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도 임신하면 결혼하는 미국… 조혼(早婚) 규제 잇따라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10여년 전 개봉한 미국 영화 ‘주노’는 이제 겨우 10대 중반일 뿐인 소녀가 원치않은 임신을 한 후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성숙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10대 청소년의 결혼이 비일비재한 미국 현실 속에서 공감대를 얻고 인기를 끌었다. 최근 미국에서는 이러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미성년자의 결혼을 금지하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버지니아 주는 이달부터 원칙적으로 18세 이상 성인에게만 결혼을 허용하고, 예외적으로 법원이 인정하는 경우에 한해 16세까지도 결혼을 허가하는 법안을 시행하기 시작했다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가 3일(현지시간) 전했다. 당초 버지니아에서는 12살 어린아이도 임신했을 경우 결혼하는 것이 법적으로 허용돼 ‘몇겹 띠동갑’ 커플도 종종 탄생했지만, 이제 법적으로 금지된 것이다.


이는 미성년자의 강제 결혼, 인신 매매, 결혼을 가장한 강간을 막기 위한 조치다. 기존 법에서는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학대한 경우 피해자와 결혼함으로써 수사를 피할 수 있는 길이 있었다. 이에 전문가들은 기존 법이 “아동을 결혼시키는 패스트트랙”이라고 비판했다. 버지니아 보건부 통계에 따르면 버지니아에서 2004~2013년 결혼한 15세 이하 미성년자는 200명 이상이며, 이 가운데 90%는 여성이다.

다른 주도 마찬가지다.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결혼을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나이는 18세지만 부모 허락하거나, 법원이 허용하거나, 임신을 했을 경우 결혼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다. 2006년 뉴저지에서는 10살 소년과 18살 소녀가 결혼하는 일이 벌어져 충격을 안겼다. 버지니아의 비영리 여성인권단체 타히리 저스티스 센터에 따르면 버지니아, 뉴욕, 메릴랜드, 뉴저지 주에서 2000~2010년 청소년이 결혼한 사례는 무려 1만4000건에 달한다.

특히 이들 결혼 대부분은 같은 10대끼리의 결혼이 아니라, 수십년의 나이 차가 있는 커플이다. 일례로 뉴저지에서는 1995년부터 2012년까지 총 3499명의 미성년자가 혼인 신고를 했는데, 91%는 배우자가 성인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까지 나이 차가 나는 결혼은 사실상 미성년자의 의지와는 무관한 강제 결혼이라고 지적한다. 부모들이 사회적ㆍ경제적 이익을 얻으려고 자녀를 결혼시킨다는 것이다. 타히리 저스티스 센터는 2009년부터 2011년 사이에만 강제 결혼한 18세 미만의 미성년자가 3000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조혼(早婚)을 근절하려는 버지니아의 노력은 다른 주로도 확산되고 있다. 전국주의회회의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메릴랜드, 뉴저지, 뉴욕에서도 올해 같은 내용의 법안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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