 한을 풀어줄 기대주로 전망했다. 미국의 보스톤글로브도 눈여겨볼 만한 선수로 안현수를 소개하며 8년 만에 올림픽 무대에 복귀한 것도 그렇지만 한국에서 러시아로 국적을 바꾼 것만으로 안현수는 흥미로운 선수라고 평했다.

오는 8일 큰아들이 쓸 ‘해피엔딩 드라마’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 소치로 날아가는 안기원 씨는 “현수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다. 토리노올림픽 3관왕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이다. 많은 팬들이 힘이 돼주고 있다”며 기대감을 보였다. 안현수의 올림픽 드라마는 이제 시작이다.

조범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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