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진의 무비QnA] ‘청불→재심→15세 관람가’…관람등급에 명운 달렸다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가슴이 철렁했던 건 ‘청불(청소년 관람불가)’이 떨어졌을 때죠. 제작진이 고생고생해서 만든 영환데, 많은 사람들이 못 보게 되면….” (영화 ‘사냥’ 주연배우 조진웅)

영화 개봉 전, 감독이나 제작자의 가슴이 느닷없이 쿵 내려앉는 순간이 올 수 있다.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가 내린 등급 분류에서 빨간색 원 안에 ‘청소년 관람불가’ 일곱 글자가 뜨면 말이다. 10대 관객 전부가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는 결과니, 당연히 흥행에도 빨간불이 켜질 수밖에 없다. 

‘사냥’ 스틸컷

15세 관람가를 잡아라…등급 전쟁= ‘다행히’ 영화 ‘사냥’은 등급분류 재심의 끝에 등급이 청소년 관람불가에서 15세 관람가로 하향 조정됐다.

“재심의 끝에 원하던 15세 관람가를 받아서 굉장히 고맙습니다.”

영화 ‘사냥’ 개봉을 앞두고 진행된 시사회에서 이우철 감독은 ‘청소년 관람불가’에서 ‘15세 관람가’로 낮춰진 상영등급에 안도감을 나타냈다. 앞서 ‘사냥’ 제작사 측은 원래 청소년 관람불가가 나왔던 등급 신청을 자진 취하하고 영화를 재편집해 재심의를 넣었다. 이 절차 때문에 22일로 예정됐던 시사회는 하루 전날 23일로 늦춰져 혼란을 빚기도 했다.

‘사냥’ 스틸컷

영등위는 22일 “주제는 청소년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수준이며, 영상의 표현에 있어 폭력적인 부분은 정당화하거나 미화되지 않게 표현되어 있고, 그 외 공포, 대사 및 모방위험 부분은 사회 통념상 용인되는 수준”이라며 15세 관람가로 최종 심의 결과를 내렸다. ‘사냥’ 관계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93분2초이던 영화 길이는 92분40초로 20초가량 짧아졌다. 이우철 감독은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가하는 장면들의 컷을 조금씩 잘라 20초 정도가 줄었다”라며 “수위를 낮추면서도 이 영화가 가진 정서나 톤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민이 많았다”고 밝혔다.

영화계의 ‘등급 전쟁’은 지난 5월 개봉한 ‘곡성’(감독 나홍진)이 15세 관람가로 판정받으면서 표면화됐다. 나홍진 감독의 전작 ‘추격자’와 ‘황해’가 잔인한 묘사로 모두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였기 때문에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곡성’의 15세 관람가 결정이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영화가 공개되자 “이게 무슨 15세 관람가냐”라는 관객들의 볼멘소리도 터져나왔다. 피로 범벅된 사람이 몇 번 등장하고, 곡괭이나 삽으로 사람을 내리치는 장면도 여과없이 스크린에 옮겨졌기 때문. 하지만 결과적으로 15세 관람가는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데 성공했다. ‘곡성’은 27일까지 685만5203명을 모았다.

23일 개봉한 ‘비밀은 없다’를 두고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판정에 대한 아쉬움도 이어졌다. 이경미 감독은 “전작 ‘미쓰 홍당무’도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였고, 이번 시나리오를 쓰면서도 당연히 ‘청불’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썼다”라면서 “그래도 ‘곡성’을 보고서 ‘혹시나?’하는 기대를 한 건 사실이었다”고 말했다. 

영화진흥위원회 ‘2015년 한국영화산업 결산’ 보고서 일부 발췌

‘청불’ 편수는 52%, 매출점유율 12.7%= 극장에선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가 많지 않아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개봉 영화 중 반이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것.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15년 한국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개봉한 영화 1176편 가운데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영화가 619편으로 전체의 52.6%나 됐다. 전체관람가는 114편(9.7%), 12세 관람가는 165편(14%), 15세 관람가는 278편(23.6%) 이었다.

그러나 관객수ㆍ매출액으로 따지면 상황은 역전된다. 지난해 영화 관람객 2억245만6468명 가운데 12.5% 수준인 2531만 명만 극장에서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를 봤다. 매출액 점유율은 12.7%에 그쳤다. 15세 관람가 영화가 흥행에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 8831만 명(43.6%)이 15세 관람가 영화를 봐 매출액 점유율은 43.4%를 기록했다. 12세 관람가의 관객수 점유율은 33.8%, 매출액 점유율은 34.4%였다. 전체관람가 영화는 관객수 점유율 10%, 매출액 점유율 9.5%에 그쳤다.

역대 국내에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가운데서도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의 부진은 두드러진다. 17편의 영화 중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영화는 ‘0편’. 전체 관람가 등급의 영화는 1편(‘겨울왕국’), 12세 관람가는 6편(‘아바타’, ‘괴물’ 등)이고 15세 관람가는 10편(‘명량’, ‘베테랑’ 등)이나 된다.

관람 등급이 영화 투자 수익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도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14 한국영화산업 실태조사와 한국영화 투자 수익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상업적으로 개봉한 한국영화 67편 가운데 15세 관람가인 26편은 평균 이익이 14억8300만원이었다. 반면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 21편은 평균 13억8400만 원의 ‘마이너스 수익’을 봤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한 영화계 관계자는 “관람 등급의 고려 없이 영화를 만드는 것이 작품성 면에서는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고, 청소년 관람불가가 오히려 영화의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순기능도 있다”라며 “그렇지만 영화 또한 투자를 받는 ‘산업’이고, 관람등급에 따라 수익이 갈리는 것이 워낙 극단적이다보니 관람 등급에 예민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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