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6ㆍ25 ②] 잊혀진 민간인 학살 사건들 “죽어서도 눈 못 감는다”

-국민보도연맹 사건, 거창 민간인 학살 사건 등 피해자 유가족 손해배상 소송 잇따라

-국가에 의한 민간인 학살…6.25전쟁 직후 좌익 도운 혐의 등 적용해 재판없이 총살당해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지난달 창원지방법원은 국민보도연맹 사건이 발생했던 1950년 좌익 인물로 오인돼 경찰에 의해 총살당한 김모 씨의 아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가 배상할 필요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김 씨는 1950년 10월 국민보도연맹 소속원으로 오인돼 경찰에 의해 끌려가 전남 완도군 소안면 해안 숲에서 총살당했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은 1950년 경찰과 군인들에 의해 전국 각지에 있던 좌익 전향자 단체인 국민보도연맹의 회원을 강제로 가두고 집단 총살한 사건이다. 재판부는 하지만 김 씨 아들의 소송을 기각했다. 손해배상 소송을 할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에서다. 국가배상법 등에 따르면 국가를 상대로 한 불법행위의 손해배상 청구는 손해가 발생하거나,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 불법행위가 있은 날부터 5년 내에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가 소멸된다. 

6.25 전쟁 직후 한국군이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 하고 있다.

재판부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위원회)가 소안면 국민보도연맹원 학살 사건과 관련, 유족들의 진실규명 신청을 받아들여 진실 결정을 내린 시점이 2007년, 2008년이었으므로 소송 시효가 만료됐다”고 판단했다.

법정에서 6.25 전쟁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전쟁 당시 좌익분자로 몰려 학살을 당한 민간인들의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벌이는 손해배상 소송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다만 손해배상을 하는 기준이 법원마다 달라 유가족들을 애타게 하고 있다.

또 다른 국민보도연맹 사건의 희생자 유족들은 최근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게 됐다.

대법원은 지난 5월 황모 씨 등 이 사건 피해자 185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진주 보도연맹 사건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국가가 이들 중 157명에 대해 52억여원을 배상하라”며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국가는 여기서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국가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권리남용”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진실규명 결정일로부터 3년이 경과하기 전에 소를 제기한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거창 양민 학살 사건이 일어났던 당시 모습

‘거창 민간인 학살 사건’도 6.25 전쟁의 혼란 속에서 국가가 민간인들을 대량 학살한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1950년 12월 공산군을 토벌한다는 명목으로 경남 거창군 신원면 일대에서 토벌작전을 벌이던 군이 무차별적으로 민간인 719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대법원은 지난 3월 거창 산청 민간인 학살 사건의 희생자 조모 군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취지로 원심을 깨고 재판을 다시 받도록 했다.

과거사위원회는 2010년 관련자들 진술과 자료를 토대로 조 군 등 11명이 1949~1951년 경찰과 군인들에게 희생당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만 1살이던 조 군은 빨치산 토벌을 하던 국군에 의해 총살당했다. 조 군은 당시 출생 직후여서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2심 재판부는 “족보나 참고인 진술서 등 조 군에 관한 기록이 없다”면서 조군을 희생자로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대법원은 “전쟁이 끝난 후 조 씨 시신을 수습해 선산에 모셨다는 주민들의 진술 등을 종합해 따져야 한다”며 “재판을 다시 하라”고 판결했다.

부산지법은 2014년 7월 거창 민간인 학살 사건 희생자들의 유족에게 국가가 정신적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부산지법은 거창 민간인 학살 사건 유가족 6명이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원고들에게 각각 2866만~7238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이는 2012년 11월 부산고법이 거창사건 희생자 유가족 5명에게 “국가는 원고에게 1억1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후 내린 후 두 번째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다.

6.25전쟁 발발 직후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재소자를 학살한 ‘대전형무소 사건’도 억울한 민간인 피해자 발생 사건이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3월 충남지역 부역 혐의 민간인 희생 사건의 유족 81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한 1심을 깨고 “유족 74명에게 18억1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당시 대전형무소엔 제주 4·3 사건, 여순사건 관련 재소자, 정치 사상범, 징역 10년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일반 사범, 국민보도연맹 회원 등이 수감돼 있었다. 상부의 지시를 받은 경찰과 헌병 등은 1950년 6월부터 7월까지 대전 동구 산내초등학교 인근 산기슭에서 이들을 법적 절차 없이 집단으로 살해했다.

그밖에 1950년 7월 미군이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철교 밑에서 한국인 양민 300여명을 사살한 ‘노근리 학살 사건’ 관련된 유가족 소송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6.25전쟁 직후 국가가 아이부터 노인까지 법적 절차없이 조직적으로 학살한 사건 중에는 아직 완전히 규명되지 못한 사실도 있는 등 논란은 법정은 물론 법정 밖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email protected]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