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기의 대중문화비평] 엄마라서…딸이라서…친구라서…고마워요 ‘디어 마이 프렌즈’

모녀간 상처, 친구간 오해, 노후의 병…
과장 없이 그린 노년의 삶
배우들 현실적 연기에 시청자 ‘울먹’
죽음·병마 불구 떠난 번개여행서
“죽더라도 길 위에서 죽고싶다”는 외침
황혼에겐 위로, 청춘에겐 공감 얻어

tvN ‘디어 마이 프렌즈’는 쉽게 만날 수 없는 명품드라마였다. 한마디로 인생드라마였다.

마지막회 태안 앞바다에서 촬영할 때에는 하루종일 날씨가좋지 않았는데 잠깐 해가 나 해넘이 상태에서 멋진 결말 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 날씨까지도 도와준 격이었다.

‘디마프’는 60~70대 노인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노인들의 이야기라 나름 의미는 있겠지만 시청률까지는 보장하기 힘들줄 알았다. 하지만 두자릿수 시청률을 달성했고 마지막회 최고시청률은 11%를 넘겼다. 왜 그랬을까?

노희경 작가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긴, 진정성 있는 대사와 그걸 100% 표현해낼 줄 아는 노배우들의 역량이 합쳐졌기 때문이다.

노희경만이 쓸 수 있는 작품이고, 어르신들만이 할 수 있는 연기였다. 현장에서 이들의 연기를 본 한 스태프는 “신들린 것 같았다. 저 분들이 (제대로 연기할) 기회가 없었구나. 현장에서 느낀 감동이 컸다”고 전했다. 그러니 그 감동이 시청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돼 함께 호흡하는 드라마가 됐다.

치열하고 당당하게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고 있는 모든 황혼 청춘들을 위로해주면서 젊은이에게는 자신들의 부모를 생각하게 한‘ 디마프’가 여운이 오래 가는 건 당연한 것 같다.

치매가 걸린 김혜자가 나문희의 전화를 받고 요양원을 빠져나와 자동차를 타고 함께 신나게 달리던 모습에서 50년 우정이 부러울 정도였다. 신구가 신혼시절 살던 폐가에서 과거 아내를 하인처럼 부려먹었던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며 회한에 잠긴 연기를 할 때는 표정만으로 모든 걸 말했다. 이들 외에도 윤여정, 박원숙, 주현, 김영옥, 남능미 등 최고의 배우들이 삶을 연기했다.

‘디마프’가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이유중 하나는 노년들의 인생과 우정, 사랑, 가족에 대해 풀어가는 공감원리에 있다. 노년들의 삶이 막장적이고 꼰대 같다 해도 그것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때로는 젊은이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 그 과정에서 부모 자식간의, 친구간의 과거 상처를 들여다보고 서로 오해를 풀고 선입견을 제거하며 치유할 수 있게 했다.

치열하고 당당하게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고 있는 모든 황혼 청춘들
을 위로해주면서 젊은이에게는 자신들의 부모를 생각하게 한‘ 디마
프’가 여운이 오래 가는 건 당연한 것 같다.

그러니 처음에는 40~50대 여성들이 가장 많이 시청하다, 20~30대 여성, 30~50대 남성으로 시청층이 확대됐다. ‘디마프’가 그려나가는 인생과 가족에 대한 보편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디마프’를 본 40~50대 여성들은 아이를 키우면서 돌아가시건, 살아계시건 엄마 생각이 난다고 했다. 시청자들도 나이들면서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비쳐보기도 했다.

1~2회에서 고현정(박완)-조인성(연하)의 등장은 노년들만으로는 쉽지 않을 것 같아 끄집어낸 카드라 읽혀졌다. 슬로베니아의 아름다운 풍광속에 있는 조인성은 그림이 됐다. 초반에는 박완-연하 에피소드가 이질적이고 매칭이 잘 안된다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연하가 박완을 만나러 가다 차 사고로 하반신 장애가 있음을 알게 됐고, 이후 연하-박완, 박완-고두심, 연하-고두심의 관계를 끝까지 풀어가면서 고현정-조인성 이야기가 드라마와 긴밀히 연결됐다.

치열하고 당당하게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고 있는 모든 황혼 청춘들을 위로해주면서 젊은이에게는 자신들의 부모를 생각하게 한‘ 디마
프’가 여운이 오래 가는 건 당연한 것 같다.

장애인 남자와 딸의 결혼을 반대하는 고두심은 결혼을 못하고 있는 장애인 노총각 남동생을 두고 있다. 고두심의 생각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게 아니라 편견에 맞서 싸워나가는 이야기다. 이 편견이 쉽게 극복돼 사랑을 이뤄나가는 게 아니라, 찾아가고, 표현하면서 적극적으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조인성이 한국으로 돌아와 암수술을 받은 고두심과 마주 앉았을 때는 시청하면서 눈물이 났다. 조인성의 한층 깊어진 연기를 보는 것도 좋았다. 고두심은 휠체어에 앉은 조인성에게 “돈 많이 버냐”라고 물었다. 장난희 캐릭터에 가장 어울리는 희망적인 말이었다. 사위로 받아들이기 직전의 마지막 테스트였다. 조인성의 대답은 당연히 “꽤 많이 벌어요”였다.

고두심이 연기한 장난희는 사나운 캐릭터다. 젊은 시절 남편의 불륜으로 어린 딸과 동반 자살 시도 경험이 있고, 그후로도 노부모와 장애가 있는 남동생을 돌봐야 했기에 ‘강한 여자’로 살아온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암이라는 병마가 닥쳤을 때는 약한 인간의 본래 모습이 드러났다.

‘디마프’는 노년들의 삶, 엄마와 아빠, 아내로서 살면서 짊어졌던 무거운 짊과 그로 인한 현재 생활, 그리고 노년에 생긴 병마를 과장 없이 그렸다. 왜 제목에 ‘프렌즈’가 붙었는지 조금 이해할만 했다. 외로움의 동물인 인간은 친구와 감정을 나누고 고현정과 고두심의 관계처럼 엄마와 딸도 친구처럼 지내는 게 후회없는 삶이라는 점을 설파했다.

“90년 인생에 남겨진 우리 인생이 이기적인 자식이 전부라면, 이건 아니지 싶었다.”

노년들은 죽음과 병마를 두려워하면서도 번개여행을 떠나며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닌, 지금 현재 생생히 살아있는 자신들의 존재를 마음껏 느꼈다. 나문희와 김혜자가 “죽더라도 길 위에 죽고 싶다”고 말한 것은 누구에게나 공감이 될 것 같다. 치열하고 당당하게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고 있는 모든 황혼 청춘들을 위로해주면서 젊은이에게는 자신의 부모를 생각하게 한 ‘디마프’가 여운이 오래 가는 건 당연한 것 같다.

지난해 가을 상암동 주변 식당에서 노희경 작가와 한두번 우연히 마주쳤다. 인사를 했더니 새 드라마를 준비한다고 했다. 노희경 작가가 글을 한창 쓰기 시작하면 몸무게가 30㎏대까지 떨어진다. 그만큼 치열하게 쓰는 것이다. 기획과정까지 치면 10개월이 넘게 씨름한 드라마가 ‘디어 마이 프렌즈’였다. tvN에게는 10주년을 가장 멋있게 장식해준 드라마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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