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6ㆍ25 ③] 전쟁 피해자 배상, 그게 나라의 ‘국격’인데…

-獨, 70년전 그리스 민간인 피해자 보상 논의

-태평양전쟁 피해 日 주민들 국가상대 소송서 져

-韓, 6ㆍ25전쟁 민간인 피해 진상규명조차 어려워

[헤럴드경제=양대근ㆍ김현일 기자] “전쟁 피해자와 그 후손들의 기억은 가해자들의 기억보다 오래 간다.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재정적 배상을 검토해야 한다.”

한때 독일의 대선 후보를 지내기도 한 사회민주당(SPD) 소속 정치인 게지네 슈반은 지난해 3월 이 발언으로 전쟁 피해배상 문제에 불을 지폈다. 70여년 전 자국이 그리스에서 2만명이 넘는 민간인을 학살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배상을 할 것을 촉구했다.

6ㆍ25전쟁 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납치되거나 행방불명된 민간인만 39만명에 이른다. 그러나 아직 제대로 된 기준이 없어 민간인 피해배상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은 1951년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 [사진=게티이미지]

작년 5월에는 독일 의회가 2차대전 당시 소련 전쟁포로였던 생존자 약 4000명에게 1000만 유로(한화 약 122억원)를 지급하기로 하면서 또 한번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배상액 규모는 작지만 수십년 전 발생한 피해에 대해 잊지 않고 책임을 졌다는 상징성이 높게 평가돼 박수가 쏟아졌다.

그동안 전쟁 피해배상 문제는 주로 참전군인들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져 왔다. 자연스레 민간인 피해배상 문제는 후순위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독일처럼 뒤늦게 피해 민간인들에게까지 배상을 확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긴 했지만 여전히 각 나라는 법률적 한계를 근거로 내세우며 민간인 피해배상을 주저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얼마 전 민간인 피해배상에 대한 정부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첫 판결이 나왔다.

1945년 태평양전쟁 때 포탄으로 다치거나 가족을 잃은 오키나와 주민들은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4년 간의 법정 공방 끝에 패소했다.

한국전쟁 당시 손녀를 등에 업은 할머니가 불에 타 폐허가 돼 버린 집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법원은 지난 3월 “전쟁 당시 메이지 헌법 하에선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법률이 없었기 때문에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며 기각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이어 “국가의 재정사정을 고려해 누구에게 배상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국회에 맡길 사항”이라며 “일반적인 전쟁 피해자에게 배상을 안 하는 것은 불합리한 차별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현재 일본 정부는 관련법에 따라 태평양전쟁 참전군인과 군무원 등이 전쟁으로 부상을 입거나 사망했을 경우에만 당사자나 유가족에게 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소송을 제기한 오키나와 주민들은 민간인이기 때문에 정부 지원과 배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희생사건을 조사해온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지난 2010년 임기 종료로 해산되면서 보상에 앞서 진상규명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19대 국회 때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이에 인식을 같이 하고 관련 법안을 경쟁적으로 발의했다. 대부분 진실화해위와 비슷한 성격의 위원회를 다시 설치해 민간인 피해자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당시 이낙연 의원은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와 유족은 국가를 상대로 개별적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야 하는데, 소송시간과 비용 때문에 고통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며 “제대로 된 보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제출된 6개의 법안 모두 국회 임기 종료로 자동 폐기돼 여전히 민간인 피해배상은 기준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편 6ㆍ25전쟁 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가 지난 2010년 낸 자료에 따르면 한국전쟁으로 발생한 국내 민간인 피해자는 100만명에 육박한다. 납치되거나 행방불명된 자가 39만명으로 가장 많았고, 사망ㆍ학살 피해자도 37만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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