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있는 명소] 영주 봉황산 부석사②–의상대사를 흠모한 당나라 처녀 선묘낭자

(영주 봉황산 부석사①에서 계속)

[헤럴드경제=영주] 661년, 의상대사가 당나라에 갔을 때 양주(陽州)에 이르러 병을 얻어 양주성의 수위장인 유지인(劉至仁)의 집에 머물러야 했다. 그때 그의 딸 선묘(善妙)낭자가 의상에게 연정을 갖게 되었다. 의상의 나이 37, 선묘의 나이 17살쯤이다. 하지만 의상은 법도로 대하여 제자로 삼았다. 

의상대사를 흠모한 당나라 처녀 선묘낭자(왼쪽)와 의상대사.

선묘낭자의 정성으로 몸이 완쾌된 의상은 다시 길을 떠나 종남산 지상사에서 10년을 공부하고 671년 급거 귀국하는 길에 선묘의 집을 찾았지만 만나지 못하고 뱃길로 귀국길에 올랐다. 뒤늦게 선묘는 비단 선물을 챙겨 산동성(山東省) 해안으로 달려갔으나 의상이 탄 배는 까마득히 멀어져 간 뒤였다. 선묘는 들고 있던 선물을 의상의 배를 향해 던지며 “원컨대 이 비단이 의상대사님께 이르도록 해 주옵소서” 하니 해풍이 크게 일어나면서 던진 선물이 의상이 탄 배 안으로 날아갔다. 그리고는 자신도 용이 되게 축원을 하고 바다로 몸을 던지니 과연 용으로 변해 의상의 배를 호위해 무사히 배가 신라에 닿았다. 그 덕에 당나라의 침략을 사전에 막아낼 수 있게 됐다.

신라로 온 선묘낭자는 다시 의상의 꿈에 나타나 500명의 이교도들을 제압할 방법을 일러주었다. 다음날 아침 의상은 선묘낭자가 시키는 대로 지팡이를 한 번 두들기니 커다란 바위가 공중에 떠올랐다 내려앉았다. 용으로 화신한 선묘낭자가 들어올린 것이다. 이를 두 번, 세 번 이어서 반복하자 겁먹은 이교도들이 일제히 의상대사에게 무릎을 꿇고 함께 절을 짓는데 앞장섰다.

그렇게 공중에 세 번 뜬 바위가 무량수전 서쪽 산비탈에 있는 ‘부석(浮石)’ 바위다.

무량수전 왼쪽 뒤에 있는 부석 바위.

조선 후기 문인 이중환은 그의 저서 ‘택리지’에 “아래 위 바위 사이에 약간의 틈이 있어 실을 당기면 걸림 없이 드나들어 뜬 돌(浮石)임을 알 수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 후 선묘신룡이 부석사를 지키기 위해 석룡으로 변신해 무량수전 뜰 아래 묻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왔는데 지난 1967년 학술조사단이 무량수전 앞 뜰에서 5m가량의 석룡 하반부를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비늘 모습까지 아련히 나타나 있었다고 하니 이 절에선 용을 많이 숭배한 것 같다. 무량수전 뒤에 선묘낭자를 기린 작은 각(閣)이 있다.

황당해 보이는 이 선묘낭자 이야기는 막연히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서기 988년 송나라 찬영(贊寧) 등이 편찬한 ‘송고승전(宋高僧傳)에 당~송 350년 간의 고승 533인의 이야기 속에 의상대사와 선묘낭자 이야기가 기록돼 있으니 러브스토리와 그 힘으로 절을 지을 수 있었음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절은 서기 676년(문무왕 16)에 창건됐다. 의상대사가 이 삼국의 접경지에 어렵게 건립한 사찰이 우리나라 화엄종찰이 된 부석사다. 이곳에 화엄종찰을 지어 삼국의 백성을 하나로 묶어야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화엄(華嚴)은 ‘모든 사물이 어느 하나라도 홀로 존재하거나 일어나는게 아니라 서로 인연이 되고 상호의존해 있으며 그로 인해 발생한다(일즉일체, 일체즉일ㆍ一卽一切, 一切卽一)’는 사상으로 무진연기(無盡緣起)ㆍ법계무진연기(法界無盡緣起)를 핵심으로 삼고 있다. 생사와 열반(涅槃)이 서로 대립되는 현상이 아니라 원융무애(圓融無碍)하고 그러한 뜻에서 연화장세계(蓮花藏世界ㆍ청정 광명한 이상적인 불국토)라고 한다.

이 화엄의 가르침은 서로 대립하고 항쟁을 거듭하는 국가와 사회를 정화하고, 사람들을 대립이 아닌 마음을 통일하게 하는 것으로, 중국이나 우리나라와 같은 전제왕권국가의 율령정치체제를 정신적으로 뒷받침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그러니 문무왕은 삼국통일 후 고구려ㆍ백제 백성들을 통합하기 위해 삼국의 접경지에 통일국가의 상징물로 화엄종찰을 원했던 것이다. 또한 전쟁으로 지친 백성들의 심신을 어루만져주기 위해 전국 10여 곳에 절을 지으니 이른바 ‘화엄십찰(華嚴十刹)’이다. 

부석사 일주문. 천주교 신자들의 방문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부석사 진입로.

