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파카’벗어던진 제천…‘청풍’은 어느새 봄을 머금고

흰뺨검둥오리 자맥질하는 의림지
바라만봐도 힐링이 되는 청풍호…
이미 트레킹족 넘쳐나는 자드락길엔
한겨울 이겨낸 바람이 콧날을 스친다

제천 의림지가 다 녹았다. 해빙을 기다리던 흰뺨검둥오리 떼가 힘차게 비상했다가 다시 푸른 물에 착수하기를 반복한다.

의림지 한가운데엔 작은 섬이 있다. 몇 마리는 이곳에서 겨우내 움츠려 있느라 많이 쓰지 않았던 날개 속 정리도 하고 친구의 털매무새도 고쳐준다. 너도 나도 두 다리를 바삐 움직이며 자맥질이 녹슬지나 않았는지 시운전도 해본다.

눈 덮인 겨울을 이겨내고 푸르름을 다시 뽐내는 제천 청풍호. 청풍호 주변은 천혜의 절경과 문화재가 곳곳에 산재해 있으며 추위속에서 영양분을 잘 간직한 뿌리식물 약재들이 많이 서식한다

의림지 물이 녹고 영호정 푸른 솔 잔설이 사라지면서 ‘청풍’ 제천의 푸르름이 돌아왔다.

이 얼마만의 푸르름인가. 3월이 되면, 청풍호와 금수산은 겨우내 감추었던 청정 매력을 본격적으로 발산할 것이다.

뺨만 희고 다른 곳은 까만 제천 의림지 오리의 명랑해진 모습을 감상하는 사이 좋은 소식이 들린다. 삼한시대 축조된 수리시설로 지금은 국민 웰빙 쉼터가 된 의림지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후보로서 본격적인 등재 절차를 곧 밟게 된다는 것이다.

이순여 해설사는 “국가기록으로 남아있는 게 1500년전, 향토사학자들의 고증으로는 2000년 전 수리시설인 의림지는 지금까지도 모습을 유지하면서 관개 기능을 하고 있는 보기 드문 고대 유적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전했다. 탁발승을 홀대했던 부잣짐이 벌을 받아 매몰되고 그 자리에 호수가 생겼다는 전설도 흥미롭다.

제천을 찾기 직전인 지난 12일 김종덕 문체부 장관은 명동에서 ‘비정상회담’ 출연진과 함께 ‘한국방문의 해’ 맞이 K스마일 캠페인을 벌였다. 이날 이탈리아출신 알베르토가 ‘장관님 올해 봄-가을 여행주간 휴가계획 세우셨나요’라고 묻자 김 장관은 주저 없이 제천과 통영을 꼽았다. ‘올해의 관광도시’로 지정될 만큼 매력이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눈녹는 의림지에 사는 오리들의 비상

의림지에서 제천역을 지나 82번 국도를 따라 남행하다보면 금성면 사무소를 지나면서부터 파란 청풍호와 초록의 대덕산 당두산을 만난다. 그냥 있지만 해도 힐링이 되는 자연치유도시의 면모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제천이 한반도 정중앙부에 위치해서일까. 온나라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어 눈길을 끈다. 중앙선-영동선-호남선 연결 기차가 만나 ‘교통의 십자로’로 불리고 전국의 내로라 하는 깡패들이 제천에 와서는 오금을 저렸을 정도로 ‘힘 깨나 쓰는’ 노하우도 제천에 몰린 것 같다.

금수상 정상 위에서 내려다본 제천의 리아스식 지형의 호변은 물과 땅이 숨박꼭질하듯 그려져 있어 마치 노르웨이의 피요르드나 터키의 뮬라의 일부 지역을 연상케 한다. 미사리처럼 조정경기장이 있고, 호반의 도시 춘천처럼 유람선이 떠다닌다.

제주 한라산 중턱에 있는 도깨비도로는 제천 한방 치유센터 인근에도 있다. 슬로시티 일대 ‘전기없는 마을’과 자드락 트레킹 6코스 계곡성벽길은 지리산을 닮았다. 청학동의 순수함이 감춰져있고, ‘심봤다’는 심마니의 외침이 우렁찼던 곳이다.

