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초미라지의 혈투…리디아 고 vs 7인의 K여전사

[헤럴드경제=조범자 기자]놓치면 후회할 격전이다. 역대 최고의 혈전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도 홈페이지를 통해 “최고 중 최고들의 격돌”이라고 표현했다. 세계랭킹 20위 안에 무려 19명(20위 테레사 루 불참)이 총출동한다. 대결은 ‘1인자’ 리디아 고(18·뉴질랜드)와 7명의 코리안 여전사들의 싸움으로 압축된다.

LPGA 투어 2016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이 4월1일(한국시간)부터 나흘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 사막도시 란초미라지의 미션힐스 골프장 다이나쇼어 코스(파72·6769야드)에서 펼쳐진다. 리우올림픽 출전권 확정일(7월11일)을 꼭 100일 앞둔 시점. 자고 일어나면 랭킹이 바뀌는 상황에서 누가 우승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고, 누구에게나 우승해야 할 이유가 있다.

▶컨디션 최고…내가 ‘호수의 여왕’=타이틀 스폰서에따라 대회명은 몇차례 바뀌었지만 ‘LPGA의 마스터스’로 불릴 만큼 전통과 권위는 여전하다. 특히 대회 우승자가 시그니처홀인 18번홀 그린 옆 연못(포피 폰드)에 풍덩 빠지는 세리머니는 여자골프 선수라면 누구나 원하는 로망이다. 한국 선수 중에서는 박지은과 유선영, 박인비가 ‘호수의 여왕’이 된 경험이 있다. 올해 호수에 빠질 가장 강력한 후보는 역시 세계 1위이자 상금랭킹 1위 리디아 고다. 지난주 KIA 클래식에서 도무지 약점이 보이지 않는 무결점 플레이로 시즌 첫승을 가져가 무서운 상승세가 예상된다. 지난해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역대 최연소 메이저 챔피언(18세 4개월 20일)에 오를 만큼 메이저대회서도 강심장이다. 그런데 유독 이 대회와는 인연이 없다. 3차례 출전해 2013년 공동 25위가 최고 성적이다. 지난해엔 공동 51위에 그쳤다. 리디아 고는 “일단 개인 최고 성적을 거두는 게 목표다. 페어웨이에 공을 잘 보내서 좋은 기회를 만들면 시즌 첫 메이저 우승 확률도 높아질 것이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강력한 도전자는 박인비다. KIA클래식에서 리디아 고에 이어 2위에 오르며 시즌 초반 부진을 확실히 털어냈다. 3년 전 우승의 기억을 되살려 4년 연속 메이저퀸을 노린다. 유럽 도박사이트 래드브록스는 리디아 고에 가장 낮은 4대1, 박인비에겐 두번째로 낮은 6대1의 배당률을 책정했다.

▶메이저 우승의 꿈…김세영·장하나·김효주, 그리고 전인지=장하나(24)와 김세영(23), 김효주(21)은 ‘2년차 징크스’를 비웃기라도 하듯 올해 벌써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장하나와 김세영은 생애 첫 LPGA 메이저 우승에 도전한다. 김효주는 정식 데뷔 이전인 2014년 에비앙챔피언십서 우승한 적이 있다. 특히 김세영은 지난해 이 대회 2,3라운드서 선두를 달리고도 마지막날 무너지며 다잡은 메이저 우승을 놓쳤다. 스테이시 루이스(미국)에 3타나 앞선 선두로 출발했지만 티샷 난조에 퍼팅까지 흔들렸다. 메이저대회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한 모습이었다. 김세영은 전장이 긴 대회 코스를 언급하며 “코스가 나와 잘 맞는다. 작년 실수를 털어버리고 우승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슈퍼루키’ 전인지(22)의 복귀는 국내 팬들 뿐 아니라 LPGA 투어에서도 각별한 관심사다. 전인지는 싱가포르공항서 허리를 다쳐 3개 대회를 건너뛰고 이 대회를 복귀 무대로 택했다. 지난주부터 대회 코스 옆에 숙소를 잡고 맹훈련을 해왔다. 강력한 신인왕 후보 전인지는 올해 LPGA 투어에 2차례 출전해 공동 3위(코츠 챔피언십), 단독 2위(혼다 타일랜드)의 눈부신 성적을 거뒀다. 전인지는 “컨디션이 80% 이상 올라왔다. 좋은 모습 보여주겠다”고 했다.

▶태평양을 날아왔다…이보미·박성현=한국과 일본 투어가 주무대인 박성현(23)과 이보미(28)도 경쟁에 뛰어들었다. ‘장타여왕’ 박성현은 최근 2주 연속 LPGA 투어 대회에 출전해 공동 13위, 공동 4위의 기대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단박에 LPGA 투어 관계자와 팬들을 매료시켰다. 지난해 국내서 열린 하나외환챔피언십(공동 2위)까지 합하면 3차례 LPGA 대회서 2번이나 톱5에 오른 것이다.

지난해 일본 열도를 평정하고 올해도 벌써 1승을 올린 이보미는 올림픽 출전권을 위해 태평양을 건너왔다. 이보미는 현재 세계랭킹 15위로 한국 선수 가운데 8위다. 국내 4위 안에 올라 올림픽 티켓을 따내려면 포인트가 월등히 높은 이 대회서 우승을 차지해야 한다.

리디아 고와 한국 낭자들의 혈투에 가려졌지만 미국 선수들의 기세도 만만찮다. 1983년 메이저로 승격된 후 33차례 열린 이 대회서 미국 선수가 우승한 건 무려 21차례다. 최근 2년 간 우승자도 모두 미국 선수(2014년 렉시 톰슨, 2015년 브리타니 린시컴)다. 골프여왕들의 불꽃튀는 전쟁이 시작됐다.

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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