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투표, EU탈퇴 ‘제동 장치’ 되나…영국 교훈삼아 ‘신중론’ 부상 가능성

[헤럴드경제=이수민 기자]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가 역설적으로 유럽연합(EU) 탈퇴에 제동을 걸 가능성이 생겼다. 결정했으면 빨리 나가라는 EU의 강경한 태도와 영국 내 후회 분위기가 거세지면서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인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투표 결과 발표 직후 브렉시트 결정이 EU 탈퇴 도미노를 낳을 것이란 우려가 강하게 일었지만 판세가 달라졌다. 반(反) EU 분위기가 대륙 전체에 확산되고 있던 시점에서 EU는 하나를 잃고 전체를 지키는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게 됐다.

▶투표 후, ‘리그렉시트’의 부상=브렉시트 결정에 비통함을 내비쳤던 EU국들은 달라진 판도를 직감하고 있다. 30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의 종말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것이 교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극우파를 겨냥해 “인기 영합주의자들은 결과가 어떤지 알아야 한다. 나가는 것이 좋은가? 우리는 이제 머무르는 것의 이점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마크 루테 네덜란드 총리는 “단일 시장을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던 모든 이들, 이것이 그 결과다”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

판세는 변했다. 투표 결과 발표 직후 탈퇴파가 승리에 도취된 것은 잠시, 분위기가 달라졌다. 머물러 달라고 호소하던 EU는 즉각 등을 돌렸다. 탈퇴 결과가 나오면 바로 협상에 들어가겠다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10월 사임하겠다며 새 총리가 협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그러자 EU는 10월은 늦다며 당장 협상에 들어가야 한다고 옥죄었다. 영국의 뜻과 달리 비공식 협상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영국은 수세에 몰렸다.

뜻밖의 투표 결과와 강한 여파에 영국도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리그렉시트’ 여론에 불이 붙었다. 국민투표 발표 이후 EU의 의미와 브렉시트의 결과에 대한 구글 검색이 쇄도하면서 유권자들이 ‘잘 모르고 투표했다’는 비판이 강하게 일었다. 탈퇴에 투표했다는 유권자가 다시 하면 잔류에 투표할 것이라 말하면 인터뷰까지 나왔다. ‘우리 무슨 일을 한 거지’(What have we done)’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후회와 우려를 표하는 게시물이 줄을 이었다. 재투표를 요구하는 청원에는 400만명이 넘게 서명했다.

[자료=퓨리서치센터]

특히 탈퇴파 공약에 오류가 산재하다는 비판에 탈퇴파의 ‘얼굴’인 정치인들마저 “내 주장 아니다”며 책임을 회피하자 정말 잘못했다는 생각이 확산됐다.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 등 탈퇴파 정치인들은 무책임의 표상으로 전락하며 비호감 인물 대열에 합류했다.

▶확산되던 반EU 기조, 신중론 맞닥뜨려=영국과 같이 정치적 행동으로 가시화되지 않았을 뿐 대륙에 걸쳐 점점 더 확산되는 반EU 분위기에 위기를 느끼던 EU에게는 우선 예상치 못한 호재다. 특히 EU 분열의 주된 원인인 난민 문제등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고심하고 있던 EU에게 영국과 세계의 반응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미국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가 4월 4일∼5월 12일 EU 10개 회원국 1만491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EU를 호의적으로 바라본다는 응답자는 전체적으로 51%에 그쳤다. EU에 대한 호감도가 10년새 급락했고, 거의 반 토막 난 국가도 있었다.

투표 전이었던 영국인들의 호감도가 44%였는데 프랑스는 38%, 그리스는 27%로 영국보다 더욱 EU에 대한 호감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당시 영국의 EU 호감도는 54%, 프랑스는 69%에 달했다. 2007년 80%에 달했던 스페인인들의 EU 지지율은 47%로 추락했으며 이탈리아에서도 78%에서 58%로 떨어졌다.

그나마 동유럽 국가들이 굳건한 지지율을 지켜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지율 하락에 책임이 있는 EU는 긴장했다. 조사는 EU 정책에 대한 강한 불만이 반영된 결과다. 특히 최근 유럽의 최대 해결 과제인 ‘난민 문제’에 대한 EU의 대응은 곳곳에서 반발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10개국 모두 EU의 난민 대응에 불만이라는 응답률이 60%를 넘어섰다. 반 난민을 기치로 내건 극우 정당들이 곳곳에서 득세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난민 할당제를 두고 난민 집중 국가, 여타 EU국들간에 마찰음이 일면서 ‘공동체’로서의 EU의 정신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대응은 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한 EU는 지지율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런 시점에서 브렉시트 결정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반EU파도 목소리를 높이기가 쉽지만은 않다. 국민투표 시행 신중론도 고개를 든다. EU로서는 위기가 다소 기회로 변모한 모양새다.

▶판세는 영원하지 않다=그러나 이 또한 영원할 수 없다. 현 시점에서야 변화를 택한 영국이 치러야 할 대가가 많지만, 안정기에 이른 후 영국의 모습이 대규모 EU 이탈을 촉발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EU밖 영국의 상황이 예상보다 나쁘지 않고, 이민자를 차단해 안정된 모습을 보이면 검증된 선례를 목격한 국가들이 한꺼번에 들고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로서는 영국이 EU와 어떤 협상 결과를 이끌어 낼지, 다른 국가와의 관계는 어떻게 재정립할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노르웨이, 스위스, 캐나다 모델들이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어떤 조건의 관계를 맺는가에 따라 교역 상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영국 수출의 절반이 EU국을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는 만큼 교역 조건 내용이 향후 영국 경제에 미칠 영향력은 크다.

실제로 브렉시트 시 향후 2년간 영국 경제가 0.6% 성장에 그칠 것으로 분석한 영국 재무부도 협상이 2년 내 마무리 되는 상황에서는 2018년 영국 경제가 성장 국면으로 진입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물론 현재도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EU가 영국에게 호락호락 당근을 내줄 가능성은 없다.

영국은 최근 관계를 강화해 온 중국과 사이를 좁혀 나갈 가능성도 있다. 이것이 또 다른 경제 활로가 될 경우 영국의 대(對)EU 의존도는 상대적으로 낮아진다.

무엇보다 영국이 이민자, 난민 유입을 차단하고 복지비 지출, 사회 혼란을 막으며 오히려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면 다른 EU국들 또한 동요할 수밖에 없다.

결국 판세는 향후 협상 내용과 영국의 대응, 이에 따른 영국 상황의 변화에 달려 있다. 투표 직후 역설적으로 상황이 다소 역전됐지만 EU 또한 언제까지고 안심할 수는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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