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이후]인기영합주의·재투표·인종차별…민주주의근간 위협하는 브렉시트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의 사퇴 요구에 반대하는 3000명의 시위대가 모인 런던 의회광장에선 제2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넘쳐났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를 뒤집자는 요구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 곳곳에선 “폴란드 기생충은 필요 없다”며 인종차별이 극심해지고 있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27일(현지시간) 이에 대해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브렉시트는 현대 민주주의의 역설이면서, 민주주의 그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포퓰리즘에 갇힌 국민투표= 브렉시트가 결정되자 유럽 전역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론이 부상했다. 외신뿐만 아니라 한국 언론은 우민한 민중들이 극우 정치인의 선동에 휘말린 잘못된 선택에 따른 결과라고 짚었었다. NYT는 브렉시트 투표가 ‘감정적 투표’였다고 지적했다. 결국 정치제도에 따라 투표권을 부여받은 ‘국민’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워신턴 포스트(WP)는 “EU로부터의 영국 ‘독립’에 찬성하느냐는 질문에 반대하는 영국인은 없을 것”이라며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시키는 국민투표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주의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한 국가의 중요 정책을 직접민주주의 형태로 결정하는 것은 이따금 민주주의 정신과 반대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WP는 “현대정치는 양극으로 분열해 합의가 안되는 상황”이라며 “(국민투표를 시행하면) 어떤 정책이나 입법안을 도출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브렉시트, 민주주의 근간 훼손=미국 포린폴리시(FP)는 브렉시트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이유가 다름아닌 ‘EU 탈퇴’ 그 자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EU는 칸트의 영구평화론(시민정치에 의한 평화)을 적용한 유럽통합의 ‘꿈’이었다. 일부 주권의 양여를 통해 결성된 EU는 웨스트팔리아 조약의 주권 평등(equal sovereignty)과 주권 불간섭(non-interference) 원칙에 ‘시민 스스로가 주권을 양여하는’ 안전망을 설치한 것이다. 문제는 브렉시트가 이를 깨트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EU 탈퇴 결정 여파는 바다 건너 유럽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EU의 또 다른 중심축인 프랑스에서는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의 마리 르펜 대표가 EU 탈퇴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외에도 체코, 네덜란드, 이탈리아, 덴마크, 핀란드 등 EU를 이끄는 주요 국가들 사이에서 탈퇴 움직임이 고개를 들고 있다.

독재 국가로 전락한 국가만 27개국…삐그덕 거리는 민주주의=스탠퍼드 대학 교수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만이 현대사회의 유일한 선택”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 전문가 래리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지난 2000년부터 2015년 사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독재정권으로 전락한 국가는 총 27개국에 달한다.

래리 다이아몬드는 “브렉시트는 독재를 지향하는 극우정치를 태동시켰다”며 “선동정치가 독재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관료제와 독선적 운영…독(毒)이 되다=브렉시트의 한 원인으로는 EU의 비대한 관료제와 독선적인 운영방침도 꼽힌다. 과거 웨스트팔리아 조약 아래 국가들이 주권평등과 주권불간섭 원칙을 과용했다면, EU는 영구평화론을 이용해 지나치게 주권을 개입한 것이다. ‘영국은 유럽에 위치하고 있지만 유럽은 아니다’는 의식이 발달한 영국의 입장에서는 EU의 전제정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국무장관이 “EU의회는 회원국들의 긴축재정을 더 이상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재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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