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산 ‘먹통 폭탄 탐지기’가 테러 위험 키웠다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가짜 폭발물 탐지기’가 중동 지역에서 테러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미 수년 전에 가짜라는 판명이 났음에도 중동 각지의 검문소에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2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3일 바그다드 폭탄 테러 현장에서는 보안부대 요원들이 ‘ADE-651’이라는 폭탄 탐지기를 사용하고 있었다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ADE-651은 제임스 맥코믹이라는 영국인이 2000년대 후반 만들어 중동 등 치안이 불안한 국가들에 판매한 제품이다. 맥코믹은 이 제품이 폭발물, 마약, 코끼리, 100달러 지폐까지도 탐지할 수 있다고 홍보해 총 8000만 달러(918억 원) 어치 이상을 판매했다.


그러나 해당 제품은 1990년대 중반에 판매됐던 골프공 탐지기 ‘고퍼(Gopher)’를 포장만 다르게 한 것으로 탐지 능력 같은 것은 없었던 것으로 이미 수년 전에 밝혀졌다. 맥코믹은 2010년 사기 혐의로 체포돼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으며, ADE-651은 같은 해 수출이 금지됐다. 영국군에 자문을 하고 있는 폭발물 전문가 시드니 앨포드는 그것을 판매한 것이 “절대적으로 비도덕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라크 전역의 정부 청사, 대사관, 복합단지 등에 있는 검문소에서는 아직도 해당 제품이 버젓이 검문검색용으로 쓰이고 있다. 이라크는 해당 제품이 가짜라고 밝혀진 뒤 조사를 벌여 구매를 담당한 관리를 징계까지 했지만, 사용을 막지는 못했다. 이번 테러가 발생한 직후에도 하이데르 알 아바디 총리는 전국의 보안부대에 ADE-651을 사용하지 말라고 명령했지만, 바로 다음날에도 보안부대는 버젓이 가짜 탐지기를 들고 검문을 하고 있었다.

내부무 대변인 이브라힘 알 아바디는 이에 대해 “검문소에서 그것을 없애려고 했지만, 문제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라며 ADE-651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 폭발물이라 마약을 반입하려는 이들을 겁주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국민들은 바그다드 테러를 사전에 막아내지 못한 것이 이 때문이라며 분노하고 있다. 테러 이후 이라크 내무부 홈페이지는 해킹을 당했는데, 해커는 홈페이지 화면에 피흘리는 아기의 사진과 함께 ADE-651의 사진을 올렸다. 한 이라크 시민은 “그저 장난감일 뿐인 가짜 탐지기를 통과하기 위해 매일 더위 속에서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고 불만을 토했다.

ADE-651이 말썽을 일으킨 것은 이라크만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이집트에서 러시아 항공기가 추락해 200명이 넘는 승객이 사망한 직후에도 보안을 강화한답시고 이 제품의 모조품을 도입해 논란이 일었다.

[email protected]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