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처럼 주장하는 힐러리 지지자’… 블루칼라의 이율배반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지난달 30일 미국 필라델피아 시청 앞에는 한 노동조합의 조합원 30여명이 글로벌 자유 무역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자유무역이 그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것이었다. 이는 공화당 대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가 줄곧 해오던 주장이었기 때문에, 그의 지지자들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민주당 지지자로서 오는 11월 있을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민주당의 케이티 맥긴티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맥긴티 후보는 같은 당 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을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있고, 트럼프에 대해서는 자유무역과 일자리에 대해 올바른 해결책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힐러리 지지자가 트럼프처럼 주장한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으로 보일 지 모르지만, 이번 대선 과정에서 미국 블루칼라 계층에 두루 퍼지게 된 딜레마다. 블루칼라 계층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성향이 짙었지만, 트럼프가 블루칼라의 주장인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우면서 표심을 낚아채고 있다. 특히 백인 저학력 블루칼라는 트럼프를 공화당의 사실상 대선주자로 올려놓은 주된 지지 기반이었다.

공화당의 아웃사이더인 트럼프는 보호무역 외에도 전통 동맹관계의 변화를 주장하고 고립주의를 시사하는 등 당의 기존 이데올로기와는 배치되는 행보를 보여왔다. 이에 공화당 성향의 유권자가 이탈해 힐러리를 지지하는가 하면, 민주당 성향의 유권자가 트럼프를 지지하는 등 기존의 유권자 구도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민주당 후보를 공식적으로 지지해 온 노동조합들도 이번 선거에는 상당히 난감한 상황이다. 기존에 해오던 대로 힐러리를 지지한다손 치더라도 조합원들의 표가 이탈하면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핵심 지지세력인 미국노동총연맹 산업별 조합회의(AFL-CIO)의 리처드 트룸카 위원장은 이탈표를 막기 위한 방안이 있느냐는 물음에 면대면 접촉, 전화 접촉, 전단 배포 등을 말했다. 그는 “트럼프가 많은 노동계급이 느끼고 있는 타당한 분노와 좌절에 접근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트럼프는 그가 해외에서 생산하는 제품들을 미국 내에서 미국인들이 생산하게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며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아예 공식적으로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밝히지 않는 노조들도 있다. 서부해안항만노조(International Longshore and Warehouse Union)와 전기ㆍ라디오ㆍ기계 노동자연합(United Electrical, Radio and Machine Workers of America)은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지지했지만, 본선에서는 누구도 지지하지 않기로 했다. 피터 놀튼 전기노조 대표는 “힐러리는 평생 자유무역 지지자였기 때문에 우리는 그녀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동시에 “트럼프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블루칼라 계층에서 보호무역에 대한 요구가 이처럼 거세지자 힐러리는 기존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찬성했던 것에서 유보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이에 누가 대통령으로 최종 선출되건 간에 미국의 무역 장벽은 이전보다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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