한방의 메카라는 점은 대구와 비슷하고 건강미를 뽐내듯 동산의 남근석이 제천 상징 중 하나로 여기는 것은 삼척 신남의 해신당 남근신앙과 같은 맥락이다.

청정 제천의 학을 형상화한 솟대 문화공간의 나무조각상

한반도에 똑똑한 원시인이 살았음을 입증하는 구석기 유적지가 많다는 점에서 연천을, 탐나는 고을이라 전쟁이 많았기에 호국 충절의 의병 역시이 많았던 점에서 부여-천안과 비슷하다.

‘파수(巴水)’로 불리던 청풍호는 1985년 충주댐이 생기면서 더 커져 제천을 호반의 도시로 만들었다. 면적 67.5㎢. 웬만한 중견도시 크기이다. 금수산은 물 맛 좋기로 소문난 비봉산과 인지산 청정수가 모인 곳이다. 금수산 정상과 제천식 트레킹코스인 자드락길 1코스의 반환점이라 할 수 있는 청풍호 전망대, 청풍호 활공장, 정방사 등에서 조망할 수 있다. 호변을 자세히 보고 싶다면 청풍 나루터에서 단양 장회나루 간 52㎞구간의 왕복 1시간30분짜리 유람선을 이용하면 된다.

자드락길은 산하를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산기슭 오솔길이다. ‘작다’와 뜨락을 합쳐 만든 말로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에 난 좁은 길’이라는 뜻이다.

7코스 중 1코스 초입인 교리 만남의 광장에는 벌써부터 두터운 파카를 벗어던진 트레킹족으로 붐빈다. 청풍리조트 인근 모래고개에서 산으로 들어가면 임도가 나란히 따라온다. 편안하게 시계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산기슭을 따라가다 보면 외솔바위가 바로 코앞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나타난다. 바위산에 불쑥 고개를 내민 기암괴석 위에 소나무 한 그루가 한가로서 서있는 곳이다.

한기가 한겨울만 못한 바람이 상쾌하게 콧날을 스친다. 북쪽의 청풍대교와 남쪽의 옥순대교 풍경을 한 눈에 감상하는 사이 햇빛에 비쳐 은빛으로 변한 청풍호 위로 유람선이 유유자적 두 다리 사이를 지난다.

해발 1016m 금수산(錦繡山)은 조선 중기 단양 군수를 지낸 퇴계 이황이 단풍 든 산의 모습을 보고 ‘비단에 수를 놓은 것처럼 아름답다‘면서 이름을 지어준 산이다.

남쪽 어댕이골과 정남골이 만나는 계곡에는 금수산의 절경 용담폭포와 선녀탕이 숨어 있다. 주나라 황제의 꿈에 나타나 신하가 수만리길을 찾아헤매다 발견했다는 용담폭포와 상,중,하 선녀탕은 연결돼 있다. 주나라 신하가 이곳의 영험함을 알고 산꼭대기에 묘를 쓰자, 청룡이 크게 노하여 벌을 내리고 하늘로 승천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넓은 암반 위로 30m 물줄기가 내리 꽂는 용담폭포의 위용은 보기만 해도 속이 확 트인다. 가파른 등산로를 조금만 더 오르면 제천 남쪽 파수꾼 월악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1978년 시작된 충주 다목적 댐의 건설로 제천시 청풍면을 중심으로 한 5개면 61개 마을이 수몰되자, 수몰지역에 있던 각종 문화재들을 한 곳에 모아 조성한 것이 바로 청풍문화재단지다. 이곳에서는 제천청풍한벽루(보물 제528호),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보물 제546호) 등을 포함한 문화재 53점을 접할 수 있다.

제천 관광 활성화를 위해 2014~2016 기초단체로는 엄청난 62억5000만원을 투자한 제천은 체험여행지 QR코드를 스마트폰에 인증하거나 스탬프를 찍으면 마일리지를 적립해 시내에서 돈처럼 쓸 수 있도록 하는 관광마일리지 제도를 전국 최초로 도입했다. 가볼 곳이 너무 많으니 여러번 와야되고 올때마나 비용이 줄어드는 것이다.

제천 여행이 ‘1타4피’, ‘1석8조’로 불리는 이유는 다양한 볼거리 즐길거리 웰빙의 백화점이기 때문이다. 겨울을 이겨낸 푸르른 바람이 서늘하다.

함영훈 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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