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평행선 ①] ‘우롱당한 태극기’…철거가 답인가

-불법판단ㆍ행정조치 하나없이 롯데월드타워 태극기 철거

-일부 “시민단체ㆍ서울시ㆍ기업이 만들어낸 촌극” 비난도

-“6월 호국보훈의 달 맞아 우리 모두 생각해 볼 문제” 시각

[헤럴드경제=강문규 기자] 대한민국의 상징 ‘태극기’가 수모를 겪고 있다.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초대형 태극기가 시민단체에 주장에 못이겨 결국 철거된다. 뚜렷한 불법 여부 판단이나 행정조치 하나 없는 상태에서 시민단체와 서울시, 기업이 합작해 호국보훈의 달인 6월 ‘태극기 조기퇴장’이라는 최악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일각에선 정치적 의도가 없는 순수한 프로젝트마저 한 시민단체의 ‘삐딱’한 시선 때문에 중단됐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유지냐, 철거냐의 논란에 휩싸였던 롯데월드타워 초대형 태극기.

29일 롯데월드타워 관리사인 롯데물산에 따르면 지난 28일 타워 외벽에 붙은 태극기 철거 작업에 들어가 30일께 모두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8월 6일(한국 시각) 개막되는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하계올림픽과 8월 15일 광복절을 앞두고 태극기 마케팅을 계획하던 기업들은 전전긍긍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당장 광복절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우리 기업은 건물 등에 기념 이벤트로 태극기를 걸어도 괜찮은 것인지 궁금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당초 롯데물산은 올해 광복절까지 초대형 태극기를 게재를 연장하려 했다. 특히 태극기 아래 새로운 나라사랑 주제의 메시지를 붙이고 캘리그래퍼(글씨 예술가)의 공개 퍼포먼스를 비롯, 다양한 관련 행사를 계획했지만 죄다 무산됐다.

지난해 8월초 광복절을 앞두고 롯데월드타워에 초대형 태극기가 걸려 화제가 됐다. 당시 공사 중인 롯데월드타워(완공 후 123층) 외벽에 가로 36m, 세로 24m짜리 초대형 태극기를 처음 붙였다.

하지만 지난 4월 시민단체 ‘위례시민연대’가 기업엠블럼을 문제 삼고 나서면서 논란이 촉발됐다. 이 단체는 태극기 철거를 주장하며 타워 외벽 부착물과 관련해 서울시와 송파구에 “옥외광고물법, 건축법에 저촉되는지 여부를 판단해달라”며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맞서 다른 시민단체들의 철거반대 민원도 이어졌다. 지난달 국가보훈처(서울지방보훈처)까지 가세,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태극기와 ‘대한민국 만세!’ 문구를 이달 말까지 유지해달라”는 협조 공문을 롯데물산과 서울시에 보냈다.

롯데물산은 당초 약속한 철거 시한(5월말)을 넘겨 6월 말까지 태극기와 ‘대한민국 만세!’ 문구를 유지하다가 28일부터 철거에 나섰다.

문제는 정부 기관인 국가보훈처까지 태극기 연장 게재를 요청했을 정도인 만큼 태극기 자체를 건물 외벽에 붙이는 행위는 옥외광고법이나 국기훈령 등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불법 여부 판단이나 행정조치 하나 없는 상태에서 국내 최대의 태극기를 끌어내렸다는 비판이 뒤따르는 것이다.

서울시의 어정쩡한 태도도 논란 대상이다. 롯데물산 측 주장에 따르면 서울시는 롯데물산에 “허가(신고) 대상임에도 절차를 거치지 않았을 경우 정비하거나 관계법령에 의한 절차를 이행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가 어떤 법 규정을 위반한 것인지, 태극기의 경우 문제는 없는지 등에 대한 명확한 해석이나 판단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롯데물산은 롯데월드타워 준공 허가권을 가지고 있는 감독기관인 서울시의 애매한 태도에 ‘훗날(준공허가)’을 대비해 태극기를 자진 철거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시각이 뒤따른다.

롯데물산 관계자는 “나라사랑 캠페인이라는 순수한 취지로 시작한 일이 의도치않게 태극기 철거 논란으로 번져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한 시민단체의 민원으로 시작된 태극기 논란과 이런 선례로 8월 태극기를 달려고 준비하는 다른 기업이나 단체에 악영향이 미칠까 걱정된다”며 “올해 광복절을 마지막으로 멋있게 마무리하고자 했는데 아쉽다”고 했다.

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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