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Insight-김욱진 KOTRA 이란 테헤란무역관 과장] 아자디에는 자유가 없다

지구촌에서 축구 축제가 한창이다. 아메리카와 유럽 대륙에서 진행되는 국가별 대항전은 해당 나라 뿐 아니라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란의 축구 열기도 예외는 아니다. 아예 국영방송(IRIB)에서 몇 개 채널을 옮겨가며 모든 경기를 생중계하고 있을 정도다.

현대 이란의 역사에서 축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25년, 팔레비 왕조의 레자 샤는 즉위 후 이란의 근대화에 박차를 가한다. 도로와 철도 등 사회 기반을 구축하는 동시에 여성의 히잡 착용을 법으로 금지하는 등 전통적 관행을 뿌리 뽑으려 했다. 전국적으로 초중등 교육 제도를 도입하며 체육 과정을 포함했고, 군대에서는 반드시 축구를 하도록 지시했다.

근대화를 상징하는 축구의 보급은 전통 이슬람 사회였던 당시 이란에 충격으로 다가왔다. 심지어 성직자들은 공을 차는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짧은 반바지에 스타킹을 신은 선수들의 모습은 남성이 외출시 무릎을 포함한 다리를 가려야 한다는 이슬람 율법에 위배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화가 진행되자,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은 여가 시간을 이용해 점차 축구를 즐기기 시작했다.

아버지에 이어 2대 팔레비 왕위에 오른 모함마드 레자 샤는 보다 적극적으로 축구를 장려했다. 축구 붐이 일면서 유명 구단 사이의 라이벌 관계도 형성되었다. 왕실에서 후원한 타지(Taj) 클럽과 서민층의 지지를 받은 페르세폴리스(Persepolis) 팀의 대결, 테헤란 더비도 이 때 발단했다.

이란은 1974년 테헤란에서 아시안 게임을 개최하며 종합 스포츠 단지를 건설했다. 주경기장은 최대 12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아리아메흐르(Aryamehr) 스타디움이었다. 그러나 대규모 토목 공사와 국제 체육행사 주관 등 팔레비 왕조의 지나친 세력 과시용 정책은 커다란 사회적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결국 1979년, 루홀라 호메이니가 주축이 된 이슬람 혁명을 통해 왕정은 폐지되었다.

정교일치 체제인 이슬람 공화국 수립 후, 이란의 새로운 지도층은 서구화된 스포츠의 인기를 통제하는 작업부터 진행했다. 왕의 별칭이었던 아리아메흐르 스타디움은 아자디(Azadiㆍ자유)가 되었고, 왕관을 뜻하는 타지 클럽은 에스테글랄(Esteghlalㆍ독립)이 되었다.

그러나 매 게임 마다 수만 명이 운집하는 ‘자유’ 운동장에 여성이 드나들 자유가 없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 여성들은 경기장 출입이 금지되었다.

지난 1월, 경제제재가 풀리고 시장이 열리면서 마침내 이란 사회에 급진적인 개방의 물결이 몰아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하지만 현지 사정을 고려할 때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앞으로 이란 체제는 종교 가치의 수호를 넘어 유연한 방식으로 이슬람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란 여성들이 아자디 경기장에서 에스테글랄과 페르세폴리스의 프로축구 경기를 볼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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