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후폭풍] 고립 택한 영국…흔들리는 국제화

[헤럴드경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의 파장이 금융권을 넘어 정치권으로 확산될 우려를 낳고 있다. 미국의 최고 혈맹이었던 영국이 고립주의를 택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보안질서에도 예측불허의 파장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워싱턴 외교가는 무엇보다도 이번 브렉시트가 유럽은 물론이고 전세계적으로 고립주의가 확산되는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는데 주목한다. 이는 대외개입을 주축으로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미국의 세계전략을 뿌리부터 흔들어놓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석좌는 연합뉴스에 “이번 결정은 전세계적으로 대외개입에 회의적인 정서를 반영한다”며 “우리는 멕시코 국경에 벽을 세우고 동맹을 위협하는 미국 공화당의 사실상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발언에서 이를 확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차 석좌는 “이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의 가장 빛나는 사례인 유럽 통합에 대한 타격”이라며 “다만 이것이 러시아를 보다 대담하게 만들지, 또 스코틀랜드가 분리 독립을 추진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란틱 카운슬 연구원은 “이번 결정은 세계화에 대한 역풍이라는곤란한 국제적 흐름을 보여준다”며 “이것은 트럼프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고 있는 국내 상황과 같다”고 밝히고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보게 될 것”이라고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브렉시트에 따른 ‘유럽의 균열’로 미국이 글로벌 현안대응에 있어 유럽의 전폭적 지지를 끌어내는데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유럽을 지탱하는 양대 기구인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서 미국을 가장 강력하게 지지해온 영국이 이탈한 것이어서 미국이 의존해온 유럽의 집단안보체제에 ‘힘의 공백’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연합뉴스에 “이것은 국제정치의심리학적 문제”라며 “안보질서의 경우 나토가 그대로 존속하겠지만 유럽이 분열되고있다는 인식은 유럽의 통합성을 해치고 (러시아의) 기회주의적 대응에 빌미를 줄 것”이라고 밝혔다.

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미국과 ‘특수관계’를 형성한 영국은 지금까지 ‘이슬람국가’(IS) 격퇴를 비롯한 중동문제와 아프가니스탄 사태 대처,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제재 등에 있어 미국과 철저히 호흡을 맞춰왔다.

그러나 영국이 탈퇴하면서 미국이 나머지 유럽국가들로부터 화끈한 지지를 끌어내기가 수월치 않아졌고 유럽 역내 안보질서를 유지하는데 있어 스스로의 부담만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자문역이었던 필 고든은 “브렉시트 이후 유럽이 내부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서 미국의 국제적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유럽 역내에서 미국 주도의 질서에 대항해온 러시아 푸틴 정권의 패권확장 드라이브가 힘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한 당국자는 “러시아가 나토를 무력화하기 위해 서유럽과 동유럽 내에서극우 민족주의 운동을 지지하는 공세를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번 사태는 동맹과 우방들을 앞세우고 미국이 뒤에서 지원하는 ‘배후에서 조종하기’(leading from behind) 전략을 구사해온 오바마 대통령에게 커다란 심리적 충격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4월 영국 방문때 브렉시트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강력히 표명한 바 있다.

물론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영국과 EU는 필수적 동반자”라고 강조하면서 현재 미국이 주도하는 유럽 집단안보체제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지만 상황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미국이 이끄는 대(對) 테러 작전에 있어 동맹·우방의 정보공조와 협력체계 구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외교소식통들은 분석했다.

나토는 물론이고 국제안보의 최고 협의체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도 미국 주도로 논의를 끌어나가기가 불편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유럽담당 연구원인 헤더 콘리는 “난민 위기와 IS 격퇴, 우크라이나 휴전협정 위반, 러시아 제재에 대해 미국이 유럽 동맹과 우방들의 관심을 끌어내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유안 안전보장이사회와 나토에서 영국의 리더십을 필요로 할 때 영국은 내부로 눈을 돌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현재 영국과 EU 사이에서 ‘균형잡기’를 시도하고 ‘영국의 질서있는 탈퇴’를 강조한 것은 브렉시트에 따른 후폭풍을 최소화하려는 포석이다.

그러나 올가을 대선과정을 거쳐 출범하게 될 차기 행정부로서는 영국과의 특수관계를 계속 이어갈 것이냐, 아니면 나머지 유럽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할 것이냐는결정을 내려야할 상황에 봉착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 외교가가 우려하는 또하나의 변수는 이번 브렉시트의 여파로 스코틀랜드가 다시금 분리독립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는 점이다. 실제로 영국이 분리된다면 이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비토’(거부권)를 행사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회의론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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