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X파일] 이우환ㆍ천경자 위작사건 어떻게 봐야할까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이우환(80)과 천경자(1924-2015). 두 거장의 위작 사건이 한국 현대미술사 세기의 스캔들로 기록될 조짐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 국내 유수의 갤러리들이 이 두 사건에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두 작가의 그림을 둘러싼 진위논란은 상반된 양상을 보인다. 이우환 작가의 경우 현재 시중에서 매매되고 있는 작품 수십점이 대상인 반면, 천경자 작가의 경우에는 25년 전 ‘미인도’ 한 작품이 논란의 대상이다. 이우환은 “내 작품이다”라고 주장했고, 천경자는 “내 작품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결국 두 작가의 위작사건은 경찰, 검찰 등 수사기관이 개입하게 됐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이우환 작가의 가짜 그림을 위작, 유통시킨 혐의로 위조총책을 검거, 구속됐고, 급기야 프랑스 파리에 머물던 이 씨가 26일 귀국해 경찰에 출석하기에 이르렀다. 

이우환(왼쪽), 천경자 [사진=헤럴드경제DB, 서울시립미술관]

천경자의 ‘미인도’ 역시 수사기관에 의한 진위 가리기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천 씨의 차녀 김정희 씨가 제기한 소송으로 재점화 된 미인도 사건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에 의해 진위가 가려질 예정이며, 검찰은 진품과 대조를 위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천경자 1주기 추모전에서 천 씨의 그림 5장을 압수했다.

▶“내 작품이다” vs “내 작품 아니다”=이우환 위작 사건은 경찰이 압수한 그림 13점에 대해 민간 감정기관, 수사기관 모두 위작으로 결론을 내렸다. 화랑에서 평균 4억원 선에 팔렸던 그림들이다.

경찰이 국내 경매회사에서 압수한 작품과 감정서.

경찰이 밝힌 위작의 근거는 ▷캔버스와 나무틀을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덧칠한 흔적(인위적 노후화) ▷1960년대 이전에 생산된 수제 못과 1980년대 생산된 타카(고정침)가 한 작품에 혼용된 점 ▷표면 질감(안료의 질감), 화면의 구도, 점ㆍ선의 방향성이 다르다는 점 등이다. 특히 일부 작품의 캔버스에는 2010년 이후 제작된 수입 캔버스 천에 찍힌 도장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으로 도피했던 위조총책을 검거하기 위해 인터폴과 공조할 정도로 경찰의 수사 의지는 매우 확고해 보인다. 압수한 그림 이 외에도 위작으로 의심되는 그림들의 소장처 리스트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감정위원은 “압수된 그림이 위작으로 최종 결론이 나게 되면 위작에 대한 ‘기준’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이 작가 작품의 진위여부를 쉽게 가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압수한 ‘미인도’.

미인도를 수사 중인 검찰 역시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미인도의 경우 이우환 위작을 가려내는 것보다 복잡한 양상으로 펼쳐질 전망이다. 이우환 작품의 경우 1970년대 말에 그려진 작품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것이어서 감정이 쉽지만, 미인도는 작품에 표기된 1977년부터 위작 가능 시점인 1980년 초반까지 천경자의 동시대 작품들과 비교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 감정위원들은 진작과 위작이 같은 시기에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석채 등 동양화 안료를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 검찰이 서울시립미술관 그림을 압수하는 과정에서 유족과 마찰도 빚어졌다. 천 씨의 장녀 이혜선 씨는 “미국 어느 국공립미술관도 소장품을 그렇게 내 주진 않는다”며 “아무 혐의도 없는 미술관에 압수 영장이 어떻게 나온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특히 “갤러리, 사립미술관 등 다른 소장처들도 있는데 왜 하필 어머니의 장례식과 같은 추모전을 하고 있는 미술관에서 그림을 가져갔는지 모르겠다”고 강력 반발했다.

▶작가 의견 얼마나 반영될까=통상 생존 작가의 경우 작가의 의견이 우선시된다. 게다가 ‘작가확인서’는 진품 감정서와 다름없는 효력을 발휘한다. 세계 미술계의 ‘관행’이 그렇다. 이우환 작가가 “전 세계 어디에도 이런 사례가 없다”고 강변한 것이 이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꼭 이러한 기준을 적용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이우환 위작 감정에 참여했던 최명윤 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은 “왜 꼭 해외 기준에 맞춰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최 씨는 “해외 유명 경매회사들도 연구소에 작품 진위 여부를 문의한다”며 “과학적 감정으로 미술품 진위를 가려내는 건 우리도 서구 어느 나라 못지 않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생존 작가라도 전문가들이 내리는 감정 결과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미술계 인사는 “작품에 대한 감정권은 저작권처럼 작가의 전유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감정 결과를 믿느냐 안 믿느냐의 문제인데, 분분한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감정기관에 권위를 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이우환, 천경자 위작 사건 모두 작가의 의견을 얼마만큼 반영할 것인가가 변수로 작용할 예정이다. 특히 고인이 된 천경자 작가의 경우 생전 주장이 어디까지 받아들여질 지가 관건이다. 천 씨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미인도는 내 작품이 아니다”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감정기관, 수사기관 모두 진품 결론을 내릴 경우, 국립현대미술관은 책임 소지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지만, 작가와 유족이 위작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상태에서 미인도는 ‘출처 불분명’으로 떠돌 공산이 크다.

이우환 작가의 경우, 민간 감정기관과 수사기관 모두 위작으로 결론을 냈고, 가짜를 만들고 유통시킨 당사자들의 진술까지 확보된 상태에서 정작 작가는 진위 여부에 대한 결론을 못 내고 있는 상태다.

27일 경찰에 출석하기 전 “언론과 국가권력이 합세해 논란을 키웠다”고 주장했던 이 씨는 그림 13점을 모두 본 후 “물감, 기법 등을 다시 확인해봐야겠다”며 판단을 유보했다. 압수된 13점 중 1점에 ‘작가확인서’를 써 준 것에 대해서도 “직접 쓴 게 맞다”고 했다가 “나중에 말하겠다”로 입장을 바꿨다. 이 씨는 29일 재차 감정해 결론을 내린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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