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연방제 구성’ 제안한 푸틴의 속내는?

[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우크라이나 사태 해법 마련을 위해 3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미국과 러시아 간 외무장관 회담에서 러시아 측이 ‘우크라이나 연방제 구성’ 등을 골자로 한 개헌을 제안해 러시아의 속내가 무엇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3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 날 ‘우크라이나의 정치ㆍ군사적 중립성’을 위해 러시아 뿐 아니라 미국, 유럽연합(EU) 등 어떤 블록에도 속하지 않는 비동맹 원칙을 명시한 헌법 개정을 제안했다.

러시아가 제시한 외교 해법은 ▷우크라이나의 비동맹 원칙 ▷우크라이나 지역들이 동일한 대표성을 갖는 연방제 구성 ▷러시아어 제2 공용어 채택 ▷개헌 뒤 지자체 선거 실시 ▷불법 무기 몰수와 키예프 주요 건물과 거리에서 시위대 철수 ▷크림의 주민투표 결과 존중 등이다.

러시아는 크림자치공화국이 러시아 귀속 주민투표를 실시하기 6일 전인 지난 10일에도 우크라이나의 “포괄적인 헌법 개혁”을 요구한 바 있다.

이 계획 대로라면 우크라이나 정치제도는 연방제로 바뀌어야한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대통령이 지자체 수장인 주지사를 임명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이를 주민투표에 의한 주지사 선출 방식으로 바꾸고, 지방으로 조세권을 이양하는 한편 주민이 뽑은 주지사에게 경제와 교육, 외교 정책을 독자적으로 수립할 수 있는 폭넓은 권한을 주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크라이나 동부를 비롯해 친러시아 세력이 많은 지역에선 친러 인사로 구성된 지방정부가 과세 등 지역 업무를 총괄하며 국가 외교 현안에서 거부권까지 행사할 수 있게 된다.


FT는 “동부에선 환영하겠지만, 수도 키예프의 우크라이나인들은 독립 22년 역사의 젊은 국가를 약화시키고 러시아 영향력을 강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 공용화 추진의 경우에 대해서도 서부에선 옛 소련시대로의 회귀를 염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FT는 또한 이 날 회담 분위기에 대해 “러시아 장관은 자신들의 요구와 관련해 협상의 유연함이 거의 없었다”며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러시아가 이런 ‘생짜’ 제안을 한 진짜 속내가 무엇인지 의문은 커지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부, 동부, 북부 등 전 국경에 군대 10만명을 주둔시켰다는 보도가 27일 나온 지 불과 하룻만인 28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사태 해결을 논의하자고 먼저 제안했다. 정상 간 전화통화가 이뤄진 지 이틀 만에 외교 장관급 회담이 파리에서 전격 열렸으며, 이 자리에서 러시아는 미리 준비해둔, 서방으로선 수용하기 어려운 제안을 내놓았다. 마치 짠듯이 러시아 국영방송은 30일 저녁에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라브로프 장관의 인터뷰를 내보내 서방이 러시아 제안을 거부한 사실도 알렸다.

그런데도 라브로프 장관은 이 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국경을 넘는 것에는 정말 아무 관심도 없고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1998년부터 3년간 주 우크라이나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스티븐 파이퍼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우크라이나의 정부 구조는 늘 키예프에 집중돼 왔다. 키예프에서 다른 지역 수도로 권력을 분산하면,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며 책임있는 거버넌스가 될 수도 있다”고 연방제의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하지만 우리는 러시아의 입장을 경계해야한다. 러시아는 효율적 정부에는 관심없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내정 간섭 기회를 만들고 싶을 뿐이다”고 분석했다.

한편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은 이 날 성명을 내고 “교훈조와 최후통첩 같은 말은 러시아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어떠한 통제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굴복시키고, 분할하고, 파괴하고자 한다”면서 “연방제, 러시아어 공용화, 주민투표 등은 우크라이나인의 관점에선 러시아의 공격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같은 날 우크라이나 동부 도시 하리코프에선 약 4000명의 주민이 동남부 지역 주(州)들의 자치권 확대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고, 또 다른 동부 도시 도네츠크에선 1000명이 모여, 도네츠크의 지위 결정을 위한 주민투표 실시를 요구했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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