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기“뛰고 구르고…격한 액션신도 즐겁더라”

영화 ‘사냥’서 탄광사고 생존자 ‘기성’役 열연
‘안성기’이기에 가능했던 묵직함·현실감 눈길
근육질 몸 추격신…60대 안 믿기는 강철체력
“직접 제작? 아직은 연기에 열중하려고요”

“와, 저 람보 영감 진짜.”

기다란 엽총을 들고 탄피를 어깨에 멘 채 쉴새 없이 산속을 달리는 백발노인. ‘1대 6’. 총을 든 젊은이 여섯 명과의 대립에도 밀리지 않는다. 뛰고, 구르고, 총에 맞고, 폭포에서 떨어지고…. 그래도 계속 살아난다. 총 쏘는 실력도 명사수급이다. 가상현실 게임 속 불사의 캐릭터 같다. ‘람보’가 따로 없다.

비현실적인 캐릭터도 명배우 안성기(64)의 얼굴로 다시 태어나면 현실감과 입체감을 얻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자 온 몸을 내던진 남자 ‘기성’이다. 29일 개봉한 영화 ‘사냥’에서 “배우 인생 59년 가운데 나이 들어서 제일 격한 연기를 했다”는 그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안성기는 영화 ‘사냥’을 통해 연기인생 최고의 격한 신을 찍
었다며 “이 나이에 이런 액션영화를 할 수 있다니. 뛰는 건
자신있었기 때문에 행복하게 뛰었어요”라고 말했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달리면서, 감정 연기까지 “즐거워”= “시나리오 봤을 때 너무 황홀했죠. 이 나이에 이런 액션영화를 할 수 있다니. 뛰는 건 자신 있었기 때문에 저한테 전혀 고통으로 다가오지 않았고요, 행복하게 뛰었어요.”

영화에 함께 출연한 배우 조진웅이나 영화를 연출한 이우철 감독은 모두 안성기의 체력에 혀를 내둘렀다. 뛰는 장면만 이어지는 시나리오를 보고도 예순넷의 배우가 주저 없이 출연을 결심한 것은 자신감 때문이었다.

“40년 가까이 운동을 했어요. 웨이트 트레이닝 위주로 조금씩 하고…. 너무 근육이 커지면 유연성이 떨어지니까, 적당한 근육에 몸도 가볍게. 이번 영화를 찍기 위해서 몸을 만든 건 아니고요, 액션 장면에서 합을 맞추고 기본적인 낙법 같은 것만 훈련을 받았죠.”

안성기의 첫 등장 장면에서 관객들의 시선은 그의 탄탄한 근육질 몸매에 ‘고정’될 수밖에 없다. 머리카락은 허옇게 셌는데 구릿빛 피부에 근육이 도드라진다. “추격전을 벌여야 하는데 몸까지 노쇠하면 쉽게 끝나버릴 것 같은 이미지가 되니까, ‘몸이 날래고 힘도 있겠구나, 산도 잘 타겠구나’ 하는 느낌을 주려고 몸을 좀 보여줬죠.” 그러니까 이 장면은 ‘계산된 노출’이었다.

‘산에서 살아남는 것’ 한 가지를 목표로 달려가는 액션에서 감정이 녹아든 것은 배우 안성기의 무게감 덕분이다. ‘사냥’에서 기성은 탄광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의 딸 양순(한예리)을 지켜내려 온 힘을 다한다. 양떼 몰리듯 긴박하게 쫓기다가도 양순이의 부상을 치료하며 그를 안심시킬 때는 한없이 자상하고 침착하다. 

영화‘ 사냥’ 스틸컷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탄광에서 혼자 살아남았다는 마음의 상처를 가진 사람이라 얼굴에 그 죄책감이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죠. 어두움이 짙게 깔려있다는 걸 놓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 모든 호흡 속에 감정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없으면 그냥 람보처럼 보이게 되니까. 추격전부터 점점 자신의 상처가 열려서 양순이를 구하고, 마지막에는 자신이 상처로부터 자유롭고 편안해지는 모습이 관객들에게도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있는 듯 없는 듯 있고 싶다”는 것은 영화 촬영현장을 지키는 그의 철학이다. “선배로서의 대우나 배려를 받기보다 물에 섞여있듯 있고 싶다”고 말했다. “아무리 제가 그렇게 한다고 해도 후배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겠지만, 선배로서 대우를 받는다거나 하면 서로 피곤해져요. 다른 곳에서도 살아가는데 좋은 지혜가 아닌가 싶어요.”

▶한국영화 ‘산증인’의 발자취…연출ㆍ제작은 “NO!”= 만 다섯 살에 데뷔한 ‘국민 배우’는 이미 한국 영화계의 산증인이다.

“어렸을 땐 내 의지로 연기를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운명인가, 태어날 때부터 결정된 건가, 하면서 지금까지 계속된 거죠.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내가 영화라는 걸 정말 해야겠구나, 잘하면 참 좋은 일이 되겠구나’ 생각했죠.”

그가 본격적으로 영화를 시작할 때는 시절이 수상했다. 1970년대 후반, 유신의 끝자락에서 영화인들의 표현의 자유가 제약되는 상황이었다. “영화도 영화다운 걸 만들기가 어려웠던 시절에 시작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 그 시절의 그는 멜로영화처럼 “적당히 타협하는 영화들”을 찍었다. “연기를 계속 해야 하나….” 마음고생도 많았다.

1980년대에 들어서부터 세상이 조금씩 변하는 걸 느꼈다. 안성기는 그 때부터 “틈을 파고들면서 새로운 영화를 해 나가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서 해야겠구나. 60~70년대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 말이에요. 영화의 역사를 메워가는 영화를 선택해서 해야겠다는 의지로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영화를 찍었죠. 멜로 드라마 쪽은 안 했어요. 사회성과 역사성이 있는, 현실 참여적인 이야기를 주로 했죠.”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1980)이 시작이었다. 1980년대 고도성장 속에서 발생한 억압이나 빈곤, 사회적 모순을 블랙코미디로 다룬 영화다. 이원세 감독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1981), 배창호 감독의 ‘꼬방동네 사람들’(1982) 등으로 줄줄이 이어졌다. “서서히 영화가 변화하면서 영화나 배우에 대한 인식도 변하고 위상이 커졌죠. 지금 돌아보면 애초에 생각했던 대로 되어서 참 기분이 좋아요.”

최근까지도 그의 필모그래피는 ‘실미도’(2003), ‘한반도’(2006), ‘부러진 화살’(2012) 까지 사회성 있는 영화들을 계속해오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냥’과 같은 새로운 도전도 서슴지 않는다. 관객들은 영화 속 안성기의 모습을 보고 해리슨 포드나 리암 니슨을 떠올릴 수도 있다.

직접 영화 연출이나 제작에 도전할 마음은 아직까지 없다고 했다. ‘짬짜면 론(論)’으로 간단하게 설명했다.

“예전부터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내가 지금 짜장면을 먹고 있는데 짬뽕을 먹고 싶다면 짜장면을 내려놓아야죠. 이 그릇 저 그릇 다 두고 짬짜면을 먹는다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그의 차기작은 ‘매미소리’다. ‘워낭소리’로 한국 독립영화의 한 획을 그은 이충렬 감독의 작품이다. 진도 다시래기꾼의 이야기다. “올해 하반기 촬영에 들어가 내년 여름 개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세진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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