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대현의 클릭 지구촌] 페루기행-중앙광장의 성당들

중앙광장의 성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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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스코 중앙광장(Plaza De Armas) 전경. 왼편엔 대성당, 정면엔 예수회성당 건물이 보인다.

쿠스코 대성당은 중앙광장 동북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1536년 교황청 교서로 일반 성당에서 대성당으로 승격이 된 이 교회는 1560년 대대적 재건축이 시작돼 거의 100년만에 지금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성당으로 완공됩니다.

이 대성당은 페루에서 가장 유명한 실내장식 즉, ▲은박으로 장식된 제단 ▲각종 보석으로 장식된 성합(聖盒) 그리고 ▲정교한 장식으로 만들어진 성가대 2열 좌석이 유명 합니다.

원래 잉카 8대왕인 비라코차 잉카 (Wiracocha Inca)의 궁궐터에 세워졌으며 후에 소개할 삭사이와만 성벽에서 돌들을 가져다 지었습니다.

이 대성당은 왼편에 작은 건물 성가족성당(Iglesai De La Sagrada Familia,1733), 그리고 오른쪽에 승리의성당 (Iglesia Del Triunfo, Triumph 성당, 1536)과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1729년에서 1732년 사이에 지어진 승리의 성당은 1536년 스페인 침략군들이 14대 왕 망꼬의 쿠스코 공격 때 승리하며 목숨을 건진 것을 감사해 성모마리아에게 봉헌한 성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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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왼편 종탑의 종은 페루에서 가장 큰 종으로 1659년 제작되었고 무게만 5.4톤에 달한다. 오른쪽 종탑엔 20km 밖에서도 들린다는 유명한 종 마이라 앙골라(Maria Angola) 종이 들어 있다.

성당 실내는 아쉽게도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실내 맨 오른쪽 벽엔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 이라는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이 그림은 예수가 열두 제자와 마지막 만찬을 하는 장면인데 식탁에 놓인 음식이 흥미롭게도 원주민들이 즐겨 먹는 꾸이(Cuy·기니아 피그)구이이고, 음료는 포도주가 아니라 그들이 즐겨 마시는 치차(Chicha·옥수수술)라는 술입니다.

16세기 말경이 되면서 가톨릭교회는 성경을 널리 알리고 원주민들을 가르치기 위해 유럽식 화풍에 안데스 고유의 현실을 반영한 그림을 그려나가게 됩니다. 이를 위한미술학교가 거의 200여년간 존속 되면서 백만점도 넘는 그림을 그려 쿠스코를 포함한 전 페루에 퍼뜨리게 됩니다. 이 작품도 그 중 하나 입니다.

예수회 성당(Iglesia De La Compania De Jesus)은 1581년 대성당과 동시에 착공되었습니다. 1차로 지어졌던 성당은 1650년 대지진으로 무너져 예수회 (Jesuit)는 대성당 보다 더 화려하고 높이는 같은 높이로 짓기를 원했으나 쿠스코 주교는 대성당을 죽일 수 있다고 반대하여 당시의 교황 바오로 3세에게 탄원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대성당의 편을 든 교황청의 회신이 왔을 땐 이미 거의 완공 상태라 예수회가 승리했다고 합니다. 대성당 보다 17년이나 앞선 1671년 완공됐습니다. 이 예수회성당은 와이나까빡 왕궁 위에 지어졌으며 바로크 양식으로 다시 지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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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성당.나부끼는 칠색 무지개 깃발은 잉카의 깃발이다. 동성애자들이 사용하는 무지개 깃발과 비슷해 보인다.

나부끼는 칠색 무지개 깃발은 잉카의 깃발입니다. 동성애자들이 사용하는 무지개 깃발과 비슷해 보입니다.

아르마스 광장 동남쪽에 위치한 쿠스코에서 세번째로 중요한 식민지 성당 메르세드 성당(Iglesia De Merced)은 1536년 세워졌고 정복자 중 하나인 디에고 알라그로(Diego De Almagro)와 그 아들의 유해가 묻혀 있습니다.

발길을 돌려 광장 동북쪽 산 블라스(San Blas)구역으로 들어가보면 아뚠루미욕 (Hatunrumiyuc) 길의 좁은 골목이 나옵니다. 현재는 주교관으로 사용되는 이 건물은 잉카 6대왕 로카(Inca Roca)의 궁 위에 지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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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뚠루미욕 (Hatunrumiyuc) 길의 좁은 골목.유명한 ’12각돌’이 있다.

여기에 그 유명한 ’12각돌’이 있습니다. 사이즈는 세로 124cm, 가로 150cm입니다. 오늘날 쿠스코에 남은 담벼락 대부분은 왕들이 살던 궁전터 입니다. 잉카왕들은 죽으면 그 유품을 보관한 채 궁전을 폐쇄하고 새왕은 새 궁전을 지어 사용했다고 합니다.

어떤 돌벽을 자세히 살펴보면 퓨마의 형상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잉카인들의 돌 가공기술에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돌에 튀어나온 부위는 돌들을 끌기 위한 걸개장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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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칸차 위에 세워진 산토도밍고 성당 (Convento De Santo Domingo). 태양의 신전이 있었던 곳이다.

