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투표가 끝 아니다…초박빙 결과가 부를 또다른 혼란

탈퇴파 벌써부터 ‘패배땐 재투표’
잔류파 질땐 의회통해 거부 가능
유럽의회 동의과정 ‘또하나의 산’

브렉시트(Brexitㆍ영국의 EU 탈퇴) 운명의 날이 밝았다. 영국 유권자 4650만 명은 한국 시각으로 23일 오후 3시부터 24일 오전 6시까지 EU에 남느냐, 떠나느냐를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투표일자가 확정된 지난 2월 이후 영국은 극심한 분열과 혼란을 노정했다. 미증유의 사태에 언론과 여론조사 기관, 정치인, 전문가들이 양쪽으로 갈려 투표 결과와 파장을 놓고 서로 다른 전망을 내놓았다. 그리고 약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국 앞에 놓인 길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말할 수 있는 이는 없다. 투표 결과가 어떻게 될 지, 이번 투표가 브렉시트 논란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지,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등 여전히 영국은 깊은 안개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끝까지 엎치락뒤치락…뚜껑을 열기 전엔 모른다= 여론조사를 통해 나타난 표심은 마지막까지 엎치락뒤치락을 거듭하고 있다. 올해 들어 진행된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EU에 남자는 의견이 대체로 우위를 보이다가,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떠나자는 의견이 역전에 성공했다. 그러나 지난 16일 브렉시트 반대 운동을 벌여온 조 콕스 의원이 피살된 일을 계기로 역풍이 불어, 다시 EU에 남자는 의견이 줄곧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투표 전 마지막날인 22일 공개된 일련의 여론조사에서는 어느 한 쪽의 우세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박빙의 결과가 나왔다. 유고브와 콤레스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잔류해야 한다는 의견이 각각 2%p와 6%p 차이로 앞섰고, 오피니움과 TNS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탈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각각 1%p와 2%p 차로 우세했다.

전문가들은 어느 진영이 더 많은 유권자를 투표소에 나오게 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수 있다고 전망한다. 잔류 진영에서는 젊은 유권자들에게 “할머니를 설득해서 투표소에 나오지 못하게 하라”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EU에 남아있음으로써 일자리 등 경제적 혜택을 얻을 수 있는 젊은층은 잔류에 우호적인 반면, 영연방의 옛 영광을 그리워하는 노년층 유권자는 탈퇴에 우호적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탈퇴 진영에서는 콕스 의원 피살 이후 탈퇴 지지자들이 표심을 숨겨왔기 때문에 실제 투표에서는 숨겨진 표가 드러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구속력 없는 투표 결과…수용할 수 있을까?= 어느 쪽이 승리하건 간에 패배 진영이 결과를 수용할 것인지도 알 수 없다. 투표 결과 박빙의 차이로 승부가 난다면 재차 삼차 투표할 경우 자기 진영이 이길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번 투표를 끝으로 브렉시트 이슈가 완전히 소멸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낳는다.

실제 브렉시트를 주장하고 있는 독립당은 투표 결과 미미한 격차로 탈퇴 진영이 패배할 경우 재투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잔류 진영 역시 패배하더라도 브렉시트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국민투표 자체가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영국이 실제로 EU를 떠나기 위해서는 의회가 국민투표를 통해 드러난 민심을 수용해 입법을 해야만 하는데, 의회가 어떤 식으로든 이를 거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브렉시트로 가닥잡히더라도…“내용물을 알 수 없는 상자”=설혹 이 모든 논란이 종식되고 브렉시트를 받아들이더라도, 그 후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또한 알 수 없다. 영국이 최종적으로 EU를 떠나기까지 정확히 얼마만큼의 기간이 걸리며,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예측이 분분하다. 1992년 EU가 출범한 이래 어떤 회원국도 EU를 탈퇴한 적이 없어, 판단 기준으로 삼을 만한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리스본조약 50조를 거론하며 2년 이내에 EU 탈퇴가 진행될 것이라 전망하는 반면, 다른 이는 수십년이 걸릴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도널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2년 안에 협상을 마쳐도 비준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성공 여부를 장담하지 못한 채 27개 EU 회원국과 EU 의회가 모든 결과를 승인하는 데 최소 5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과 EU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형성될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회원국인 노르웨이처럼 EU와 유럽경제지역(EEA)을 통해 EU 시장에 접근할 수도 있고, 스위스처럼 EEA가 아닌 스위스-EU 양자협정을 통해 EU와 관계맺기를 시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부 EU 지도자들은 영국이 EU를 떠날 경우 보복성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공언해 이런 모델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이에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브렉시트는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알 수 없는 상자를 고르는 것과 같다”고 했다. 

김성훈 기자/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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