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와 19세기 歐 ‘100년 평화’로 본 국제질서의 변화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CNN의 간판앵커이자 국제정치 칼럼리스트 파리드 자카리아는 27일(현지시간)브렉시트를 “‘하나의 유럽’의 분수령”이라고 빗댔다. 그만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Brexit)는 전후 구축된 국제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브렉시트는 자국이익의 극대화를 강조하는 ‘현실정치’로 EU라는 협조체계를 뒤흔든 것을 의미한다. 일정부분의 주권을 ‘양도’해 평화적 통합을 지향하는 EU에서 벗어나 주권을 우선시하는 베스트팔렌 체제로의 회귀를 뜻한다. 베스트팔렌 조약은 주권 평등과 주권 불간섭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근대 국민국가의 개념을 정립했지만 동시에 국제사회에서 국가 간의 분쟁을 가시화시켰다. 주권 평등과 불간섭 원칙 아래의 유럽국가들은 식민지 개척과 시장 선점을 위해 앞다퉈 경쟁했다. 유럽 강국들의 패권 경쟁 끝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1814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나폴레옹 전쟁 이후 국제협력체제를 구성하기 위해 열린 ‘빈 회의.’ 당시 유럽 강국이었던 영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프랑스 등 5개국이 참석해 국제협력체제인 ‘유럽협조’를 마련했다. [판화=장-밥티스트 이자베이 작품]

EU는 베스트팔렌 시대를 딛고 공동번영을 추구할 수 있는 연합체였다. EU를 처음으로 구상한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는 개개의 유럽 국민국가들로부터 주권을 일정 부분 넘겨받음으로써 평화적 통합을 실현할 수 있는 ‘유럽 합중국’을 염원했다. 전문가들이 브렉시트를 ‘베스트팔렌 시대로의 회귀’라고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프랑스와 독일 외무장관들은 브렉시트가 결정된 다음날인 EU 회원국들의 재량권을 늘리는 ‘유연한 EU’를 검토하고 나섰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브렉시트가 “국제정치에서 현실주의가 자유주의를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현실주의는 국제정치에서 국가는 개별 행위자로서 자국 이익 극대화를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정치이론이다.

브렉시트가 이뤄진 첫 번째 원인은 ‘주권’에 있다. 탈퇴운동을 주도한 나이젤 패러지 영국독립당(UKIP)의 당수는 브렉시트가 결정되자마자 BBC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오늘은 영국의 독립일”이라고 주장했다. 네일 해밀턴 UKIP 전국집행위원도 “우리는 EU와의 자유무역을 원한다”며 “영국인들은 EU와의 정치적인 통합만을 꺼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발언은 개별 국가의 주권은 평등하고, 간섭받아서는 안 된다는 베스트팔렌 체제의 의식을 반영한다.

브렉시트 사태가 발발하기 전까지 오늘날의 세계는 1ㆍ2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 ‘100년 평화체제’를 유지해온 ‘유럽 협조’체제의 유럽을 연상케 한다. 유럽 협조체제란 나폴레옹 전쟁 후 영국과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 프랑스 등 유럽 강국이 빈체제를 통해 구성한 군사적 협력체제를 말한다. 정통성과 세력균형이라는 두 원칙으로 유럽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한 국제협력체제였다. 유럽 5개국은 영토확장를 확장할 때도 빈회의를 열어 상호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EU처럼 ‘공동의 번영’을 추구한 협력기구였던 것이다. 

[사진=게티이미지]

잘 나가던 유럽 협조체제도 과열된 패권경쟁과 자국중심주의 때문에 무너졌다. 당시 유럽의 초강대국이었던 영국은 ‘자유 무역’을 근간으로 신대륙 및 시장 개척에 집중했다. 또 입헌군주제의 명예와 권위를 토대로 전제 정권의 오스트리아와 러시아를 ‘교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결과 영국은 크림전쟁 발발을 앞두고 협상을 제의하는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손길을 뿌리쳤다. 영토확장의 욕심이 있던 러시아와 오스트리아도 협상이 불발되자 자국 안보강화에만 집중했다. 유럽 협조가 붕괴되자 유럽국의 세력균형 기조는 ‘세력경쟁’으로 변질돼 1차 세계대전이라는 참사를 초래했다.

이번 브렉시트를 놓고서도 전문가들은 100년 전에 있었던 세력 경쟁 시대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의 언론들은 “탈퇴가 정답이 될 수는 없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EU개편을 추구했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독일의 쥐트 도이체 차이퉁은 26일 “EU는 완전한 개혁이 필요하다”며 “남은 EU 회원국들은 영국의 탈퇴 결정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만 하며 EU의 정책들에 대해 1957년 창설 이후 가장 근본적인 검토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폴란드의 가제타 비보르차 지는 “많은 EU 시민들의 분노가 민족주의적 현상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며 “대신 보다 강한 유럽과 더 나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사학자 칼 슈뢰더는 “국제정치의 역사는 변화없이 끝없이 반복되는 힘 대결의 역사가 아니다”라며 “질서를 세우는 능력을 북돋우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체제적인 제도 변화의 역사이다”라고 피력했다. 또 다시 힘 대결로 치달을 듯한 국제정세 속에서도 이전보다 나은 질서를 세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유럽 각국에서는 EU를 탈퇴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EU를 개혁해 개선된 연합체로 발전시키려는 움직임도 진행되고 있다. EU를 부숴뜨릴 듯 몰아치는 자국중심주의의 열풍이 EU를 더욱 단단하게 결속시키는 담금질이 될 지 국제사회는 주목하고 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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