1533년 11월 15일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zato)는 스페인 병사들과 현지인 용병들을 거느리고 쿠스코에 진입합니다. 도착 첫주에는 금과 귀금속으로 장식된 잉카궁전인 이 꼬리칸차 (Qorikancha) 신전에서 금을 탈취해 나눠 가졌다고 합니다.

스페인인들은 승리의 기념비적 건물로 ‘황금의 뜰’ 혹은 ‘황금의 궁전’으로 알려진 꼬리칸차 위에 지금의 산토도밍고 성당 (Convento De Santo Domingo)을 세웠는데 태양의 신전이 있었던 곳입니다.

피사로는 이곳을 점령한 후 그의 이복동생이자 동지인 후안(Juan)에게 이 꼬리칸차를 나눠줬고 후안은 사망하며 도미니크 선교회에 기부를 하기에 이릅니다.

도미니크 선교회는 태양의 신전을 부수고 그 위에 터를 닦아 산토도밍고 성당을 세웠고 꼬리칸차는 영원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950년 대지진으로 산토도밍고 성당이 붕괴 되었지만 그 밑에 꿋꿋하게 서 있던 꼬리칸차의 검은 벽이 발견 되었습니다. 이후 성당을 복원하면서 원 잉카 담벽을 살려내 오늘에 이릅니다. 매년 6월 26일 동지에 벌어지는 태양의 축제 개막은 바로 이 검은 성벽위에서 시작 됩니다. (남반구는 6월이 동지)

전통 잉카 병사복장을 한 전사들이 여기서 부터 삭사이와만 성벽터까지 달려가 그 곳에서 본격적인 태양의 축제를 벌입니다.

2008년 방문했을 때 산토 도밍고 성당에서 벌어진 태양의 축제 식전행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 잉카의 대표적 왕인 파차쿠텍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태양의 신전 꼬리깐차에 입장료 10쏠(미화 3.5 달러)씩 내고 들어갑니다.

큰 뜰 중정을 만나게 되고 좌우로 각각 두개의 방을 만나게 됩니다. 왼쪽 두개의 방은 천둥번개의 신 이야빠의 신전과 무지개 신전입니다.

완벽한 틈새의 부등변 사각형 돌들로 만들어진 신전인데 지진에 대비해 안쪽으로 약간씩 돌을 기울여가며 쌓는 잉카 특유의 석조건축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회랑에는 스페인 침략자들과 13대 잉카 아따왈빠의 만남과 원주민들에게 가톨릭 신앙을 설파하는 그림들이 걸려 있습니다.

우리는 전형적인 잉카의 사다리꼴 문을 볼 수 있었습니다. 2단으로 파인 사다리꼴 문은 원래는 금과 은으로 치장 되었다고 하지요? 아마 이 신전은 ‘달의 신전’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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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잉카 병사복장을 한 전사들이 태양의 축제를 벌이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

평상시 우리는 심장이 뛴다는 걸 인식하지 않고 삽니다. 아파질 때 그때야 비로소 우리 신체에 이런 저런 기관을 달고 산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쯤 저는 심장 박동을 느끼게 됩니다. 이게 바로 고산병 증세입니다. 산토도밍고 성당의 종탑은 바로크양식이고 건물은 르네상스식 입니다.

회랑을 통해 밖으로 나가보니 꼬리칸차 앞에 ‘태양의 정원, Inti Pampa’가 조성돼 있고 쿠스코 시내 전경이 들어 옵니다.

다시 들어와 둘러보니 한켠엔 황금판 우주도가 걸려 있습니다. 천체공간의 행성들과 별자리를 관찰해 천문학의 기초를 세웠는데 인디오 원주민 두 남녀 머리 위에 십자가 모양의 남십자성이 보이고 그위로 타원형의 비라꼬차 신, 그 옆에는 해와 달이 배치돼 있고 인디오 남녀 옆으로 왼편에 땅의 신 파차마마 (Pachamama)와 오른편에 물의 신 코차마마(Cochamama)등이 부조돼 있습니다. 스페인 인들이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이런 수많은 황금 장식들이 이 성전을 가득채웠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꼬리깐차를 나와 숙소 쪽으로 발걸음을 옭겨가는데 중간에 10대왕 뚜빡(Tupac Yupanqui 1471~1493 재위) 왕궁터에 세워진 쿠스코문화원 (Direcion Regional De Cultura Cusco) 건물을 경비들의 호의로 잠시 들어가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원 잉카인들의 도심 주거 시설과 배수로 시설들을 볼 수 있는 쿠시칸차 (Kusikancha)로 불리는 유적지입니다. 뒤로 보이는 종탑은 꼬리깐차 산토도밍고 성당의 종탑입니다.

지치고 목도 말라 엘 아다(El Hada, 요정) 카페에서 찬 음료를 마시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한 30여분 낮잠을 잤는데도 피곤합니다. 저녁 7시가 넘어 중앙광장 근처의 현지인이 운영하는 중국집을 찾아가 볶음밥과 야채 그리고 맥주로 저녁식사를 하지만 맛이 별로 입니다. 돌아오는데 몸살 감기 기운이 있어 그런지 으슬 으슬 추위가 느껴집니다. 애드빌 한알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13 가을 서울 (4)-001

손대현/여행가·사진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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