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로 본다②] ‘아가씨’ 음향감독이 밝힌 귀 기울일 포인트 셋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심리극이다. 블록버스터급 추격신, 건물 붕괴나 폭발도 없다. 즉, 시끄러운 도로 위의 경적이나 폭발음이 없다는 얘기다. 대신 ‘아가씨’에는 등장인물들의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있다. 남을 속이는 소리, 마음이 변하는 소리, 쫄깃한 반전의 소리다. “음향은 심리를 다룬다”고 말하는 ‘아가씨’의 김석원 음향감독을 만나 영화에 귀 기울여 봤다.

소리 ‘더하기’ 보다는 ‘빼기’= “‘아가씨’를 볼 때는 ‘무슨 소리가 있다는 거야’ 싶으셨겠죠. 하지만 이 영화는 사운드 적으로 굉장히 새로운 시도들을 많이 한 작품이에요.”

김 음향감독은 박찬욱 감독을 “소리에 대해 특출난 사람”이라고 추켜세웠다. “대개 영화감독들은 소리가 탁 튀어나오게, 보이는 것처럼 해 달라는 요구가 많다”라며 “하지만 박 감독은 굉장히 작은 소리로, 소리를 빼면서 연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박 감독은 ‘아가씨’에서 백작(하정우)을 기다리는 아가씨(김민희)의 마음을 아주 작은 소리로 나타냈다. 미술 수업을 하는 응접실, 벽에 걸린 시계만 정적으로 담은 프레임에서 ‘똑딱똑딱’ 하는 초침 소리만이 영화를 가득 채운다. 화면을 이동하면 아가씨와 하녀(김태리)가 기다리는 응접실 안이 어두웠다가 밝아지면서 바람 소리가 난다. 바깥에서 구름이 흘러가고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소리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김 음향감독은 “박 감독이 이런 멋진 장면을 (시나리오에)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소리로 기다림을 잘 표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백작의 성격은 촬영이 끝나고 바뀌었다?= ‘아가씨’는 다른 영화들보다 후시녹음(ADR) 비중이 높았다. ADR은 촬영 현장에서 동시녹음으로 잘 담아내지 못한 대사나 내레이션을 촬영이 끝나고서 스튜디오에서 녹음해 덧입히는 작업을 말한다.

동시녹음 상황이 좋지 않으면 작게 녹음된 소리를 가지고 음량을 키워도 군소리가 많이 나 그대로 쓰기 어렵다. 영화에서 들리는 깨끗한 소리들은 대부분 사후 처리과정을 거친다.

‘아가씨’에서 특이할 만한 점은 ADR로 백작의 성격을 모두 바꿨다는 것. 김 음향감독은 “하정우씨 말은 거의 다 ADR이라고 보면 된다”라며 “원래 촬영분에서는 좀 건들건들한 느낌의 말투였는데, 조금 더 신사적으로, 백작 같은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녹음을 다시 해서 성격을 많이 바꿨다”고 밝혔다.

인물들의 일본어 대사들도 마찬가지다. 극중 일본 사람인 김민희나 일본 사람인 척하는 하정우의 일본어 대사도 거의 ADR이었다. “배우들이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도 일본어 연습을 많이 했지만 완벽해야 했기 때문에”, 김 음향감독은 강조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가는 소리’는 어떻게 탄생했나= 박찬욱 감독이 ‘아가씨’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하녀가 아가씨의 뾰족한 이를 은골무로 갈아주는 장면이었다. 박 감독은 인터뷰에서 “원작소설 ‘핑거스미스’에서 이 장면을 보고 청각, 시각, 촉각 등 여러 감각을 나타낼 수 있겠다 싶어 도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석원 음향감독도 역시 이 장면에 몰두했다. “소리 하나 만드려고 별 시도를 다 해봤다”고 말했다. 완고한 치과의사를 설득해 병원에서 이를 얻어 와 요리조리 만져 보고 갈아 봤다. 사포로 갈아보고, 은으로 만져 보고, 직접 자신의 이를 가지고 소리를 녹음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삭삭’ 거리는 들릴락 말락 아주 작은 소리가 아가씨와 하녀의 묘한 감정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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