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한옥마을 떠나는 원주민들 ①] “동물원 원숭이된 듯…‘한옥’에 산다는 게 죄죠”

-관광버스 주차난ㆍ소음ㆍ쓰레기ㆍ노상방뇨… ‘집’으로서 역할 못해

-市 “주민 피해 인정…의견 수렴 중”…주민 “제대로 살수 없어 떠난다”

[헤럴드경제=구민정(글ㆍ사진) 기자] #1. 지난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한옥마을 앞.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큼 좁은 도로가 시작되는 즈음에 관광버스 4대가 줄지어 한 개 차로를 차지하고 서 있었다. 버스가 내려 준 외국인 관광객 수백명은 좁은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며 기와 지붕 아래에서 사진을 찍거나 대문 앞 계단 주춧돌에 걸터 앉아 쉬어 가기도 했다. 아담한 한옥이 줄지어 서 있는 고즈넉한 북촌 골목은 중국어, 일본어 대화와 휴대전화 카메라 셔터 소음으로 금세 가득 찼다.

#2. 북촌한옥마을에 거주하는 김재혁(44) 씨는 요즘 작은 소망이 생겼다. 바로 ‘집다운 집’에서 사는 것. 김 씨는 “시도 때도 없이 외국인 관광객들이 지나다니며 큰 소리로 얘기를 하고 문을 두드려 밤낮으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소음 문제 뿐만 아니다. 몰려드는 관광객들에 비해 화장실이 부족해 관광객들이 한옥 담벼락에 노상방뇨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김 씨는 매번 담벼락을 물청소하며 불쾌함을 느낀다. 골목길 중간중간 휴지통도 없어 거리는 사람들이 먹고 난 후 버린 빈 음료수 병과 포장지로 뒤범벅된다. 무엇보다 불편한 건 낯선 사람들과 하루종일 마주치는 시선이다. 5분이란 짧은 시간에도 마루에 앉아 있으면 집 안을 훑어보는 관광객 수십명과 눈이 마주치는 것이 일상이다. 그럴 때마다 김 씨는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북촌 한옥마을이 있는 가회동 일대 도로들은 매일 외국인 단체관광객들을 태운 버스들의 불법주차로 몸살을 앓고 있다. 주민들의 교통난ㆍ주차난을 겪은 지 5년 가량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그렇다 할 주차장 시설은 없다.
북촌 한옥마을이 있는 가회동 일대 도로들은 매일 외국인 단체관광객들을 태운 버스들의 불법주차로 몸살을 앓고 있다. 주민들의 교통난ㆍ주차난을 겪은 지 5년 가량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그렇다 할 주차장 시설은 없다.

북촌의 한옥(韓屋)들이 더 이상 ‘집(屋)’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한옥을 보존한다는 이유로 관광객 대상 시설 개설이 전면 금지되면서 주민들이 기본적인 생활마저 침해받고 있기 때문이다.

북촌은 지난 1960년대만 해도 한옥으로 이뤄진 주거 밀집지였다. 경복궁과 인접해 조선시대에는 세력가들의 가택이 모여 있었고, 지금도 비교적 큰 규모의 한옥들이 산재해 있다. 

북촌에 위치한 한 한옥의 대문에 ‘조용히 해주세요’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한옥마을 주민들은 소음문제 외에도 무분별한 흡연ㆍ오물 투기ㆍ사생활 침해 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정부가 문화적 가치가 높은 한옥의 보존 필요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1980년대부터 북촌길을 만들기 시작하며 생겼다. 특히 2009년 서울시가 가회동ㆍ삼청동 등 북촌 일대에 대해 ‘북촌 제1종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하면서 가회동에는 한옥으로 된 어린이집, 도서관, 경로당 등 외에는 어떠한 시설도 지을 수 없게 돼 주민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다. 

사람들이 붐비는 주말이 아니더라도 북촌 한옥마을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방문으로 매일 유명 관광지를 방불케 한다. 하지만 주민들은 북촌은 관광지이기 이전에 많은 사람들의 ‘먹고 사는 집’이라고 호소한다.
사람들이 붐비는 주말이 아니더라도 북촌 한옥마을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방문으로 매일 유명 관광지를 방불케 한다. 하지만 주민들은 북촌은 관광지이기 이전에 많은 사람들의 ‘먹고 사는 집’이라고 호소한다.

덕분에 북촌의 한옥들은 외형적으로 잘 보존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마을 공동체는 ‘화석화’됐다. 새롭게 몰려드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대비하기 위해 실제 거주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일부 주민은 소음ㆍ쓰레기 문제가 심해져 더 이상 살지 못하고 한옥마을을 떠났다.

결국 남아 있는 주민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으로 나설 수 밖에 없었다. 1000여명이 넘는 가회동 주민들은 지난 3월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서울시에 북촌지구단위계획 사업을 수정해 실질적으로 관광객들을 상대할 수 있도록 화장실, 사무소 등의 시설들을 허가해 달라는 탄원서를 냈다. 

북촌로11길 32 한옥에 거주하는 김재혁 씨의 관점에서 본 집앞 골목. 매일 수많은 낯선 관광객들과 원치 않게 눈을 마주치고 물음에 답하고 사진 찍힘을 당해야 한다.

비대위의 이강배 위원장은 “서울시를 상대로 탄원서를 수차례 제출했지만 아직까지 아무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탄원서를 제출하고 집회를 하니까 구청 직원이라는 사람이 와서 ‘그럼 골목에 쓰레기통 몇개 놔 드리고 청소 노동자 붙여 드리면 되냐’고 하더라”며 “핵심은 한옥마을을 단순 관광지가 아닌 사람이 살 수 있는 마을로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서울시 관계자는 “주민들이 겪는 불편함을 인지하고 있지만 관광 명소로서 불가피한 점도 있다”며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지구단위계획 내용 중 변경할 사항이 있는 지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주차장은 매번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며 “얼마 전 인근 정독도서관에 화장실은 지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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