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석PD, ‘석테일’ 실체는 때깔 아닌 감정선이었다

[헤럴드경제 =서병기 선임 기자] 드라마 제작 환경이 급속로로 바뀌고 있다. ‘태양의 후예’는 기존 드라마 제작 프레임으로는 제작될 수 없는 드라마다. 하드웨어만 바뀌는 게 아니라 새로운 제작 프레임안에 담기는 소프트웨어도 바뀌고 있다. 최근 만난 ‘미생’ ‘시그널’의 연출자 CJ E&M 김원석 PD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그 부분에서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요즘은 드라마 스토리를 잘개 쪼개는 스토리 브레이킹을 한다. 대사까지도 쪼갠다. 여기서 핵심은 이를 취사선택하는 크리에이터 능력이 중요해졌다는 점이다. 여기저기서 나온 중구난방의 이야기에서 뽑아내는 것이다. 이제는 작가의 문학적인 필치 보다는 여러 사람의 능력을 취합하는 전략적인 구상이 더 중요해졌다. 작가도 프로듀서 개념이다. 대체적으로 시트콤을 해본 작가가 이런 걸 잘하는 편이다. 혼자 작업해오던 작가는 조금 힘들어진 것 같다.”


캐릭터의 디테일이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나 의견에서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드라마가 초기 구성안 대로 나오는게 아니라, 쓰면서 수없이 많은 판단을 하고 그러면서 바꾼다. 그러기 위해서는 드라마 작가도 잘 묻고 잘 듣는 사람이 되는 게 좋다. 결국 어떻게 소통하고 교감하느냐가 관건이다.


“말 잘하는 작가가 잘 쓴다. 어눌한 커뮤니케이션으로는 한계가 생긴다. 남의 말을 잘 듣는 작가가 잘되더라. 잘 쓰는 작가는 코미디도 잘 쓴다. 코미디를 잘하는 연기자는 뭘 해도 잘한다. 코미디는 호흡을 자유자재로 조절해야 하므로 연기자나 작가 모두 호흡과 센스에서 중요하다.”

여기서 김원석 PD에게 궁금증이 하나 생겼다. 드라마는 아무래도 작가가 주목되는 구조이기는 하지만, PD의 역할이 어떤 것이냐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김원석 PD가 만들면 다른 PD가 만드는 것과 어떻게 달라지냐는 궁긍증이다. ‘신데렐라 언니’(B팀) ‘성균관스캔들’ ‘미생’ ‘시그널’을 통해 김원석 PD는 ‘석테일’이라 불릴 만큼 디테일에 강한 연출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저에게 때깔있는 화면이나 감각 있게 찍느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촬영감독이 잘 하고 있는 거니까. 하지만 그 분 초이스(선택)는 내가 한다. 드라마는 즉흥 연출, 즉흥 촬영, 즉흥 연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 첫 호흡이 매우 중요하다. 뒤에는 서로 익숙해져 동선 이 복잡하고 어려운 신도 잘 된다. 앞부분 호흡을 잘 맞춰 놓으면 후반 작업이 편해진다.”

‘석테일’에는 편집도 직접 김 PD가 한다는 말도 포함돼 있었지만 이는 오해라고 했다.

“편집은 내가 직접 하지는 않는다. 편집기사와 같이 한다. 하지만 첫번째 시청자인 편집기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분의 해석을 한번 거치는 게 중요한 지점이다. 서로 얘기도 많이 하고 많이 싸운다. 왜 이렇게 찍었냐, 왜 이렇게 편집했냐고 서로 싸우면서 보강해나간다.”

김원석 PD는 현장 스태프를 잘 선택하면 연출의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했다.

“내 말을 잘듣는 스태프는 필요 없고 같이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나에게 어떻게 할까요가 아닌, 자신의 관점에서 의견을 주는 스태프를 원한다. 연출부의 막내가 얘기해서 잘못된 부분이 바로 잡히면 내가 크게 박수를 쳐준다.”

그렇다면 스태프들과의 소통, 교감 외에 김 PD가 가장 중요시하는 건 무엇일까? 배우들의 감정선이었다. 이것이 ‘석테일’의 실체이기도 하다.

“나는 감정(선)만 생각한다. 감정에 따른 연기, 이것은 나만의 영역이다. 논리성과 개연성 등 다른 부분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 감정만은 내가 다한다. 나는 소품에 신경 쓰는 디테일 이 아니다. 물론 소품이나 보조출연자 등 큰 틀에서 정서와 감정선으로 연결되면 중요하게 본다.”

김원석 PD가 때깔을 신경 쓰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연기이고, 연기에서 나오는 감정선이다. 건조한 캐릭터가 인간미와 정감 있는 캐릭터, 따뜻한 캐릭터로 만들어지는 것은 김 PD에 의해서다. 이를 위해 김 PD는 작가와시청자들이 몰입하는 데 필수적인, 감정있는 캐릭터가 되기 위한 신(장면)들을 집어넣는 토론을 하거나 작가와 배우에게 저잣거리 대사로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연기를 만들어낼 때 감정을 잘 표현하기 위해 작가와 얘기를 많이 해야 한다. 아이템이 결정되면 왜 이런 대사를 하는지 공유한다. 더 많이 알수록 더 잘 찍을 수 있다. 연기가 좋으면 그림도 좋게 느껴진다. 따라서 연출자는 작가 마인드를 가져야 하고, 작가도 PD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미국은 모든 시스템이 분업화돼 있다. 우리는 작가와 프로듀서 분업이 안돼있다.”

김 PD는 “요즘 왜 tvN 드라마들이 잘되는가?”라는 질문에는 “한 드라마가 엣지를 잃지 않고 가려면, 엣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사람들이 가야 한다. 이명한 데스크가 믿어주고, 다른 사람들은 별로 터치 하지 않는다. 터치를 안받고 한번 성공하니까, ‘기억’ ‘디마프’ ‘또 오해영’ 등이 하고싶은 대로 한다. 물론 터치 받지 않고 마음대로 하다가 안되는 경우도 있지만, 엣지를 살려주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김원석 PD는 외국에는 경험에서 오는 판단력만은 뛰어난 나이 많은 크리에이터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나이가 많으면 연출자도 불리하다고 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한 것인지, 그도 스타일이 변했다.

“과거에는 단점을 지적해줘 상처를 주는 스타일이었다. 이게 잘하는 것인줄 알았다. 지금은 대본을 장점 위주로 본다. 단점은 놔두고, 장점을 극대화시킨다. 부족한 걸 메우면 평범한 것밖에 안된다. 잘하는 걸 살려야 개성적으로 된다. 아이 키우기도 마찬가지다. 물론 단점 보완도 하지만, 단점이 보완돼 장점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으면 안하는 게 낫다. ‘시그널’에서 무전이 열리는 이유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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