일주문 주변의 사과밭과 무량수전, 안양루의 15년전 아련한 기억만 갖고 다시 부석사를 여행했다. 이번엔 좀 제대로 느껴보고 싶었다.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3월 초, 홀로 경내 회전문을 들어서자 마자 때마침 지인을 만났다. 작년 영주 소수서원 여행 때 만났던 퇴계 이황 선생의 16대손 이용극 선생이다. 이 선생은 영주시 문화관광해설사로 일하시는데 일흔의 연세에도 필자에게 부석사 곳곳을 대동하며 의욕적으로 설명해주신다. 덕분에 절에서 점심공양까지 해결했다.

부석사에는 국보 5점, 보물 6점 등 귀중한 문화재가 많지만 일반 여행객으로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도 몇 가지 있어 이를 중심으로 여행해 보기로 한다.

사과밭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어 보였다. 천왕문 입구에 이르니 가파른 계단 오른쪽에 아직 잎이 나지않은 앙상한 보리수 고목이 보인다. 그 계단 위쪽 길게 늘어선 건물이 천왕문 격인 회전문인데 조선시대 때 있다 없어진 것을 근래 재현해 놓았다고 한다. 복원은 좋았지만 그 바람에 아름다운 경치 절반은 가려져 버렸다. 이 회전문은 윤회를 뜻한다.

회전문 앞의 보리수 고목. 3월 초순이라 아직 잎이 나지 않아 앙상한 느낌이다.

회전문을 들어선 다음 두 세 계단 올라선 마당의 오른쪽 끝으로 가서 안양루를 바라보면 희귀한 광경을 접할 수 있다.

누각 속에 부처님 여섯 분이 보인다. 실제 부처가 아닌 건물의 빈 틈이 그 뒷건물인 무량수전의 벽과 어우러져 햇볕이 만들어낸 부처 즉, ‘공포불’이다.

그 틈이 6개가 되다 보니 6분의 부처가 나란히 앉아있는 착시현상이다. 근래 부석사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람 포인트다. 햇빛이 강한 여름일수록 더 선명하게 보인다.

다음으로 오른쪽 언덕 위에 있는 지장전 마당으로 가서 안양루와 무량수전을 일직선 상으로 바라보면 똑 같은 두 개의 크고 작은 건물이 중첩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무량수전의 큰 바탕 위에 안양루의 작은 그림이 닮은꼴로 중첩돼 있어 우리의 아름다운 건축의 미학적인 부분도 감상해볼 수 있다. 이는 어디서도 보기 힘든 진기한 모습이다.
 

부석사의 새로운 관광 포인트가 된 공포불. 현판 바로 아래 안쪽으로 나란히 보이는 틈새가 마치 부처님 모양이라 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지장전 마당에서 바라보면 안양루와 무량수전의 지붕이 닮은꼴의 중첩된 아름다운 건축미학을 보여준다.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다.

다시 회전문 중앙의 진입로로 돌아와 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범종루가 길을 막고 있다. 250년 된 건물이다. 그 누각의 기둥 사이로 통행하게 설계됐는데 바깥쪽은 원래 지을 때 쓰인 굵은 느티나무 기둥인데 반해 안쪽에는 기둥이 가늘다.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일본서 갖고 온 나무로 교체했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계단을 올라 윗 마당에 올라서서 이 범종루를 바라보면 세상을 움직이는 ‘사물(四物)’, 즉 종과 법고, 목어, 운판이 있어야 하는데 여기엔 종이 없다. 흥선대원군이 당백전을 만들 때 종을 떼어가 버렸다. 할 수 없이 나중에 새로 만든 거대한 종은 옆쪽에 별도로 종각을 만들어 보관하고 있는데 그 종을 이 낡은 누각에 걸기에는 너무 무겁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아쉬움은 용이 달래줬다. 이 누각에 숨은 용 두마리가 있다. ‘겸손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용이다. 누각엔 들어갈 수 없는데 입구에서 자세를 낮춰 천정을 바라보면 용 두 마리가 고개를 내밀어 맞이한다. 오른쪽은 수컷으로 황룡이고 왼쪽은 암컷으로 여의주를 문 청룡이다. 귀한 발걸음, 용을 만나고 간다면 기쁜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범종루각이라고 한다.
맞은편 마당에서 바라본 범종루. 이곳에선 용 두 마리를 꼭 보자.

이 마당에는 약수가 있고 그 왼쪽으로 많은 사찰에서 볼 수 있듯이 괘불을 걸던 괘불석주가 있다. 수많은 사람이 몰릴 때 이 야외(野)의 석주단상(壇)에 부처님의 탱화를 걸어 법회(法)를 열던 자리(席)로 이를 ‘야단법석(野壇法席)’이라고 한다. 즉, ‘야외 단상에서 법회를 열던 자리’인데 이 엄숙히 법회를 여는 자리에 벌 한 마리만 날아와도 큰 소동이 벌어질 것이다. 즉 법회 자리에서 어떤 단서(端緖)가 야기(惹起)되면 시끌벅적한 소동이 벌어지는데 이를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야단법석(惹端法席)을 떤다’고 하며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이 야단법석이 심해지면 아수라장이 될 수도 있겠다. ‘아수라(阿修羅)’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혼란의 세계에 있는 귀신들의 왕’이다. 그러니 얼마나 끔찍하고 흐트러진 모습일까. 이런 광경을 ‘아수라장(場)’이라고 부른다.

(영주 봉황산 부석사③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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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남민 기자/suntopi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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