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 심리학’…바로 이거였다

‘침대 야구’라 불리는 느긋한 경기운영 ..주심의 실수도 씩 웃어 넘기는 강심장

팀원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능구렁이 ..스트레스에 강하고 불안 조절 잘해

낯선 상황 닥쳐도 유연하게 대처 ..1회 징크스도 류현진 기질적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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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한국시간)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와 원정경기. 류현진(27·LA다저스)은 7회 1사에서 주심의 애매한 판정 속에 토미 메디카를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내보냈다. 1-0의 불안한 리드. 긴장감을 느낄 법도 하지만 그는 씩 웃더니 다음 타자 윌 베너블을 병살타로 돌려 세우고 순식간에 이닝을 마쳤다.

야구팬들은 류현진의 피칭을 ‘침대 야구’라고 한다. 느긋하게 침대에 누워 봐도 좋을 만큼 마음 편하게 경기 운영을 한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위기가 닥쳐도 어떻게 해서든 넘기고야 마는 ‘강심장’. 반면 덕아웃에선 빅리그 신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누구와도 흥겹게 어울리고 장난치며 분위기를 주도하는 능구렁이다.

스포츠 심리학자들은 이런 류현진의 모습을 보며 “연구 대상”이라고 한다. 빠른 현지 적응력, 흔들리지 않는 멘탈, 위기관리 능력. 해외 진출을 꿈꾸는 선수들에겐 최고의 ‘심리적 롤모델’인 셈이다. 그래서 알고 싶다. ‘류현진 심리학’의 정체를.

크기변환_PYH2014032306540009300 ▶스트레스 취약성·불안도가 낮다=심리학자들은 입을 모아 “선천적으로 스트레스 취약성과 불안도가 낮은 선수”라고 한다. 김수안 스포츠심리 연구원은 “마운드나 타석에서 경기력을 방해하는 가장 위험한 감정이 ‘불안’이다. 불안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안타를 칠 수도 있고 삼진을 잡을 수도 있다.

슬럼프에 빠진 선수들은 대개 불안을 잘 못다스리는 경우”라며 “류현진은 선천적으로 ‘스트레스 취약성’이 낮은 데다 불안을 조절하고 다스리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래서 새로운 경험이나 낯선 상황이 닥쳐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같다”고 분석했다.

2012 시즌부터 한화 이글스에서 선수들의 심리적인 부분을 관리하는 이건영 경기력향상 코치(스포츠심리학 박사)는 류현진과 1년간 생활하면서 여러차례 면담을 통해 그의 심리상태를 분석했다. 이 코치는 “일반적으로 스포츠심리학에서 불안을 크게 두가지로 나눈다. 타고난 성격에 따른 ‘특성 불안’과 경쟁상태나 특별한 조건에서 느끼는 ‘상태 불안’이다.

류현진은 두 가지 성향이 다 안정적으로 낮게 나타났다”며 “류현진은 마운드 위에서 결과를 미리 생각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위기 때도 긴장하지 않고 미소까지 짓는 건, ‘주의 초점’을 자신의 바깥보다는 안에 맞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다음 타자를 꼭 잡아야 한다’는 결과보다는 이 타자를 잡기 위해 내가 해야할 행동, 전략적인 부분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불안이나 긴장감을 크게 느끼지 않는 것이다.

또 경기에 지거나 타자들의 방망이가 터지지 않아도 ‘그럴 수도 있지. 오늘은 그런 날인가 보다’며 넘겨 버리고 그 다음 해야 할 것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게 류현진 스타일이다”고 설명했다. 크기변환_PYH2014021500490001300

 ▶’1회 징크스’도 설명 가능한가=이건영 코치는 “내가 이제까지 만난 야구선수 가운데 단연 최고 성격”이라고 꼽으면서도 “그런 류현진도 완벽하진 않다”고 했다. 무슨 말일까. 이 코치는 최적 각성수준(Opt imal Level of Arousal)이라는 심리학 용어를 언급했다.

그는 “최상의 퍼포먼스를 내기 위한 최적의 각성 수준이 있다. 양궁이나 바둑은 각성 수준이 낮아야 하는 반면 역도나 격투기는 어느 정도 흥분해야 좋은 경기력이 나온다. 그런데 류현진은 특성불안과 상태불안이 낮아 시동이 늦게 걸린다”고 했다. 류현진이 1회에 유독 안타를 많이 맞고 대량 실점을 하는 ’1회 징크스’와 맥락이 닿는 부분이다.

이 코치는 “한화 시절에도 그랬다. 타고난 불안도가 낮다 보니 각성 상태가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1회를 시작한다. 안타를 맞고 나서야 각성 수준이 올라와 고도의 집중력이 발휘된다”며 “메이저리그서 잘하는 이유도 어느 정도 긴장감을 갖고 최적각성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류현진처럼 기질적으로 타고나야만 하는 걸까. 훈련으로 이런 성격을 갖기는 어려운 걸까. 이건영 코치는 “쉽게 바뀌지 않을 뿐이지 훈련을 통해 성격을 바꿀 수는 있다”며 이를 잘 극복한 예로 박찬호(41)를 들었다. 한화 시절 한 시즌을 함께 한 이 코치는 “박찬호는 류현진과 반대로 경쟁상태 불안이 높았다. 워낙 목표 지향성이 강하고 완벽주의적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시절부터 체계적인 훈련과 자신의 노력을 통해 짧은 순간에 어떻게 컨트롤할지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이 코치는 일반 선수들에게 “마운드나 타석에서 긴장되는 순간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도록 평소 멘탈 리허설(이미지 트레이닝)을 꾸준히 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조범자 기자/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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